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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마주보고 간쟁(諫爭)해야
얼굴을 마주보고 간쟁(諫爭)해야
  • 박석무
  • 승인 2019.01.2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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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칼럼] 2500년 전의 일입니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임금 섬기는 도리를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옛날로야 임금을 섬기는 사람이란 3정승, 6판서에 6승지를 비롯하여 임금 아래서 함께 국사를 논의하는 고관대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대통령 아래 내각을 통솔하는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 부처의 장차관이나 청와대의 수석들을 비롯한 비서관들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해야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여 나라일이 그르치지 않게 잘 되어갈 수 있는가를 물었을 때의 공자의 답변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참으로 짧은 대답이었으니 겨우 글자 여섯 자의 답변입니다. 공자 왈 “물기야 이범지(勿欺也 而犯之)”라는 내용입니다. 풀어서 번역해도 짧은 내용입니다. “(임금을) 속이지 말고 얼굴을 맞대고 간쟁해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대단히 높은 지혜를 가르쳐 준 말이지만 말 자체가 짧으니 주해(注解)도 짧습니다. 주자는 “범(犯)은 얼굴을 맞대고 간쟁합니다.”라고 간단히 풀이했습니다.

다산 또한 짧게 보충의견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실정을 숨기고 은폐하는 것을 기(欺)라 하고, (윗사람의) 위엄을 무릅쓰고 간쟁하는 것을 범(犯)이라 한다.”라고 말하고는 『예기(禮記)』를 인용해 자신의 풀이가 옳음을 증명했습니다. “임금 섬김에는 대면하여 간쟁을 해도 숨김이 없어야 한다.”라는 것을 제시했습니다.(『論語古今註』)

공자의 짧은 답변을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는 인류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자기의 인물됨과 능력을 인정하여 고관대작의 자리에 앉혀준 임금에게 어떤 일이건 숨김없이 말할 수 있고, 부당한 처사에 잘못이라고 간(諫)하고 다투(爭)는 일이 어떻게 쉬운 일일 수 있겠는가요. 임면권을 손에 쥔 임금의 뜻에 거스르는 순간, 그 자리에서 그만두라고 호통을 칠 그 앞에서 잘못을 탓하고 바르게 하라고 간쟁하기는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임금은 아예 대면보고 자체를 없애버리는 경우도 있고, 하더라도 아주 형식적인 보고만 받고 말기도 합니다. 임금을 섬기는데 있어 숨김없고 얼굴 맞대고 간쟁 잘해야 한다는 성인의 말씀이 높은 지혜라는 뜻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던 옛날의 대신(大臣)들, “전하! 소신의 목을 베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을 따를 수 없습니다.”라고 목숨을 걸며 간쟁하던 신하들, 도끼를 들고 상소하면서 상소의 내용대로 하지 않으려면 지니고 있는 도끼로 자신의 목을 베어달라면서 극언을 서슴치 않던 옛날의 충신들, 왜 요즘에는 그런 고관대작이나 신하들을 보기가 그렇게 어려울까요.

전제군주 시절의 그 무섭던 왕권(王權)의 시대에도 그렇게 과감하게 간쟁하던 신하들이 있었는데 민주주의 시대인 오늘, 민권(民權)의 시대에 그런 곧고 바른 공직자들이 없다면, 왜 이렇게 역사가 후퇴하고 말았을까요.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그런 신하들이 조정에 가득 차 있을 때에만 나라가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기야 이범지!” 여섯 글자의 실천은 못하고, 시키는 대로만 따라 하다가 뒷날 감옥 가는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오늘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진리란 속임이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석무

·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 실학박물관 석좌교수

· 전 성균관대 석좌교수

· 고산서원 원장

저서

『다산 정약용 평전』, 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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