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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능’과 ’불수능'...수험생 울리는 ‘시험 갑질’, 이대론 안된다
’물수능’과 ’불수능'...수험생 울리는 ‘시험 갑질’, 이대론 안된다
  • 권의종
  • 승인 2018.11.2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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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접해야 좋은 사람 모이고, 좋은 일 생겨...‘갑질’ 시험보다 ‘값진’ 시험이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그게 그리도 어려운 걸까. 올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또 난이도 실패다. ‘역대급 불수능'이라는 아우성이다. 시험 당일 “지난해 출제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출제위원장의 장담은 불과 몇 시간 만에 빈말이 되었다. 그간의 경과만 봐도 수능 난이도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물수능’과 ’불수능‘이 이어졌다. 거의 매년 물이나 불이라는 극단적인 수식어가 뒤따랐다.

올해만 해도 그렇다. 최대 한쪽에 달하는 긴 지문의 국어 시험, 영어권 외국인도 혀 내두르는 영어 영역, 세계적인 수학자들조차 생소해 하는 수학 문제 등이 그 단적인 사례들이다. 그런데도 난이도 조절의 실패로 절망하는 수험생의 처지는 안중에 없어 보인다. 한 문제에, 선택과목의 유불리에 당락이 갈려야 하는 입시생의 절박함은 아예 고려조차 못 한듯하다.

수험생에 대한 이해나 배려는커녕, 국민 전체를 우롱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물수능으로 물에 빠져 죽고, 불수능으로 불에 타 죽는다”는 푸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닌 듯싶다. 당하는 수험생의 입장을 ‘내 알 바 아니다’라는 출제자의 무책임한 태도가 절망을 넘어 분노로 치솟는다. 누가 봐도 명백한 ‘시험 갑질’이다.

갑질이 어디 수능에서 뿐이랴. 재외동포·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서도 수험생 무시는 여전하다. 법무부가 외국인의 비자 신청 단계에서 '토픽 2급 이상'을 요구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는 소식이다. 불법체류가 많은 중국, 베트남 등 26곳 국적자들이 대상이다. 2급은 ‘전화하기, 부탁하기’ 등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능과 ‘우체국, 은행’ 등의 공공시설 이용에 필요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교육부와 법무부가 욕먹는 이유... 상대방 입장 헤아리지 못하는 근시안적·이기적 행정 때문

우리말 배우러 오겠다는 외국인들에게 처음부터 상당 수준의 한국어 능력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앞뒤가 안 맞는 처사다. 대놓고 한국에 오지 말라는 얘기나 다를 바 없다. 버선발로 맞이해도 시원찮을 외국인 연수생을 손사래 치며 내쫓겠다는 허세 부리기다. 내세우는 이유가 가관이다. 불법체류자는 많이 늘어나는데 단속할 인원은 턱없이 부족해서란다.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정도다.

불법체류자를 막으려면 연수생이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합당한 대응이다. 입국 자체를 제한하려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다는 식이다. 국가별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토픽 시험을 시행하지 않는 국가들만도 130여 곳에 이른다. 어학 연수생의 언어 능력 제한을 두는 나라를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다. 불법체류가 엄격하다는 미국도 어학 연수생에게 자국 언어의 자격을 요구치 않는다.

한국어 능력과 불법체류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라도 있단 말인가. 한국어 실력이 높아야 불법체류를 안 하고, 낮으면 그 반대일 거라는 발상이 해괴하고 황당하다.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특히 법을 다루는 부처답지 못한 행동거지다. 당장 불법체류자를 막는 것만 생각하지, 외국인 연수생의 감소로 인한 불이익과 역기능은 상상조차 못 하는 근시안적·이기적 행정이다.

갑질 행태의 절정은 신입사원 채용시험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유례없는 청년 취업난 속에서 채용기업의 숨은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공기업 전형은 채용 갑질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블라인드 채용이 의무화되면서 더욱 기승이다. 입사지원서에 출신학교, 학과, 성적, 나이 등을 밝히지 못하게 하자 서류심사보다 필기시험에서 변별력을 턱없이 높이려는 추세다.

갑질의 절정은 ‘제3의 고시’ 입사시험… 난이도, 시험과목, 면접방식서 ‘안하무인’ 행세 격

필기시험 난이도는 장난이 아니다. 매년 수준이 급상승, ‘제3의 고시’로 통한다. 외부기관에 출제를 맡기다 보니 현실성이 뒤지는 문제가 수두룩하다. 수험과목은 사전 예고도 없이 바뀌기 일쑤다. 시험 한두 달 전 뜨는 채용공고를 보고서야 과목변경 사실을 알게 된다. 종전 과목에 맞춰 공부한 수험생은 맨붕에 빠진다. 그간의 학습이 허사가 되면서 희망하는 기업에 원서조차 못 내민다. 그런데도 책임부담은 오롯이 힘없는 취준생의 몫이다.

면접도 신입직원 수준을 능가한다. 지원하려는 기업의 업무, 비전, 경영전략은 기본이고, 지원 동기, 입사 후 업무수행계획, 기여할 분야와 역할 등까지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다. 기존 직원도 답변키 힘든 질문들이 적지 않다. 온라인·오프라인에서 온갖 자료를 샅샅이 뒤져 내용을 숙지하고 예상 질의응답 자료까지 만들어 줄줄 외워야 한다. 이쯤 되면 신입직원 시험인지 기관장 전형인지 분간조차 어렵게 된다.

채용절차 또한 복잡다단하다. 서류심사를 통과해도 필기시험과 면접 전형으로 갈 길이 멀다. 필기시험을 1차와 2차로 나눠 보기도 하고, 면접도 수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인적성 검사, 프레젠테이션, 실무자와 임원 면접 등 종류도 가지가지다. 단계 별로 극심한 경쟁을 거쳐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초기 전형의 합격자 배수를 높게 책정, 후반 탈락자가 많다 보니 상당수 수험생이 오랫동안 시험에 매달려야 한다.

느려터진 진행도 곤욕이다. 8월부터 시작된 일정이 12월에나 끝이 난다. 단계별 합격자 발표가 늦고, 타 기관의 발표를 기다렸다 최종합격자를 확정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4개월 넘는 대장정에 지원자들은 속이 타고 피가 마른다. 그러고도 합격이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영광의 주인공은 극소수다. 대다수는 들러리만 서고 헛물만 켠다. 좋은 대접에 좋은 사람 모이고, 좋은 사람 모여야 좋은 일이 생긴다. 인재를 몰라보고 괴롭히는 시험 갑질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갑질’ 시험보다 ‘값진’ 시험을 고대한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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