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합격 통보
뒤늦은 합격 통보
  • 김태희
  • 승인 2018.03.27 08:21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희 칼럼] 2015~2016년 한국가스안전공사 공채에 응시했던 지원자가 최근 합격 통보를 받았다. 3년 만에 뜻밖의 전화를 받은 지원자는 ‘혹시 보이스피싱이 아닌가’ 의심했다고 한다(중앙일보). 뒤늦은 합격 통보는 2~3년 전 채용비리의 피해자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연이은 취업 실패에 자존감이 상해 있었는데, 그래도 정의는 살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반응도 있었다(국민일보).

차별과 배제, 나라를 망하게

지난 촛불정국에서 젊은이들이 특히 분노했던 것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 얽힌 입시·학점 비리였다. 정유라는 페북에 “돈도 실력”이라며,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글을 올려, 많은 젊은이들의 공분을 샀다. 공공기관 채용비리가 젊은이들에게 깊은 좌절과 분노를 일으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청년 취업난 속에 각종 스펙을 쌓느라 바쁜 젊은이에게서 ‘부모 잘 만나는 게 최고의 스펙’이라는 자조가 튀어 나온단다.

강원랜드의 경우, 2013년 선발 당시 최종합격자 518명의 95.2%가 청탁 리스트에 따른 합격임이 확인되었다. 현재 근무중인 부정 합격자 226명은 이달 말까지 퇴출하기로 했다. 청탁자는 강원랜드 사장과 임직원, 국회의원을 포함하여 총 30여 명이라고 한다(연합뉴스). 얼마 전 필자가 찾은 어느 공단에서도 낙하산 채용이 적지 않다는 관계자의 실토를 직접 듣고선 상황이 심각함을 실감했다.

대기업의 직원 채용도 사회적 관심사다. 그런데 노조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단체협약을 맺어 논란을 빚기도 한다. 대기업 노조 입장에서는, 자율적인 협약이 무슨 문제냐, 노조원이 회사에 기여한 대가가 아니냐 항변할 수 있다. 사기업의 직원 채용이 공공기관과 같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대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하면 간단히 묵과할 문제는 아니다. 더욱이 대기업 노조가 그동안 노동과 인권을 보호하는 구실을 했는데, 이제 사회 전체의 불공정을 조장하는 구실을 한다면, 사회적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다.

최순실·정유라 모녀와 같은 불공정 사례가 특별한 권력에 국한된 일부 현상이 아니라, 저마다 그런저런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은 아닌가 걱정이다. 채용 비리를 비판하면서도 너도나도 그런 기회를 찾는 데 급급한다면, 누가 누구에게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말할 수 있겠는가.

조선후기 정약용은 ‘통색의’라는 글에서 인재를 버리는 현실을 고발했다. 인재를 찾기는커녕 신분을 가려 버리고, 지역을 가려 버리고, 당색을 가려 버린다. 결국은 수십 가문 출신 외에는 인재가 모두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정약용보다 선배인 이가환은 정조 10년에 평안도 정주 수령으로 부임하여, 서북 지역출신 인재에 대한 심한 차별을 확인하고는 개탄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가환과 정약용이 정조의 시대에는 관리가 되어 뜻을 펼 수 있었지만, 정조 사후에는 이념의 굴레가 씌어져 각각 죽음과 유배를 당했다. 조선사회는 점점 더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달았다. 조선 망국의 근원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공적 기구는 소수가 독점하고, 사회는 차별과 배제가 누적된 결과였다.

부패와 무능, 조직을 병들게

감사원은 지난해 53개 공공기관을 감사하여 8월에 감사보고서를 냈다. 이어 부처별 전수 조사로 확대했는데, 부정한 인사 청탁이나 압력 행사, 부적절한 위원구성, 평가기준의 부당한 운용 등의 문제점을 광범위하게 적발했다. 정부는 범정부적인 후속조치에 들어갔다. 최근 13일에 알려진 가스안전공사의 피해자 구제는 감사원 감사결과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을 거쳐 이뤄진 첫 번째 구제사례이다.

공공기관은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공공기관답게 공정하고 투명하게 인사제도가 운영되어야 한다. 공정한 채용은 그 첫걸음이다. 위법한 방법으로 사사로이 뽑힌 직원이 과연 공적 임무에 필요한 자세와 능력을 갖추었겠는가. 부패와 무능은 서로 쉽게 결합한다. 그리고 부패와 무능은 반드시 조직과 공동체를 병들게 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김 태 희 (다산연구소 소장)


인기기사
뉴스속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금융소비자뉴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여의도동, 삼도빌딩) , 1001호
  • 대표전화 : 02-761-5077
  • 팩스 : 02-761-5088
  • 명칭 : (주)금소뉴스
  • 등록번호 : 서울 아 01995
  • 등록일 : 2012-03-05
  • 발행일 : 2012-05-21
  • 발행인·편집인 : 정종석
  • 편집국장 : 백종국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윤정
  • 금융소비자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금융소비자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fc2023@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