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 못하는 자기소개서, 취준생만 힘들다
‘자기소개’ 못하는 자기소개서, 취준생만 힘들다
  • 권의종
  • 승인 2018.09.1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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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의 요체는 요령이나 기술이 아니며, 실력·능력으로 공정 경쟁하는 장(場) 마련돼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요즘 들어 커피전문점이 만원이다. 노트북을 펴든 젊은이들이 유독 많다. 취업시즌을 맞아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취업준비생들이다. 그간의 학습내용을 총 정리해야할 막바지에 뜬금없는 자소서 열풍이다. 식구들 눈치 보여 집에서 쓰기도 어렵고, 따닥따닥 자판소리에 도서실에서의 작업도 힘들다. 커피전문점만한 곳이 없다. 

실제로 취업에서 자소서만큼 중요한 게 없다. 취직의 알파와 오메가로 통한다. 첫 관문인 서류심사의 통과는 자소서에 의해 결정된다. 면접 때 나오는 질문도 대부분 자소서 내용과 관련이 깊다. 수험생들로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형편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표절과 대필이 난무한다. 자소서 작성을 코칭해 주는 컨설팅 전문 학원까지 등장했다. 자소서의 샘플이나 예문, 작성방법을 도와주는 인터넷상의 유료 사이트들도 여럿이다. ‘취업 자소서 작성비법’ 등의 표제를 단 책자들도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다들 돈벌이 쏠쏠한 신종 비즈니스로 자리집고 있다. 

자소서에서 ‘자기소개(紹介)’를 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을 철저히 감추는 ‘자기소개(疏開)’를 해야 한다. 땅을 파 물길을 다른 쪽으로 돌리듯 자신의 신상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꼭꼭 숨겨야 한다.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면서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신체조건, 출신지역, 학교와 학과, 성적을 기재할 수 없다. 가족관계는 물론 성별, 나이까지도 밝혀서는 안 된다. 사진 부착도 금지 사항이다. 그러다 중장년층이 신입직원으로 뽑힐까 걱정이다.

커피전문점에 젊은이들이 몰리는 이유... 알고 보니 ‘자소서 작성’ 열풍 때문

자소서 작성에 원칙도 기준도 없어 보인다. 전공학과는 표기치 못하게 하면서 수강과목은 적으란다. 말 그대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인턴 경력을 표시하게 하는 것도 공평치 못한 처사다. 공공기관과 대기업의 인턴 기회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힘든 현실에서 이를 평가에 반영하는 자체가 명백한 역차별이다. 

자격증 표시도 논란거리다. 학업에 전념해야 할 재학생들까지 자격증 열품으로 몰아가고 있다. 취업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성적관리는 이미 학생들의 관심 밖 사항이다. 솔직히 지원자들에 대한 능력평가 수단으로 학업 성적만한 게 없다. 대학 4년간의 생활기록부인 학력과 학점은 안 보면서 인턴 경력이나 자격증 유무를 따지는 것은 본말의 전도다. 학교 수업에 열중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자소서에는 직무와 관련된 내용만 적어야 한다. 입사희망 기업의 업무를 제대로 알 리 없는 지원자들에게 직무수행을 위한 준비 사항, 입사 후 계획과 기여할 내용을 적어내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기존 직원들도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여러 곳에 지원서를 낼 경우 이런 쓸모없는 일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허구한 날 회사의 홈페이지와 기사 등을 서칭, 분석하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 그래봐야 일회용에 불과하다. 채용하는 곳마다 업종이 다르고 원하는 인재상도 제각각이다보니 매번 새롭게 작성해야 한다. 이런 낭비가 없다.

심사위원들도 곤욕을 겪는다. 누가 쓴지도 모를 자소서를 서로 돌려가며 읽어야 한다. 우열 판정은 고사하고 내용 파악조차 힘들 게 분명하다. 굳이 현행 방식을 고집하려면 자소서를 ‘직무수행계획서’로 바꾸고, 대필이나 표절을 가려낼 제도적 장치부터 마련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대입 전형의 경우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자소서 유사도 검색 시스템'을 통해 표절한 학생을 골라내 불합격 처리한다. 지난해만도 자기소개서를 베꼈다가 들켜 1406명이 대학에 떨어졌다. 

업무 모르는 수험생에게 “직무수행 준비 내용, 입사 후 기여 사항을 써내라고?”

블라인드 채용은 2017년 이후 공공기관에서 실행 중이다. 올부터는 몇몇 대기업들을 필두로 민간 기업에 확대 시행되고 있다. 학연, 지연, 혈연이 중시되는 비합리적인 사회 환경을 탈피케 하려는 정부의 고민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다고 명분만 앞세워 덜컥 정책시행에 나설 수는 없다. ‘깜깜이’ 자소서 중심의 블라인드 전형이 초래할 비효율과 부작용도 같이 살폈어야 했다. 

채용 담당자들의 자소서에 대한 신뢰 또한 높지 않아 보인다. 마지못해 정부 지침에 따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서류심사를 줄이고 면접 비중을 늘리는 기업이 느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현상이다. 개인별로 기껏 3∼4분에 불과하며 주관성 개입의 여지가 높은 면접으로 당락이 좌우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불합격자들은 자신이 왜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취업전형 전반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의 채용방식까지 이래라 저래라 할 정도로 정부 입장이 한가롭지 못하다. 2010년 금융위기 이후 취업자가 가장 적게 늘고,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실업자가 폭증하는 고용 참사가 목전에 닥치고 있다. 내버려 둬도 잘 할 수 있는 신입직원 채용방식까지 정부가 챙기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다. 시장경제의 최대 강점인 자율성을 죽이는 일이다. 

채용이나 취업의 요체는 요령이나 기술이 아니다. 실력과 능력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 이를 통해 우수한 인재가 선발될 수 있어야 한다. 합격자나 불합격자 공히 결과에 수긍하고 채용기업도 만족할 수 있는 길이다. 형식이 실질을 능가할 수 없다. 심각한 취업난에 지칠 대로 지친 젊은이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자소서 작성지침 따위로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잖아도 아픈 청춘들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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