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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와 '연금 사회주의' 논란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와 '연금 사회주의' 논란
  • 권의종
  • 승인 2018.07.1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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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반 우려 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피 같은 국민 노후자금 제대로 된 운용방안 마련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즉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지침이 도입된다. 정부 로드맵이 마련된 상태다. 초안에는 현재 배당 확대에 국한된 주주활동 기준을 경영진 사익추구, 부당지원, 횡령, 배임 등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사안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사안을 '중점관리사안'으로 정한 후 해당 기업의 경영진 면담을 통해 개선 대책을 요구하고, 비공개 서한을 발송한다.

비공개 서한으로 해결이 안 될 경우 주주총회에서 기업가치 훼손을 주도한 이사, 감사 선임 등을 반대한다. 중점관리기업 '블랙리스트'도 만들어 명단을 공개하고, 공개서한도 발송할 계획이다. 부정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임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주주대표소송제도를 도입하고,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위탁사에도 가산점을 부여한다. 또 국민연금이 투자기업 주총에 앞서 내린 의결권 찬반 결정내용을 원칙적으로 주총 이전에 공개키로 했다.

당초 코드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던 주주제안을 통한 사외이사 후보 추천이나 의결권 위임장 대결, 경영참여형 펀드 위탁운용 등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활동은 주주권 행사범위에서 빠져 있다. 국민연금의 과도한 영향력을 고려해 위탁자산을 맡아서 굴리는 자산운용사에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넘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처럼 관리하라는 취지로 붙여진 이름이다.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투명하게 보고토록 하라는 행동 지침이다.

‘집사’로서 주주 역할 충실하고...주인인 국민에게 투명하게 보고하라는 행동 지침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단순히 주식 보유와 그에 따른 의결권 행사에 한정치 않고 기업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기업의 지속가능 성장에 기여하고,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하라는 목적이다.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된 후 네덜란드, 캐나다, 스위스, 이탈리아 등 20개 국가에서 운용 중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 등이 도입했다.

코드가 영국에서 처음 도입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주주, 특히 기관투자가의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에서다. 기관투자가가 금융회사 경영진의 잘못된 위험 관리를 견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에서 비롯되었다. 기금 규모 635조원, 운용수익 306조원의 대한민국 국민연금도 충실한 집사로서 기업을 잘 감시하고 관리해 국민의 노후자금을 지킬 수 있다면 도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가입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겠다는 데 반대할 명분도 없다.

제도의 취지나 외국의 운영 사례만 놓고 봐서는 언뜻 도입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코드 도입이 이미 세계적인 추세이며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주주권 행사의 투명성 제고에 기여가 예상된다. 소수 지분으로 지배권을 남용해온 재계의 기형적 경영 행태를 견제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인 점에서도 기대를 모으기 충분하다. 다만 이런 점들만 고려해 코드 도입을 섣불리 정할 수 없는 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도입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전제조건이 적지 않다. 당장 제도 운영의 독립성부터 보장되어야 한다. 국민연금이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기금 운용의 자율성과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담보되지 않은 채 코드가 도입될 경우 자칫 ‘기업 길들이기’의 정치적 목적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국민연금이 돈을 맡긴 국민의 집사가 아니라 정부를 섬기는 집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이 될 ‘양날의 칼’...독립성 보장-경영권 간섭 배제가 관건

박근혜 정부 시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구속된 사례는 연금가입자들의 뇌리에 아직도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현 정부 들어서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선임과 관련해 청와대 정책실장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후진적 관치가 여전하다는 증거다. 이런 형편에서 코드가 도입될 경우 기대 효과는 커녕 부작용만 초래하기 십상이다. 피 같은 노후자금만 까먹을 수 있다.

국민연금의 과도한 경영 관섭의 우려도 불식되어야 한다. 기업들은 벌써부터 경영권 내지는 지배구조 변화를 걱정한다. 정부 초안에서 ‘경영 참여’로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뺐다는 보건복지부의 말을 못 믿는 분위기다. 아주 뺀 게 아니라 점진적·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말이 되레 불안감을 키운다. '연금사회주의'로 치달으며 기업의 자율성 훼손이 가속화될 거라는 의구심만 증폭된다.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사 중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율을 가진 기업이 299개에 달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국내 주요 기업들 대부분이 해당된다. 10% 이상 지분을 소유한 상장사도 90개에 이른다. 지금까지도 국민연금이 주요 기업의 주총 안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 왔다. 여기에 스튜어드십 코드까지 가세하면 기업의 의사결정권이 국민연금으로 넘어갈 거라는 기업들의 심려다.

‘기대 반 우려 반’의 스튜어드십 코드, 이쯤 되면 도입 여부를 두고 찬반 논란으로 삐걱댈 게 아니라,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 긴요할 수 있다.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이 될 ‘양날의 칼’에 대한 사용법을 제대로 익혀야 할 때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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