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 정신' 재현하라...22세기에도 가난은 우리의 큰 스승
'헝그리 정신' 재현하라...22세기에도 가난은 우리의 큰 스승
  • 권의종
  • 승인 2018.11.1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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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가 당면한 난관에서 벗어나 선진경제로 재도약하기 위해서도 어려움은 어려움으로 맞서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대한민국 중소기업은 어떻게 살아왔나. 한마디로 험난한 노정이었다. 그 경영자들의 인생역정도 매한가지다. 대다수가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생계를 위해 고향을 등지고 도시 변두리로 보금자리를 옮겨야 했다. 주경야독일망정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논바닥처럼 갈라진 방바닥 틈새로 살인적 연탄가스가 늘 넘나들었지만 눈비 피할 단칸방 하나로도 감사했다. 슬레이트 처마 밑 사과 궤짝을 찬장 삼아 투박한 그릇 몇 개로 구색을 맞춘 초라한 부엌살림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왜 그리 많았는지.

배움의 길도 고단하기 그지없었다. 많은 형제들 가운데 교육의 기회는 장남에게 주어진 일종의 특권이었다. 장자 우대 문화에 큰아들 잘 가르쳐 놓으면 졸업해서 동생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까지 보태진 때문이었다. 이마저도 아들에만 국한돼 딸들에게는 진학의 기회란 언감생심이었다. 여성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적성과는 상관없이 학비가 싸거나 면제되는 교대나 간호대로 가야 했다. 결과적으로 초등교육과 의료분야가 비약적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여기에 힘입은 바 컸음은 누구도 부인키 어려운 대목이다.

일터는 또 어떠했나. 우여곡절 끝에 힘겹게 얻은 일자리였지만 작업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요즘 용어로 산업재해 위험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형편없는 지경이었다. 일감만 있으면 주야간이 따로 있을 리 없고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는 휴일 근무도 마다치 않았지만 특근 수당은 구경조차 힘들었다. 워라밸 등의 호사스런 용어는 사전에도 등재치 않았던 시절이다.

가난은 그토록 감내하기 힘든 천형이었던가. 지금 와서 보면 오히려 그 반대의 측면이 컸음을 확인케 된다. '우리는 왜 이리도 가난할까라는 한숨과 원망 대신 가난의 숙명을 새로운 비전과 희망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던 데는 오히려 헝그리 정신에 힘입은 바 컸다. 자원도 자본도 기술도 없었던 한국경제가 개발과 고도성장을 이뤄내 세계 10대 경제대국 반열에 당당히 오를 수 있었던 거나, IMF 환난 극복 과정에서의 구조조정의 고역도 가난을 이겨낸 기업가 마인드 없이는 성취되기 어려웠다.

한국경제의 개발과 성장, IMF 구조조정의 고역 감내... 가난 이겨낸 ‘기업가 마인드’로 성취한 결과물

최근 대한민국 경제는 또 다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내수 침체 속에서도 그간 국내 경기를 견인했던 수출 증가세마저 미·간 무역전쟁 장기화, 반도체 가격 하락 등으로 둔화되고 있다. 향후 경제전망도 한층 불투명해지고 있다. 주요 경제연구소들의 성장 전망치도 하향 곡선을 내달리고 있다. 15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 100만 명을 넘어선 실업자수, 50만 명을 초과한 청년실업자 등의 빈곤층도 넓고 깊어지고 있다. 큰 일이다.

중소기업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의 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 매출 감소, 경쟁 격화, 임금 및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경영상태가 악화 일로다. 당장 제조업 가동율이 1년 전에 비해서도 뚝 떨어졌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이후 최대의 하락폭이다. 외부 환경 악화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국내 중소 제조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놀라운 것은 절약마인드가 더 없이 요구되는 이 불황기에도 소비의 기세는 건재한 현실이다. 설비투자와 생산능력이 감소하는 가운데에서도 민간 소비만은 유독 꼿꼿하다. 해외관광객수는 연간 2,300만 명을 넘었다. 전체 인구수 대비 45% 수준으로 여타 나라들이 범접키 힘든 부동의 세계 1위다. 국내 커피시장 만해도 성장성이 가히 폭발적이다. 목 좋은 상권에는 어김없이 고급 카페들이 성업 중이다. 커피가 한국인에게 생활의 일부로 접수된 상태라지만 정도가 심하다. 전 지구적 소형차 선호의 흐름 속에서도 한국인들의 고급차 대형차 사랑은 유별나다.

힘든 경제상황은 헝그리 정신 망각한 결과...“허리띠 조르는 근검절약, 뼈 깎는 자기혁신으로 대처해야”

건강과 웰빙은 국내 소비시장 각 분야를 관통하는 대표적 소비패턴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기능성 식품은 물론 생활용품, 가전제품, 문화상품 등에 파급되면서 수요가 수그러들 줄 모른다. 초대형 TV, 공기청정기, 무선청소기 등은 공전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되어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유기농 전문매장의 매출은 갈수록 늘고 있고, 먹거리 외식 산업은 불황의 무풍지대로 통한다. 차량공유서비스 우버 창업자인 트래비스 캘러닉까지 한국 외식산업을 넘볼 정도다.

얇아지는 호주머니 사정에도 불구하고 고가·고급 제품에 대한 소비가 커지는 것은 국내 소비자들의 욕구가 그만큼 업그레이드 된 점에 일차적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경제난으로 불투명한 미래 비전에 실망한 경제주체들의 대리만족이 소비열풍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지적에 동조하는 견해도 적지 않다. 여기에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하는 타인을 의식한 소비문화 또한 소비 증가에 단단히 한 몫 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어찌 보면 지금의 힘든 경제상황은 헝그리 정신을 망각한 결과일 수 있다. 어려움은 어려움으로 맞서야 한다. 경제난 또한 허리띠를 조르는 근검절약과 뼈를 깎는 자기혁신이 선행될 때 이겨낼 수 있다. 자고로 한민족은 모방에서 창조를 연출하는데 특별히 강한 측면이 있다. 외국의 시스템, 종교, 제도를 들여와 원래의 모습보다 훨씬 뛰어나게 성공적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들이 어디 한 둘이었던가.

이 모두가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는 힘든 역할을 스스로 자청해서 떠맡고 인내로 현실 탈출을 시도해 얻은 훌륭한 결과들로 이해될 수 있다. 한국경제가 저성장, 고실업, 양극화 등 현재 당면한 어려움에서 벗어나 선진 글로벌 경제로 재도약하기 위해서도 헝그리 정신의 재현이 요구된다. 21세기에도, 22세기에도 가난은 여전히 사람과 세상의 큰 스승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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