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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표기 선택한 맨부커의 문학적 자존심
'대만’ 표기 선택한 맨부커의 문학적 자존심
  • 허영섭
  • 승인 2018.04.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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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칼럼] 대만 소설가인 우밍이(吳明益)의 ‘도둑맞은 자전거(曼布克國際獎)’를 둘러싼 여운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학적 여운이라기보다 정치적 성격의 파장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포함되면서 작가의 국적 표기를 두고 일어난 논란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결국 며칠 전 발표된 최종 후보군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국제정치 무대에서 야기되는 첨예한 이해갈등에 문학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본보기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맨부커 재단이 지난달 예심을 거쳐 이 작품을 후보작의 하나로 홈페이지에 처음 발표했을 때만 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대만(Taiwan)‘으로 표기됐던 작가의 국적이 슬그머니 ‘대만, 중국(Taiwan, China)’으로 바뀌면서 논란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대만을 중국의 일부분으로 간주함으로써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표기에 대만 사람인 우밍이가 선뜻 동의할 리 없었다. 즉각 “국적이 왜 바뀌었느냐”며 항의하고 나섰고, 그 과정에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됐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만과 중국의 대립 관계로 인해 벌어진 문제다. 대만의 국호 표기를 두고 국제무대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양안 갈등이 맨부커상을 통해 또다시 표출된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가 문학의 영역에서도 마음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의적인 판단에서 빚어진 논란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내세워 대만의 국제무대 진출에 간섭하고 있는 중국 정부로서는 이러한 압력을 시도하면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대만이 올림픽을 포함한 국제 활동에 참여하면서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라는 정식 국호를 포기한 지 오래라는 사실에서도 그런 점이 엿보인다. 올림픽 경기에 출전해서는 ‘차이니즈 타이베이(Chinese Taipei)’라는 이름을, 세계무역기구(WTO)에서는 ‘타이완·펑후·진먼·마쭈·(臺灣·澎湖·金門·馬祖) 개별관세지역’이라는 복잡한 이름을 사용해야 하는 처지다. 그나마 내달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보건총회(WHA)에는 중국의 반대에 부딪쳐 옵서버 자격으로도 참가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민간 차원의 활동에서도 이러한 제약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역시 문학 분야는 달랐다. 중국의 영향력이 통하지 않았다. 맨부커 재단이 결국 자기 실수를 인정하고 우밍이의 국적을 다시 ‘대만’이라는 표기로 바꾼 것이다. 적어도 문학의 영역은 경제나 스포츠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 것이다. 경우에 따라 오히려 정치 현실을 비판하면서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문학의 입장에서 당연한 결정이다. 더욱이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권위를 인정받는 맨부커상에 있어서랴. “우리 문학상이 작가의 국적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는 논리를 앞세워 중국의 입김을 간단히 물리친 것이다.

그렇다고 맨부커 재단이 대만을 별도의 국가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수상 범위에 오른 작가를 소개하면서 국적과 함께 출신지역을 표기할 수 있다는 원칙을 하나 더 추가한 것뿐이다. 그러나 국제무대에서 활동 범위가 한껏 움츠러든 대만의 처지에선 맨부커 재단의 이러한 조치를 하나의 전환점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맨부커 재단도 ‘출신지역’이라는 핑계를 내세워 대만의 입지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논란의 대상이 됐던 ‘도둑맞은 자전거’는 대만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맨부커상 후보로 선정된 것이어서 대만 국민들에게 더욱 의미를 지닌다. 우밍이의 소설은 영어권 외에도 프랑스, 일본, 터키, 체코, 헝가리, 인도네시아 등에서 번역돼 있다. 국내에서도 ‘나비 탐미기’라는 제목으로 그의 작품이 소개돼 있으나 맨부커상 도전은 천상 다음 기회로 미뤄지게 됐다.

그보다는 우리 소설가인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지난번 수상작으로 선정된 데 이어 이번에도 작품 ‘흰’이 최종심까지 올라 연이어 두 번째 수상을 노리게 됐다는 점에서 국내 독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문학 작품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미래에 대한 동경을 심어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복잡한 갈등 구조의 현실 속에서 자기만의 시각을 내세우면서도 그 귀결은 대체로 보편타당한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인, 소설가를 비롯한 모든 예술가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바로 그것일 터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올해 맨부커상 시상대에는 맨부커 재단도 함께 오를 자격이 주어진 셈이다. 우밍이가 ‘대만’ 표기와 관련해 페이스북에 “그것은 문학의 의지에 대한 답변”이라고 썼듯이 맨부커 재단이 직접 문학의 의지가 진실과 자유에 바탕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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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영섭(gracias1234@edaily.co.kr)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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