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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日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우리는 과연 떳떳한가?
대법원의 日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우리는 과연 떳떳한가?
  • 임태순 대기자
  • 승인 2018.10.3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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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피해보상법안 17, 18, 19대 국회서 잇따라 폐기돼...우리가 피해보상 해주고 자존감 높여야

[금융소비자뉴스 임태순 대기자]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씨 등 4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본 기업의 배상을 명령하는 의미있는 판결을 내렸다. 일본정부는 이번 판결에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하는 등 강력반발하고 있지만 정부는 대법원의 배상결정이 열매를 맺을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편으론 이번 판결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피해보상에 대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면 마음 한편이 무겁다. 우리에게 부과된 보상책임에 대해서는 소홀히 해온 모순되고 부끄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책임을 살펴보려면 1965년 맺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라는 긴 이름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협정을 체결하고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받았다. 또 상업차관으로 3억 달러를 받았다. 차관공여의 대가로 우리나라는 대일재산청구권과 관련된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됐다. 민간이 갖고 있는 대일재산에 대한 책임이 우리 정부의 몫이 된 것이다. 그래서 당시 대학생 등 많은 사람들이 한·일협정에 반대해 시위를 벌였다. 이른바 ‘6·3사태’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이 된 한일청구권 협정

협정문을 보면 일본에 재산청구를 할 수 없는 대상이 나온다. ▲1909~45년까지 조선은행을 통해서 일본으로 반출된 지금(地金)·지은(地銀) 67톤, ▲조선총독부가 한국 국민에게 반제(返濟)해야 될 각종 체신국의 저금·보험·연금, ▲일본인이 한국의 각 은행으로부터 인출해간 저금액, ▲재한(在韓) 금융기관을 통해 한국으로부터 대체 또는 송금된 금품, 한국상품, ▲징병·징용당한 한국인의 급료 수당 및 보상금, ▲종전(終戰) 당시 한국법인이나 자연인이 소유하고 있던 일본법인의 주식, 각종 유가증권, 은행권 등 6개항이다.

당시 정부는 대일차관을 경제개발에 썼고 민간재산 보전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요즘처럼 사유재산에 권리인식이 높지 않았던 데다 권위주의 정부였기 때문이다. 보리고개라는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래도 1970년대 보상이 일부 이루어졌다. ‘청구권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 등이 제정돼 민간에 대한 보상이 부분적으로 있었다.

그러나 청구권 신고기간이 10개월로 짧았고, 보상금액이 무상자금(3억달러)의 5.5%에 불과해 실질적인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조선총독부 보험 등은 아예 보상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그나마 관련법들이 1982년 모두 폐지돼 청구권을 보상받을 수 있는 법적근거가 사라졌다.

실마리가 된 노무현의 3.1절 기념사

수면 하에 잠자던 민간의 대일재산권 보상은 지난 2005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그동안 정부가 미흡한 것이 있다면 보상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것이 계기가 돼 금융소비자연맹에 ‘일제 강점하 민간재산청구권 피해자보상위원회’가 결성됐다. 일제 강점기에 민간인들이 갖고 있던 재산 권리에 대한 피해를 받기 위한 보상받기 위한 단체다. 구체적으로는 일제 때 조선총독부에서 판매한 간이보험 가입자의 보험금을 말한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전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에 간이보험을 우리나라 국민에게 강매했다. 월 보험료 1엔짜리 종신보험이었다. 형편이 되는 사람은 1인당 월 1엔, 그렇지 못한 사람은 월 50전씩 부과했다.

이 때 간이보험에 들었던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어 보험료를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더욱이 간이보험은 형식적이나마 보상을 했던 1970년대에는 대상에서 제외됐던 것이니 돌려달라고 해도 정부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금소연이 ‘일제공대위’를 구성, 국회에서 공청회를 개최하고 국회의원들과 대책을 모색했다. 독립투사의 자손인 김원웅 의원 외 34명이 2007년 1월 ‘일제강점하 민간재산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해 보상의 희망을 싹틔웠다. 그러나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법안 통과를 바라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2009년 17대 국회가 폐회하면서 재경부가 약속한 실태조사는 지켜지지 않고 법안도 자동 폐기됐다. 18대 국회에서 우제창 의원 등 55명이 2009년 4월 21일 또 법안을 발의했지만 이번에도 재경부의 적극 반대와 한나라당 의원들의 소극적 행동으로 법안소위인 재경위 소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후 19대 국회에서도 다시 법안 제정 움직임이 있었으나 비슷한 전철을 되풀이했다.

