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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자산에 대한 '공짜 문화'는 몰염치...기업 경쟁력까지 해칠라
지적 자산에 대한 '공짜 문화'는 몰염치...기업 경쟁력까지 해칠라
  • 권의종
  • 승인 2018.11.0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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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정보, 경험, 비장의 노하우(知情經祕)’ 중요...'제값 처 주기’가 정도경영 방책이자 성공거래 관건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공장 기계가 멈춰 섰다. 엔지니어들이 백방으로 고쳐봤지만 허사였다. 전문가를 불러왔다. 그는 망치로 한두 군데 쳐서 기계를 작동시키고는 수리비로 30만 원을 요구했다. 사장은 망치질 몇 번 한 것뿐인데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전문가가 내민 계산서에는 ‘망치질 값 1원, 어디를 망치질할 지 알아낸 값 299,999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경제전문지 유머 코너에 실린 이야기다.

재미는 있으나 뒷맛이 개운치 않다. 웃어넘기기에는 께름칙한 해학이다. 남의 것 거저먹기 좋아하는 우리 사회의 ‘공짜심리’를 비웃는 듯해서다. 이점에서는 기업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지식경제, 창조경제를 들먹이는 요즘도 지식과 정보, 경험과 노하우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구매에는 인색한 기업들이다. 이런 일로 돈을 요구하면 치사하게 여기곤 한다. 이하에서는 ‘지식, 정보, 경험, 비장의 노하우’를 편의상 ‘지∙정∙경∙비’(知情經祕)로 약칭코자 한다.

지정경비의 경제적 가치는 누구도 부인키 어렵다. 재무제표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무형의 자산임에는 틀림없다. 가치 있는 서비스에 대한 가격 지불은 당연지사다. 오랜 기간 각고의 노력으로 체득한 지식자산에 대한 무임승차는 몰염치의 극치다. 도둑의 심보나 다를 바 없다. 공짜배기 사고방식으로는 지식, 정보, 경험, 노하우의 연결과 융∙복합이 핵심인 4차 산업혁명시대를 살아가기 힘들다.

지정경비에 대한 적극적 활용이 오히려 긴요하다. 산업계를 눈여겨보면 값이 나가는 지정경비들이 넘쳐난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에서 퇴직하는 고급 인적자원에 체화된 지정경비는 그 대표적 사례다.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의 와중에서 고난도 지정경비들이 홍수를 이룰 정도다. 인력난, 기술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다. 고가의 서비스를 염가에 구매할 수 있는 최적의 쇼핑 찬스다.

국내 기업들, 오랜 시간과 힘든 노력으로 체득한 '지정경비(知情經祕)' 탈취 공격에 무방비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기존 지식에 새로운 가치를 부가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기존에 전혀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발명의 케이스는 거의 없다. 기왕의 지정경비를 활용해 효과적으로 개선해 내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그렇다면 지정경비의 무상 취득 시도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어렵게 만드는 일일 수 있다. 지름길 놔두고 돌아가는 어리석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썩 좋은 예는 아니지만, 중국 기업들의 한국인력 채용에서 소중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최근 중국 기업들은 한국 굴지의 기업에서 은퇴한 인력을 앞 다퉈 채용 중이다. 고액 연봉을 미끼로 한국 ‘인재 사냥’에 나서고 있다. 특히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핵심 산업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하이테크 분야에서 핵심인력 탈취를 위한 중국 업체들의 시도가 갈수록 노골적이다.

현장 필요 인력을 충당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이 아니다.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한 무차별적인 인재 확보의 케이스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의외의 임무가 부여된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지정경비를 수집하는 게 주된 미션이다. 함께 일했던 한국의 옛 동료나 후배들에게 밥 사고 술 사주며 지정경비를 빼내오는 일이다. 결과는 끔찍하다. 수십억 원씩 수년 간 투자해야 따라잡을 수 있는 고급 기술이 염가의 비용으로 단시일에 개발되고 만다.

지정경비 탈취 공격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대응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무방비 상태다. 그러다보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특허 등 지적재산권으로 등록된 내용이 아닌 경우에는 법적 대응도 쉽지 않다. 더 큰 걱정은 대다수 기업들이 지정경비의 중요성이나 활용의 당위성에 둔감해 있는 현실이다. 고치기 힘든 한국 기업의 고질적 병폐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중소기업, 대기업 퇴직인력에 체화된 노하우 활용 절실... 높은 가치, 염가 구입의 최적 기회

기업 내의 지정경비 공유 역시 부재인 상태다. 임직원 개개인의 지정경비 공유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큰 맘 먹고 공개해봤자 돌아오는 게 없다. 금전적· 비금전적 보상은 일부 대기업에서나 어쩌다 있는 일에 불과하다. 자칫 '그러면 네가 해봐'라는 식의 덤터기만 쓸 수 있다. 할 일만 늘리는 악수가 된다. 이런 판에 자신의 지정경비를 내놓을 ‘바보’가 있을 리 없다. 하등의 필요도 이유도 없다.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다.

간혹 적지 않은 돈을 들여 힘들게 외부 전문가나 원로를 초청하는 경우에도 이벤트성 행사에 그치곤 한다. 모여 앉아 강연이나 듣고 사진 촬영하기에 바쁜 정도다. 손님으로 정중하게 모시면 그걸로 다 되는 줄 안다. 그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 지혜에 대한 활용은 엄두조차 못 낸다. 성과와 효율을 몇 십 배 올릴 수 있는 모처럼의 호기인 데도 이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다.

비용 지불에 경직적인 회사 내규도 걸림돌이다. 지급 대상별로 금액이 책정돼 있고 그것도 두툼한 보고서를 공식적으로 첨부해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요구한다. 그마저도 교수, 전문가 등 사회적 학문적 명성이 탁월한 경우에나 해당되는 일이다. 이름 없는 사람의 조언이나 도움말 정도에는 예산 집행이 불가능한 구조다. 기껏해야 ‘고맙습니다’, ‘나중에 식사 한번 모시겠습니다’ 는 선에서 말로 때우고 끝난다.

돈을 써야 돈이 벌린다. 성과 거양에는 비용 투여가 필수 요건이다. 먼 장래까지 생각하면 구현되지 않은 지정경비에도 소정의 대가를 치르는 게 옳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게 거래의 속성이다. 인색함이 소탐대실(小貪大失)을 부를 수 있다. 가치에 대한 ‘제값 처 주기’야말로 정도 경영의 방책이자 성공 거래의 관건이 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지만 그랬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 기업 존폐를 자해하는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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