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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오너리스크'와 경주 최부잣집 ‘육훈(六訓)’
재벌 '오너리스크'와 경주 최부잣집 ‘육훈(六訓)’
  • 정종석
  • 승인 2018.04.3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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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갑질' 파동..가족들, 어설픈 재발방지 다짐보다 전경련서 '육훈' 외우는게 나을 듯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발행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권력에 탐욕을 갖지 말고 휘둘리지 말란 의미)-재산은 만 석 이상 모으지 마라(재산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의미)-흉년에는 재산을 늘리지 마라(가난한 사람들은 흉년 탓에 고생인데, 남의 불행 도중 행복을 누리지 말라는 뜻)-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이 가훈으로 최부잣집은 이어질 수 있었다)-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남을 도우라는 의미)-최씨 가문의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절약과 검소를 몸에 배게 하란 의미)”-,

오랫동안 구전처럼 내려오는 ‘최부잣집 육훈(六訓)’을 간추린 내용이다. 경주 최부잣집은 조선조 최진립이 시조인 경주 최씨 가문이 17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약 300년 간 부(富)를 이어왔다고 한다. 12대로 대대손손 가훈을 지켜가며 부를 쌓았다. 나그네나 거지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고 밥을 먹여주는 선행을 했다. 이른바 조선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를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의혹과 이후 쏟아진 제보들은 과연 전무라는 자리가 그녀에게 어울리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여기에 조 전 전무의 어머니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역시 갑질 의혹으로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대한항공 총수 일가에 대한 전방위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조현민 전무의 ‘물벼락 갑질’ 의혹..어머니 갑질 폭로로 대한항공 총수일가 퇴진압박 더욱 거세져

이들은 막말은 기본이고, 폭언에 고성방가까지 마치 막무가내 제왕을 방불케 하듯이 사내외에서 무소불위 권력으로 군림했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나 할까. 공사장에서 거칠게 직원을 밀치고,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종이뭉치를 내던지는 사례도 나왔다. 이 여성은 조 전 전무의 어머니인 이명희 일우 재단 이사장이다. 두 모녀에 대한 갑질 의혹 수사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대한항공 총수 일가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특히 국민적 공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상황에서 추가 의혹까지 드러날 경우, 대한항공 총수일가에 대한 퇴진압박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한국에서 대기업은 갑질 빼면 대기업도 아니다라는 웃지 못할 말도 있다고 한다. 한진을 포함해, 대림, 현대, 한화 등등 우리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한 두 건이 아니다. 이런 오너리스크는 결국 기업이 대가를 치른다. 이들의 일탈은 기업 가치 감소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미스터피자, MP 그룹의 경우 회장의 경비원 폭행사건과 가맹점주들에 대한 갑질한 것으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매장수가 100개 이상 줄었다. 조 전무의 갑질이 알려진 날 대한항공의 주가는 7% 가까이 곤두박질쳤고, '대한'이란 이름을 사용금지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우리는 얼마 전에 영화 ‘베테랑’에서 안하무인 재벌 3세의 만행을 파헤치고 복수의 한 방을 날리는 장면을 보았다. 재벌 3세의 갑질은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린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세상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는 걸까. 재벌가 자제는 막대한 부와 권력을 동시에 쥐게 된다.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이들이 최고 경영진의 자리에 오르는 걸 우리 현실에선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한 기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30대 그룹 오너 3~4세 임원 32명이 입사한 뒤 임원 승진까지 걸린 기간이 평균 3.5년에 불과했다. 조 전무의 경우에도 서른 살에 대한항공 상무가 되어 대기업 최연소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이렇게 잊혀질만 하면 불거져나오는 재벌 3세의 안하무인 행태를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런 사람들이 한 둘도 아니다. 다른 재벌가들도 사정은 대체로 마찬가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업, 국민경제에까지 무척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주와 종업원, 우리 경제 전체가 떠안는다. 그러나 당사자는 잠시 고개를 숙일 뿐 다시 슬그머니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땅콩회황 파동의 주역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여론이 잠잠해지자 집행유예 기간인데도 슬그머니 다시 복귀하지 않았던가.

