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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잘 모르는 어려운 보험 약관
대통령도 잘 모르는 어려운 보험 약관
  • 조연행
  • 승인 2019.01.2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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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 어려워서가 아니라 보험사가 임의적-자의적으로 불리하게 해석하는게 문제

[조연행 칼럼] 문재인 대통령이 소비자권익 보호 문제를 언급하면서 그중에서도 보험약관이 어렵고 복잡해 소비자피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이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보험약관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소비자피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험사가 약관 해석의 원칙을 무시하고 임의적, 자의적으로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해서 적용하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주재한 당·정·청 '공정경제 추진전략 회의'에서 국민 체감형 과제 중 하나로 보험업계의 고질적 문제인 어려운 보험 약관을 소비자가 이해하기 쉽게 개선토록 주문했다. 소비자들이 약관 사전사후 검증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알기 쉽게 용어를 변경하는 한편 소비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것은 해결책을 잘못 짚은 것이다. 답은 약관 규제법에 따른 '약관해석의 원칙'에 따라 인가기관에서 해석하면 되는 것이다.

소비자 문제와 피해의 발생 이유는 약관의 인허가 담당 기관인 금융당국에서 '나몰라라'하면서 약관해석의 원칙에 따른 유권해석도, 이를 어겼을 때 처벌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가 마음대로 약관을 적용하거나 법적 해석을 받아보겠다며 법원으로 끌고 가는 것이 핵심적인 소비자 문제이다. 법원에 해석을 맡길 경우 소비자 대부분이 소송 실익이 없기 때문에 포기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승소하더라도 대부분 소멸시효가 끝나버려 보험사는 소송에 참여한 소비자만 보상해주면 되기 때문에 보험사는 소송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로 소비자피해로 문제가 됐던 재해사망특약 보험약관이 있었다. 약관에는 "자살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아니한다. 단, 2년이 지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내용이 있었고, 이에 대한 해석이 엇갈렸다. 일반사망보장이 있는 모든 생명보험상품에서는 이 약관에 따라 자살도 일반사망보험금을 지급해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일반사망보장이 없는 재해사망, 상해보험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해당 상품에서는 일반사망보험금이 없기 때문에 보험금을 지급한다면 재해 보험금 혹은 상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해당 상품에도 위의 약관이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자살은 재해가 아니다'라면서, 일반 사망 시 지급하는 '책임(해약)준비금'만을 지급했다. 그래서 소비자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약관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소비자피해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보험사의 임의적 해석 때문이다. 보험사는 약관이 잘못된 것이라거나, 보험금을 지급할 경우 자살을 조장할 수 있어 선의의 계약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지급을 거부했지만, 대법원은 지급이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사례로는, 요실금 수술비를 지급하는 삼성생명의 여성시대건강보험 약관이다. 이 상품은 여성들의 요실금 수술 시 수술비로 500만 원을 지급하도록 만들었다. 요실금이란, 소변을 자기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로, 자녀를 출산한 30~40대 이후 여성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질병인 만큼 200만 명이 넘게 가입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예전에는 요실금 수술이 비뇨기과적 질환으로 인식됐지만 다자녀 출산후 질입구를 좁히는 속칭 '이쁜이' 수술이 요실금 수술로 대체되면서 이 수술이 퍼져 많은 사람이 수술비를 지급받았다. "여성시대건강보험 들고 '이쁜이' 수술하고, 해외여행을"이라고 판촉도 하면서, 전국의 여성 고객들이 이 보험에 손쉽게 가입했고, 몇 개월의 보험료만 내고 요실금 수술을 받아 수술비 지급이 급증하게 되었다.

더구나, 테이핑 요법의 신 수술 기술이 개발되고, 의료보험이 적용되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수술비 지급이 폭증했다. 전부 지급하면 10조 원 가까이가 나가야 했다. 그러자 삼성생명은 요실금 수술은 거의 무조건 '이쁜이' 수술이라며 지급을 거부했고, 수술을 많이 하는 의사들을 고발했다. 수많은 소비자 민원과 분쟁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를 속여 계약을 전환시키거나 해약시켰다. 이 사례는 의술의 발달을 예측하지 못한 상품개발 때문에 소비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세 번째 사례로, 보험사가 잘 못 만든 '즉시연금' 약관 사례이다. 즉시연금은 10년이 지나면 이자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볼 수 있는 보험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삼성생명이 개발한 상품이다. 연금 명목으로 이자소득세없이 이자를 받고, 10년 만기에는 납입원금을 그대로 돌려받는, 말 그대로 절세목적 구미에 딱 맞는 상품이었다. 결국 이름만 연금보험이었지 실제로는 10년 만기 저축성 상품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소비자에게 "낸 돈에 대해서는 시중금리로 이자를 받고, 10년 후 낸 돈을 고스란히 돌려받는다"라고 선전해서 판매한 것이다. 마케팅 목적의 화법을 약관에 담다 보니 "연금개시 시점의 적립액을 기준으로 계산한 연금 월액을 매월 계약해당일에 지급"이라고 표현하고, 만기 시에 돌려받을 금액에 대해서는 "연금계약 적립액(이미 낸 보험료 해당액)"이라고 적어놓았다.

