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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은 ‘현대판 홍길동’?...이동걸 산은 회장의 잘못된 발언으로 시장가치 ‘휘청’
대우건설은 ‘현대판 홍길동’?...이동걸 산은 회장의 잘못된 발언으로 시장가치 ‘휘청’
  • 박미연 기자
  • 승인 2018.12.1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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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회장, 국감서 "인수해선 안될 회사" 답변...매각 앞두고 국내외에 좋지 않은 '신호(signal)'로 일파만파

[금융소비자뉴스 박미연 기자] “아아, 대감께서 애초에 천한 길동을 위하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게 하셨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일을 말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제 저를 묶어 서울로 올려 보내십시오.”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은 이렇게 한탄한다. 홍길동은 홍 판서의 아들이면서도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다. 이유는 홍길동이 바로 '서얼(庶孼)'에 속했기 때문이다. ‘서얼’은 ‘서자’와 ‘얼자’를 줄인 말이다.

서자는 양반과 중인, 상민 여성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고, 얼자는 양반과 천민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말한다. 몸종이었던 첩의 아들인 홍길동은 정확히 말하면 '얼자'이다. 서얼은 문과 시험 응시가 금지되는 등 사회 진출에 제약이 따랐고, 집안의 대를 이을 수도 없었다. 조선의 '신분 제도'가 낳은 병폐다.

국내 대형 건설업체들이 서울 강남의 재건축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수억원대의 금품을 뿌린 것(금융소비자뉴스 12월1일 기사 참고)으로 드러난 가운데 과거 굴지의 명성을 떨쳤던 대우건설이 때 아닌 ‘서얼’ 취급을 받고 있다. 대우건설이 ‘낳지 말아야 할 자식(?)’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 "대우건설-대우조선-KDB생명, 이전 정부서 인수해선 안되는 회사를 인수했다"

12일 관련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0월 국회 정무위원회의 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대우건설을 대우조선, KDB생명과 함께 "4~5년 전 이전 정부에서 산은의 의사와 관련 없이 인수해선 안되는 회사를 인수했다"고 규정했다.

이 회장은 김 의원이 "인수해선 안될 회사를 인수한 적이 KDB생명이 처음인가?"라고 묻자 "수도 없이 많다. 대우건설, 대우조선…취임 이후에는 한건도 없다. 4~5년전 이전 정부에서 산은의 의사와 관련없이 인수해선 안되는 회사를 인수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대우건설은) 당분간은 인수 기업도 없는 것 같다. 기회가 나오면 언제든 팔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의 말 한마디로 국내 건설업계의 ‘대들보’ 역할을 했던 전통의 대우건설이 KDB생명, 대우조선과 함께 졸지에 산업은행이 인수해선 안 될 회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대우건설이 최근 강남 재건축 시공권 따내려 ‘돈 잔치’를 벌이다가 경찰에 적발된 것은 그들이 얼마나 뇌물의 ‘먹이사슬’ 생존법에 의존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야 말로 선진적 시장경제의 수주방식이 아닌 후진적 ‘뇌물 경제’에 목숨을 거는 대우건설의 현 경영방식을 읽게 해준다

대우건설은 신반포 15차 재건축 시공사를 두고 롯데건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2억3000만원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하거나 제공의사를 표시했다. 대우건설은 조합원 신발장에 슬쩍 선물을 두고 오거나 경비실에 맡기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물론 대우건설의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산업은행은 지난 2011년 3조2000억원에 금호아시아나로부터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이어 올해 초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던 호반으로의 매각 금액은 약 1조6000억원이었다. 몸값이 절반으로 떨어진 셈이다. 그만큼 대우건설의 가치가 급락했다는 얘기다.

                                            김형 대우건설 사장

대우건설, 경찰의 압수수색 ‘단골’ 불명예..."李 회장의 답변은 대우건설 재건 의지 꺾는 ‘청천벽력’"

그 사이 대우건설은 지난 2016년 대규모 해외사업 손실 등에 따른 빅배스로 한 분기에 1조원 가까운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초 호반으로의 매각 실패의 결정적 요인이 된 것도 갑작스레 튀어나온 대규모 해외손실이다. 수익성은 악화했고, 시장의 신뢰까지 추락한 꼴이다. 산은의 입장에서도 매각 실패까지 이어지면서 골치 아픈 존재가 된 것이다.

대우건설은 경찰의 압수수색 ‘단골’이라는 불명예도 안고 있다. 경찰은 지난 1월에도 대우건설 본사 등 3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발로 대우건설이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15차 재건축 아파트 수주전에서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의혹을 받은 탓이다.

이날 경찰의 대우건설 압수수색은 작년 10월 말 롯데건설 본사 압수수색에 이어 두 번째 재건축 비리 수사다. 대우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이 ‘재건축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경찰과 검찰에 불려다니고 ‘비리의 온상’이라는 것은 웬만한 사람들이 모두 아는 사실이다.

산업은행은 지난 6월 김형 대우건설 사장을 선임하면서 '기업가치를 높여 2~3년 후 매각'을 공공연히 강조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9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도 "대우건설은 2~3년 재정비하고 정상화시키면 남북경협 이슈도 있고 시장이 좋아지면 가치가 2배 정도 뛸 가능성이 있다"며 "서둘러 팔 생각은 없다"고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대우건설의 가치나 전망을 비관적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대우건설도 김형 사장을 필두로 잇단 해외사업 부실로 인해 떨어진 수익성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이동걸 산은 회장의 국감 답변은 대우건설에 재건 의지를 꺾는 ‘청천벽력’같은 느낌이라는게 대우건설 내부의 분위기다. 직원들의 사기를 꺾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우건설의 주인인 산은의 기관장으로서 이 회장의 답변이 매우 부적절했다는 반응이다. 마치 새 주인이 입양한 자식을 홍길동처럼 버린 자식으로 취급하며 돌보지 않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의 주인..."스스로 '인수 불가' 낙인찍으면 ‘천덕꾸러기’ 신세 벗어나지 못할 것"

산업은행은 대우건설의 주인이다. 앞으로 대우건설의 가치를 올려 새 주인을 찾아줘야 하는 매각 주체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동걸 회장의 발언이 대우건설 입장에선 더욱 뼈아픈 것이다.

실제 최근 만난 대우건설 한 직원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우건설의 가치를 높이는데 주력하겠다고 하더니 인수해선 안될 회사라고 답변하는 모습을 보니 직원들도 마음이 착잡하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이런 발언이 단순히 직원들의 사기를 꺾는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새 주인을 찾아주는 것은 산은의 몫이다. 그런데 주인이 나서서 '인수해선 안되는 기업'이라고 선을 긋고 낙인을 찍는 것은 시장에 좋지 않은 '신호(signal)'로 읽힐 수가 있다.

한 경제전문가는 “지금 국내 주택경기 침체와 해외 수주 가뭄 등 산업 전반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서얼제도가 타파된 현대사회에서 대우건설이 마치 문재인 정부의 ‘홍길동’으로 둔갑한 느낌이 든다” 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동걸 산은 회장처럼 세상에서 내가 '못난 자식'이라고 하면 남들도 못난 자식으로 보게 되고, 대우건설을 국내외 시장에 어디에다가 내놔도 결국 ‘천덕꾸러기’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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