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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막혀서 균형발전 안 되나?
길이 막혀서 균형발전 안 되나?
  • 임종건
  • 승인 2019.02.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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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칼럼] 예비타당성조사(예타)면제, 23개 사업에 24조1,000억 원. 정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올해부터 2029년까지 10년간 추진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계획이다. 이 사업계획의 주된 목표는 지역균형발전이고 경기부양과 고용창출은 부수적 목표다.

이중 일부는 지난 대선 및 지자체선거에서 공약사업으로 급조된 것도 있으나, 대부분이 여러 차례 투자의 비용 대비 편익의 정도를 따지는 예타에서 낙제점을 받은 것들이다. 이를 강행하겠다는 것이니 막무가내 행정이 따로 없다.

이번 예타 면제 사업 중에는 서비스업종과 관련이 있고, 상대적으로 투자규모가 작은 상용차산업혁신단지, 인공지능집적단지, 수산식품수출단지, 산재전문병원건립, 하수처리사업 등도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대규모 투자가 소요되는 지역과 지역을 잇는 도로, 철도, 공항 등 교통관련 인프라사업이다.

지방을 여행하며 알 수 있는 것은 수도권을 빠져나가기가 어려울 뿐 지방의 도로나 철도는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수도권 이외의 교통인프라는 이미 과잉투자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추가 투자를 한다는 것은 낭비에 다름이 아니다.

SOC사업의 일차적인 경기부양효과는 건설업체들이 누리게 된다. 또 시설지역에 땅을 갖고 있는 지주들도 토지보상금 살포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나 그 역시 종전의 예로 볼 때 현지인보다는 외지 투기꾼들의 차지할 공산이 크다. SOC사업은 그것이 가져올 경기부양 효과가 제한된 수자의 기업과 직종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경기의 양극화만 조장할 우려가 크다.

건설업이 노동소득분배율과 후방 연쇄효과가 크다고는 하나, 막노동에서 미장, 도배, 배관, 전기, 도장 등 수많은 업종에서 일자리가 생기는 일반 건축공사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SOC사업은 대체로 준공과 함께 고용도 끝나고, 공사도 대부분 불도저나 덤프트럭 등 중장비 몫이다.

정부의 최대 정책목표는 경기부양과 고용창출이다. 그럼에도 이 사업에서는 지역균형발전만이 강조되고 있다. 경기부양이나 고용창출 효과는 계량화가 가능해 효과의 유무가 가려지지만, 지역균형발전 효과는 대부분 지역을 위한 선심성 사업으로 출발하기 때문에 계량화 자체에 의미가 없다.

산업시설의 영남 편중이 심각한 사회적 이슈였던 김대중 정부에서 지역균형발전의 일환으로 예타면제를 시작한 것은 나름의 명분과 효과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지역균형발전을 목표로 세종시를 건설했고, 혁신도시 사업을 통해 많은 공공기관과 공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했다.

그 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예타면제사업은 지속됐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이 타기해 마지않았던 대표적인 예타면제 사업이었다. 그 때마다 사업의 타당성을 놓고 논란이 많았지만 대부분 발표대로 시행됐다. 정부가 계획을 보류하면 지역에 대한 약속을 배반한 것이 되고, 해당 지역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지역균형발전사업은 타당성 유무와 관계없이 시행되기 마련이고,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책임소재조차 가리기 어려운 정치적 구호이며, 그 점에서 지역이기주의와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재정여건이 열악한 지역의 발전을 지방에만 맡길 수는 없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SOC부분은 중앙 정부가 나서야 하고, 지역에 맞는 제조나 서비스 분야에서 민간의 투자를 유치하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

그러나 최소한의 사업의 적합성이나 실효성, 시급성, 타 지역과의 형평성을 따져서 예타면제 사업을 선정해야 한다. 또 일단 지역균형발전이 명분이 되면 지역이기주의와 결합돼 사업을 번복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선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번에 선정된 예타면제 사업이 교통인프라 구축을 위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지역불균형의 원인을 교통에서 찾고 있는 것 같아 시대착오라는 느낌이다. 고속도로와 KTX로 전국은 반나절 시대로 단축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지역의 피폐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도농 간의 시간상의 거리는 단축됐지만, 그 같은 시간단축으로 가뜩이나 빈약한 농어촌의 자원을 도시가 빨아들이는 흡인효과만 가속화한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할 때다.

교통인프라를 건설했음에도 그것이 지역의 피폐화의 원인이 되고 있는 사례가 전국의 읍면 또는 시군 단위에서 이뤄지는 고속화도로나 우회도로 개설사업이다. 외지인들에게 지방의 소도시들은 들를 필요도 없는 곳이 되어 근근이 이어가던 촌락경제의 명맥을 마저 끊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이 교통인프라 구축 또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고 봐야 한다. 지역에 제조나 서비스와 관련된 민간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24조원은 그것을 위한 재원으로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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