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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의 공동체를 넘어서
혈연의 공동체를 넘어서
  • 고세훈
  • 승인 2019.02.1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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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훈 칼럼] 영국에서 공작(duke)은 귀족 서열 중 가장 위에 있는 작위다(유럽대륙에는 공작 위에 대공(大公)이 있었지만 왕족 밖의 귀족이라기보다는 소국의 군주였다). 전쟁에서 남다른 공을 세우거나 왕의 서자들에게 주로 수여되었다. 엄정한 장자상속원칙이 적용되고, 일단 계승되면 중범죄자거나 사망하지 않으면 포기도 불가능하다. 왕족공작을 제외하면, 현재 24명이 남았는데, 19세기 말 이후 공작 작위의 수여가 사실상 중단됐으니, 오래지 않아 자연스럽게 소멸될 운명이다. 최근엔 상원마저 세습귀족을 배제하면서 공작의 정치적 영향력도 사라졌다. 인간이 수명연장을 위해 안달하듯, 영국공작도 남자후손의 확보 등 가문의 소멸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지만, 세월과 더불어 불가피한 몰락을 겪어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생애를 닮았다.

물론 혈통에의 집착이 권력이나 부(富) 등 지키고 물려줘야 할 변변한 무엇이 있을 때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언젠가 나는 한 강연에서 ‘아들은 반드시 있어야 되는가?’고 물은 적이 있었다. 시대도 변했고 청중도 신세대 대학생들이라 내 질문이 낡은 세대의 고루한 호기심 정도로 치부될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1/3 이상의 학생-여학생도 여럿 있었다-이 손을 들어 동의를 표했던 것. 뻔하고 고루했던 것은 오히려 뒤이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는데, 대체로 ‘대를 이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언뜻 중립적으로 보이는 남아선호사상이지만, 그 단순한 개념이 얼마나 많은 여성에 고통을 주고 가정을 파괴해 왔는지, 나름 열변을 토한 셈인데, 충고란 동의할 때만 현명한 것이라 했던가,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공동체의 해체를 부르는 혈통주의

대를 잇는다는 이유가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이라면, 부의 대물림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가령 선한 국가에 대한 변변한 경험도 기억도 없는 우리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하여, 불법 탈법을 동원해서라도 자기 소유를 대를 물려 보존하려는 직계혈통주의 정서를 깊이 내면화해 왔다. 그리하여 후손들의 재산싸움이나 근자에 빈번해진 자식들의 패륜까지 가지 않더라도, 부가 대물림되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적 결말의 증거들은 넘친다. 보다 심각한 것은 그러한 정서가 우리를 이웃과 공적 영역에서 차단시킨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의 자선(慈善)실태는 이 점을 잘 드러내 보인다. 예컨대 미국 사회는 취약한 국가복지를 민간의 기부전통이 상당히 보전하는데, 자선의 규모는 매년 증가해서 2006년에는 GDP의 1.67%에 달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지극히 일부가 그것도 비정례적으로 기부하기 때문에 통계조차 부실한 형편이지만) 대략 0.05% 정도로 추정되며, 이는 미국의 1/33, 영국(0.73%)의 1/15, 싱가포르(0.29%)의 1/6에 해당한다. 자살률, 빈곤율, 비정규직비율, 출산율, 이혼율 등 지표가 보여주는바, 한국이란 공동체가 급속히 해체되고 있다는 주장이 무리가 아니다.

난민을 혐오하고 가난한 외국인을 기피하는 태도도, 순혈주의라는 상상의 개념이 보다 집단적이고 공격적으로 표출된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두려운 것은 이런 태도가 단순히 경제적 이해의 산물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언제고 정치적 소환이 가능한 기질 혹은 아예 생활방식으로 돼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가령 우리가 파시즘을 그저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한 형태 정도로 파악하는 한, 우리는 왜 수백만의 사람이 히틀러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했는지, 오늘날 대서양 양안을 휩쓰는 우익 포퓰리즘의 실체는 무엇인지, 적절히 설명할 수 없다.

혈통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삶의 복잡성

작가 은희경은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 상투적 현실이 아니라 그 현실을 대하는 우리의 상투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형성됐는지도 모르는 편견의 감옥에 갇혀 그걸 기준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희로애락을 거기에 걸며, 완강한 고집이 마치 진리를 수호하는 자의 엄숙한 태도라도 되는 양 살아간다. 예컨대 “그래도 혈육밖에 없다”는 친숙한 덕담도 실은 인간과 관계의 복잡성을 단숨에 사상해 버리는 무책임한 둔사(遁辭)이기 쉽다.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한 몸이 돼라”(창세기)는 말은 가족이 혈연이나 혈통에 앞서 먼저 언약의 관계로 시작되었다고 들려준다. “새 아침이 오면 새 과부들과 새 고아들이 울부짖고 새 슬픔들의 절규가 온 하늘에 진동한다”(「맥베스」)는 맥더프의 유명한 탄식처럼, 삶은 도처에서 비극적인데, 우리는 언제까지 혈통의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서 서성댈 것인가. 명심보감 계선 편에는 이런 점잖은 충고가 들어있다. 積金以遺子孫 未必子孫 能盡守 積書以遺子孫 未必子孫 能盡讀 不如積陰德於冥冥之中 以爲子孫之計也. (돈이나 책을 자손에게 물려준다 해도 자손이 반드시 지키고 읽는다고 볼 수 없으니, 부디 음덕을 쌓아 자손을 위한 계교로 삼으라.)

혈육이 모여 담소하며 즐거움을 나누던 이번 설에 드문드문 들었던 생각들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글쓴이 / 고 세 훈
· 고려대 명예교수

· 저서
〈조지 오웰: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 (한길사, 2012)
〈영국정치와 국가복지〉 (집문당, 2011)
〈복지국가의 이해:이론과 사례〉(고려대 출판, 2000)
〈복지한국 미래는 있는가〉 (후마니타스, 2009)
〈국가와 복지〉 (아연출판사, 2003)
〈영국노동당사〉 (나남, 1999)

· 역서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 (한길사, 2015)
〈존 메이너드 케인스〉 (후마니타스, 2009)
〈페이비언 사회주의〉 (아카넷,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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