조현민 ‘물벼락’ 피해 입은 광고대행사 직원들, 속내도 못밝힌 채 되레 숨어지내는 '아이러니'

최부잣집의 시조는 최진립이다. 최진립은 임진왜란 때 참전하고, 정유재란 때에도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위도총부도사, 공조 참판, 삼도 수군통제사 등의 관직을 지냈다. 공으로써 부를 쌓은 최진립은, 아들 최동량을 교육시켜 최동량이 최부잣집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최동량은 많은 재산을 물려받고 큰 땅을 구입했다. 산부터 강까지 이르는 큰 땅을 산 후, 여기 전체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아들 최국선은 둑을 세우고 옆에서 도우며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최부잣집의 3대째 자리를 차지한 최국선부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나눔이 시작됐다.

어느 불교 승려가 "재물은 거름과 같습니다. 재물을 나누면 세상을 이롭게 하지만, 움켜쥐면 썩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눔을 실천했다고 한다. 최국선이 대를 이었을 땐 이미 최부잣집은 조선 최고의 부자였다. 최국선은 1671년 조선 현종 때에 흉년이 들어 농민들이 쌀을 빌려간 것을 못 갚게 되자 안타까워 하며, 아들 최의기 앞에서 담보문서를 모두 불살랐다.

최국선은 게다가 죽을 쑤어 거지들에게 푸짐하게 베풀었다. 보리가 여물지 않은 3월과 4월의 보릿고개엔 100석의 쌀을 이웃에게 나눠주었다. 게다가 최국선 대부터서 소작 수입의 1/3을 빈민구제로 쓰는 풍습이 생기면서 200년 후인 최준 대에까지 이어진다. 이렇듯 후손을 엄격하게 교훈하며 탐욕을 줄여갔던 최부잣집은 조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주의의 대표로 불리며, 세상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한항공 오너패밀리나 다른 재벌 일가족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 되기를 바라는 것 같지 않다. 너무도 오랫동안 분노하고 실망한 나머지 그들이 어떻게 하든 체념한 인상이다. 조현민으로부터 ‘물벼락’ 피해를 입은 광고대행사 직원들은 속내도 밝히지 못한 채 되레 숨어지내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런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이다. 이를 견제할만한 제대로 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재벌 일가족의 일탈행위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엄벌에 처해야 하다는 여론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일정 기간 동안 경영참여를 배제한다든가 하는 규제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국회에서는 갑질 방지법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재벌들 3,4세까지 기형적 세습..체계적인 교육과 갑질방지 시스템, 정부 차원 구조적 개혁 필요

재벌갑질 사례는 외국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중국 최대 기업 중 하나, 완다그룹도 재벌2세 갑질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왕젠린 회장의 아들 왕쓰충이 샤오미 회장의 영어발음을 지적하며 '영어 못하면 해외 나가지 말라' 막말에 사치스런 생활을 과시하며 중국인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힐튼호텔 상속자 콘래드 힐튼이 비행기에서 승무원 멱살을 잡고 '5분 안에 너희 다 해고할 수 있다, 돈으로 다 수습 할 수 있다'며 갑질해 논란을 빚었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서서 재벌 2세들을 지도하라며 적극 지적에 나섰다. 재벌 2세 수십 명씩 모아 정기적으로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강연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은 오너리스크가 애초에 덜하다. 오너라고 해서 낙하산으로 경영을 물려주는 경우도 드물고, 부를 축적한 만큼 사회에 헌신하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인식도 보편화돼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재벌 3세, 4세까지 기형적으로 세습하는 시기가 왔다. 더 이상 세습을 막지 못한다면 이제는 체계적인 교육과 갑질방지 시스템이 필요해 보인다. 재벌오너의 이상한 행동으로 일반 주주들과 소비자들과 하청업체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정부차원의 구조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 다만 중국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재벌들에게 2세 교육을 시키라고 한다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글퍼진다. 이야 말로 또 다른 해외토픽감이 되는 탓이다. 어설픈 재발방지 다짐보다는 차라리 재벌총수 가족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장소에 모여서 연찬회를 갖고 조용히 경주 최부잣집 육훈을 외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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