그런데, 보험상품에는 사업비와 위험보험료가 부과돼 있어 소비자가 보험료를 내자마자 차감한다. 그러면 만기 시 기납입보험료를 돌려주기로 했는데 차감한 사업비와 위험보험료 상당액을 추가로 더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더구나, 매달 지급하는 연금 또한 사업비와 위험보험료를 차감한 금액에 이자율을 곱해 산출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원래 생각했던 금액과 차이가 발생한다. 이에 더해 보험사들은 이 연금 월액에서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벌충하기 위해 몰래 빼내고 연금 월액을 축소 지급했다. 금융감독원이 민원을 통해 이 사안을 밝혀내고 분쟁 조정위원회에서 미지급했던 금액을 모두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지만 보험사는 거부하고 법원으로 갔다. 이 사례는 약관을 잘못 만든 사례이다.

마지막 사례는 '직접적인 치료'라는 모호한 표현의 암보험 약관이다. 약관에는 "직접적인 치료를 목적으로 입원, 수술 시 입원비나 수술비를 지급"하도록 상품이 설계돼있다. 그런데 문제는 암에 걸려 입원·수술·치료할 경우 초기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입원·치료비를 잘 지급하다가 액수가 많아지거나, 치료가 길어지면 '직접적인 치료'가 아니라며 지급을 거부하기 시작하는 관행이다. 대학병원 인근의 요양병원이나 말기 암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며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경우에도 직접적인 치료가 아니라며 지급을 거부한다. 환자와 의사들은 암 환자에게 하는 치료는 모두 '직접적인 치료'이지 '간접적인 치료'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험사는 자기들 나름대로 직접적인 치료가 아니라며 지급을 거부해 소비자 문제를 야기 하고 있다. 이 경우는 모호한 약관을 보험사 마음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문제이다.

사례에서 보듯 보험약관의 소비자 문제 발생은 문 대통령이 말한 대로, 용어가 어려워서도 아니고,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그런 것도 아니다. 금융당국이 '종이호랑이'처럼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그렇다. 금융당국 때문에 금융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것이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사회적 소비자 문제를 발생시킨 당사자인 금융당국이 대통령에게 약관이 복잡해서 소비자 문제가 발생한다고 대통령에게 거짓 보고해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모든 사례들은 보험약관을 약관법에 따라, 모호할 경우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하는 '약관해석의 원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도 이 원칙에 따라 자신들이 인가해준 약관을 권한을 가지고 유권해석을 해야 하고, 유권해석에 따라 지급명령을 내려야 한다.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사업방법서 위배로 '영업정지'등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 그러면 보험사가 알아서 스스로 약관을 쉽고 명확하게 만들게 된다. 지금처럼 약관해석도 권위가 없고 거부하면 그뿐이고 지급명령도 못 내리고 처벌도 하지 못하는 물렁물렁한 종이호랑이 같은 현재의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이 있다면 약관을 명확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금융당국의 '묵인' 하에 보험사들은 보험약관을 대통령이 말했듯이 원래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핑계 대고,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두루뭉술하게 대충 만들어 마음대로 해석하고, 그래도 소비자들이 분쟁을 제기하면 '법원'으로 끌고 가면 그뿐이다. 더구나, 집단소송·징벌배상· 증명책임의 소비자권익 3법도 없어서 소비자를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보험약관이 어렵고 복잡해서 소비자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피해는 금융위원회와 금융당국의 무책임한 직무유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이것을 바로잡지 않는 한 보험약관을 아무리 '쉽게 풀어쓰고 그림을 그려 놓아도' 소비자피해와 분쟁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금융당국을 바꾸는 것이 빠른 길이다.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약력>

조 연 행 / 이메일 kicf21@gmail.com

금융소비자연맹 회장(현재)

금융소비자연맹 상임대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

보험개발원 소비자약관평가위원

한국소비자중앙생활협동조합 이사장

한국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 부이사

교보생명 상품개발담당팀 팀장,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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