1200여 억 원 많은가 적은가

그렇다면 보상 규모와 대상은 과연 얼마나 될까.

2007년 발의된 ‘일제강점하 민간재산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안’을 보면 민간이 보상받아야 할 대상과 규모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법안에 따르면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상된 재산권,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등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보상대상자는 대일민간청구권 중 무기명채권의 경우에는 무기명채권증서를 소지한 자, 기명채권의 경우에는 채권자 또는 그 채권자의 재산상속인으로 해 증서만 있으면 후손들도 보상받을 수 있게 했다.

구체적으로는 1945년 이전에 발행된 일본국의 국채 및 지방채, 일본 저축권, 일본국이 발행한 군표, 일본국에 본점을 둔 일본국 법인이 발행한 주권, 사채 및 유가증권은 물론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4일까지 일본국으로부터 귀국한 대한민국 국민이 귀국할 때에 일본국 정부기관에 기탁한 기탐금도 포함된다. 또 일본국에 본점을 둔 일본국의 생명보험회사에 대한민국 또는 일본국에서 납입한 보험료와 보험금도 포함돼 금소연이 제기 했던 간이보험도 당연히 대상이 됐다. 피해보상은 위원회를 설치, 심사를 거쳐 3년 안에 하기로 돼 있다. 

보상액은 광복 이후 60년간 소비자물가가 약 11만 배, 생산자물가가 약 7만 배 상승한 점을 고려해 기준금액 1엔 또는 1원(圓)에 대해 대한민국 통화 10만원으로 했다. 단 보상금에 상한선을 둬 1인에게 지급되는 보상금이 10억원을 초과할 수 없도록 했다.

당시 국회 공청회 자료에 따르면 일제강점하 보험, 채권, 예·적금 등의 개인 재산권은 모두 24억 8,100만원(일제 강점하 기준금액)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가운데 2억 2,073만 3천원(일제 기준금액)은 이미 보상받았으므로 이를 제외하면 보상해줘야 할 개인재산권은 22억 6.026만 7천원이 된다.

여기에 금소연(당시 보험소비자연맹)에 접수된 피해사례를 적용해 실제 보상금을 산정했다. 2005년 3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금소원에 접수된 피해사례는 10,776건에 접수금액은 159만 2,384원이었다. 금소연은 접수건수 중 일부는 보상받을 수 있는 권리가 없고 1인당 보상최고액이 10억원인 것을 감안, 피해재산의 77% 정도만 보상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적용하면 국가가 보상해야 할 보상액은 123만 2,833원(일제 기준금액)이 된다. 여기에 현 시가 10만원을 곱하면 정부가 보상해줘야 할 금액은 1,232억 8,330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냥 덮어선 안돼

간이보험 피해보상금 1천2백여억 원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다. 우리의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이를 정도로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정부 예산이 400조를 넘고 복지예산만 100조를 넘는다. 4대강 개발에 쏟아부은 20조 중 일부를 할애하면 해결할 수도 있다. 또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사립유치원에서 보듯 국민혈세가 허투루 쓰이는 곳도 많다. 이런 것들을 구조조정하면 일제로부터 피해를 입은 민간재산권을 충분히 보상해줄 여력은 있다.

일본이 해야 할 것을 왜 우리가 보상해줘야 하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였던 우리가 먼저 보상해주고 가해자였던 일본에 대해 추후 보상이나 배상을 요구하는 게 더 정당성이 있고 일본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 수 있다.

간이보험 보상금 환수운동에 나섰던 금소연 조연행 회장도 “정부가 1970년대 일부 보상을 해줬던 것을 들어 얼버무릴게 아니라 솔직히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정에 부담이 되면 채권을 발행해 부담을 늦추는 방법도 있다”고 귀띔했다.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한 포스코가 피해보상에 참여하는 방안도 있다. 포스코는 지난 3분기 매출액이 16조 4천억, 영업이익이 1조 5천억에 이를 정도로 우량기업이다. 경영성과를 직원처우 개선 등 내부에만 쓸 것이 아니라 포스코기업의 특수성을 감안,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지혜를 모으면 우리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면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다. 모른 채 하고 마냥 덮어둘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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