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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경영과 현장방문...조선시대 미복(微服) 행차 숨은 지혜 읽어야
현장경영과 현장방문...조선시대 미복(微服) 행차 숨은 지혜 읽어야
  • 권의종
  • 승인 2018.11.1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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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서, 현물 보고, 현상 파악하는 ‘3현(現)주의’는 경영의 기본...몰래, 자주, 민폐 없이 찾아다니는게 옳아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새해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기업들도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에 잰걸음이다. 주요 기업들의 내년도 경영방향은 다들 제각각이나, 놀랍게도 ‘현장경영’ 강화에 공히 방점을 찍고 있다. 현장경영은 말 그대로 경영자가 현장을 방문해 직원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빠른 의사결정을 이끌어내는 경영기법이다. 톰 피터스와 로버트 워터맨이 공저 ‘초우량 기업의 조건’에서 처음 소개한 개념이다.

현장에서, 현물을 보고, 현상을 파악하는 ‘3현주의’는 경영의 기본이 된 지 오래다. 현장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훌륭한 전략이 나올 수 없고, 좋은 전략과 방침이 시달되어도 현장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게 마련이다. 현장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어야 효과적인 전략이 수립되고 실행될 수 있다는 게 요지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믿음이 바탕에 깊게 깔려 있다.

현장경영에 대한 업계의 시각은 찬사 일변도다. IBM의 CEO 시절 루 거스너는 수천 명의 고객과 직원, 사업 파트너를 만나기 위해 100만 마일 이상을 비행했다. 그의 거실에는 '책상은 세상을 보기에는 위험한 장소다'라는 글귀가 걸려 있었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빌 메리어트 회장은 은퇴식 행사장에 모인 '세계 각국의 경영자 1,300명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의 CEO로 재직하는 동안 1주일에 25곳의 매장을 둘러봤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오감 경험을 판매하기 때문에 현장을 직접 보고 느껴야 한다'게 그의 평소 일관된 지론이다.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은 수시로 매장을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는 걸로 유명하다.

현장을 알아야 하나 현장만 알아서도 곤란...박원순 서울시장 '서민 코스프레', 집값만 올리고 말았나

현장경영이 한국에서는 기업들보다 정치권에서 더 큰 인기다. 정치인, 선거철 후보자, 기관장들이 주로 애용하는 단골 메뉴다. 허름한 옷차림, 부스스한 머리칼, 초췌한 얼굴로 현장 행보에 나서곤 한다. 인파가 몰리는 거리나 전통시장은 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행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셀카 찍기를 자청한다. 시장에서는 평소 굽어다보지 않던 길거리 음식을 시식하고 소액의 찬거리 구매로 생색을 낸다. 낯 간지러운 ‘서민 코스프레’다.

‘보여주기식’ 방문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효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다. 그렇게 해서 현장에 숨어 있는 해법이 찾아질 리 없고 찾아낼 수도 없다. 각본에 따라 접촉할 인물을 섭외하고 할 말까지 정해주는 상황에서 무슨 명답이 나올 수 있겠는가. 애초부터 답을 얻으려는 의도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기는 하지만.

좋은 제도를 악용하려는 뻔뻔함이 항시 문제다. 현장방문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지난 여름 박원순 서울시장의 삼양동 옥탑방살이가 장안의 화제로 회자되었다. “3차원적인 시민의 삶에 대한 정책을 펴려면 직접 듣고 봐야 한다”는 뜻은 높이 살만했다. 하지만 유례없는 무더위 속에서 강행된 옥탑방 체험치고는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지적이 많다. 당시 그나마 잡혀가던 서울지역 집값만 폭등시킨 건 아니었는지.

현장이 만능은 아니다. 현장을 알아야 하지만 현장만 알아서도 안 된다. 현장에 답이 없을 수 있고, 설령 있어도 찾지 못할 수 있다. 꼭 현장에 가봐야만 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조직의 구성원, 소통채널, 네트워크를 활용해도 현상을 파악하고 답을 얻는 데 지장이 없는 세상이다. 지금은 정보통신기술이 만개하고 초연결·초지능이 득세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낯 간지러운 ‘보여주기식 현장방문’,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 낳아...말없는 사람이 더 무서운 줄 알아야 

현장방문에도 지켜져야 할 규칙들이 있다. 우선 몰래하는 게 정도(正道)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하는 ‘암행’이 빛을 더 발한다. 보도자료 뿌리고 방송장비 동원하는 이벤트성 행사는 역기능만 부른다. 의미도 없을 뿐더러 그나마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나 해법마저 놓치기 쉽다. 있던 답도 사라지고 만다. 조선 11대 중종부터 고종까지 약 400년간 암행어사 제도를 비밀리에 운영했던 선조들의 숨은 지혜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현장방문을 하려면 자주하는 게 상책이다. 현장 상황은 늘 가변적이다. 급변하고 돌변하기 일쑤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게 현장이다. 내일이 되면 또 무슨 변화가 어떻게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답 또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현재의 해법이 미래에도 통하리란 보장도 없다. 한두 번 방문으로 영구적 해법을 기대했다간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위한 잦은 방문이 긴요한 이유다.

현장방문은 답을 구하기 어려울 때 하는 게 맞다. 미리 답을 정해 놓은 상태에서 이를 합리화하거나 정당화시키기 위한 목적의 방문은 절대 삼가야 한다. 국민을 기만하고 괴롭히는 부당한 처사다. 필요 없는 일을 모르고 하는 것도 큰 잘못일진데, 필요 없는 줄 뻔히 알면서 일부러 하는 고의적 행동은 용서받기 힘들다. 상응한 처벌과 응징을 받아 마땅한 중죄에 속한다.

어떤 이유로도 민폐는 용납될 수 없다. 그렇잖아도 먹고 살기 힘든 판국에 TV에서나 보던 유명 인사들의 갑작스런 들이닥침은 그 자체가 고역이다. 안 오는 게 도와주는 일이다. 방문 받는 쪽에서는 어쨌든 부산을 떨어야 한다. 듣기 좋은 말도 골라 둬야 한다. 귀에 거슬리는 쓴 소리는 해봤자 통할 리 없고 득 될 일 또한 만무하다. 국민들도 그 정도는 다 안다. 모르는 체 입 다물고 있을 뿐이다. 말없는 사람이 더 무서운 줄 알아야 할 텐데. 그게 걱정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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