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애플 ‘배터리 게이트’서 배우는 금융소비자보호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애플 ‘배터리 게이트’서 배우는 금융소비자보호
  • 권의종
  • 승인 2018.01.0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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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에만 그친 고객보호, ‘홀대’ 넘어 ‘천대’ 수준..보호 강화-법률 제정-전담기구 설립 서둘러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소비자를 모르는 기업이 많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기업이 제공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구입하는 사람 정도로 이해한다. 상품에 대한 판단능력이 부족하고 기술적 조작에서 열위에 있다고 여긴다. 광고나 홍보 활동으로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로 가벼이 본다.

소비자만큼 중요한 집단도 없다. 성별, 연령, 주거지역, 교육수준, 문화 차이가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한다. 소비성향은 각자의 소득액, 환경요인, 개인 기호 등의 요인에 따라 좌우된다.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은 시장경제체제 속에서 생산을 결정하고 기업으로 하여금 원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경쟁력 있는 조건으로 제공하도록 유도하는 기능을 발휘한다. 산업생태계의 주도세력은 정부도 기업도 아니다. 실세는 소비자다.

소비자 방심이 불러오는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이런 실수는 규모가 작은 기업보다는 대기업이나 심지어 다국적 기업에서 더 자주 발행한다. 최근 큰 물의를 빚고 있는 애플의 ‘배터리 게이트’가 그 단적인 사례다. 사소한 소비자 홀대가 빚은 결과치고는 실로 뼈아프다. 아이폰 배터리의 노후화를 막으려고 기기 처리 속도를 늦춘 게 패착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주가 폭락에 이어 글로벌 집단소송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상황이다.

소비자만큼 중요한 집단도 없어.. 산업생태계의 실세는 소비자.. 홀대했다간 큰 코 다쳐

소비자 문제는 애플만의 문제일 수 없다. 한국 기업에서도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사안이다. 너그러운 국내 소비자들 덕분에 표면화되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사려 깊은 기업이라면 애플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하다. 소비자를 얼마나 이해하고 그들의 니즈를 제대로 충족시켰는지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강 건너 불 보듯, 남의 일로만 여겼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특히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큰 각성이 절실하다. 애플의 소비자가 받은 푸대접 정도는 국내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과분한 사치일지 모른다. 한국 금융의 현실은 소비자의 개념조차 낯설고, 소비자주권은 요원한 꿈에 불과한 처지에 있다. ‘소비자 홀대’를 넘어 ‘소비자 천대’의 수준이라는 게 정확한 스케치일 수 있다.

구태여 이론적 근거를 들추지 않더라도, 금융소비자 보호의 당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금융소비자는 금융회사의 거래 상대방으로서 금융상품의 수요자이지만, 금융회사에 비해 정보력과 교섭력이 열위에 있어 사회적 보호가 필요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금융소비자보호에 대한 인식이 커지는 가운데, G20 금융소비자보호 상위 원칙에서도 나라별 특수성을 감안한 효율적이고 적합한 제도적 틀 마련을 권고한다.

금융회사의 영업행위에 대한 감독이나 금융소비자의 역량강화를 통해 소비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사전적으로 방지해야 한다. 금융상품 약관, 영업행위준칙, 소비자에 대한 정보제공과 함께 적절한 금융교육도 실시되어야 한다. 사후적으로는 금융소비자의 피해를 구제하거나 분쟁을 조정하는 금융상담과 민원처리, 분쟁조정 등 또한 원활히 이루어져야 한다.

금융소비자는 사회적 보호대상..文 대통령 대선공약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도 마냥 표류

한국 금융은 고질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실은 이론과는 천양지차다. 규모 대형화와 정보 독점화를 앞세운 금융회사가 경제적 약자인 금융소비자에게 가하는 불공정행위가 도를 넘고 있다. 횡포에 가깝다. 금융회사가 자신에 유리한 약관을 만들고, 일방적으로 책정한 금리로, 충분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이 실행된다. 소비자에게는 상품선택권도 가격협상권도 이의제기권도 주어지지 않는 사실상 불평등 거래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만기에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걸 뻔히 알면서 1년 만기 단기대출만을 고수한다. 만기에 가서 상환이 곤란해진 소비자를 상대로 기다렸다는 듯 금리를 마구 올리기 일쑤다. 이때 적금 연금 보험 등 돈되는 상품까지 반강제적으로 잔뜩 끼워 판다. 소비자는 대출을 연장하려니 군말조차 금물이다.

어쩌다 이자라도 연체되는 날이면 ‘기한의 이익 상실’ 조항을 걸어, 대출금 전체에 대해 고율의 지연배상금을 물리곤 한다. 금융기관 공동으로 연체정보를 공유하여 다른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길까지 원천 봉쇄하고 나선다. 지독하고 끈질긴 ‘갑질’이다.

일반 상거래에서는 상상조차 힘든 일들이 이처럼 금융계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버젓이 일상으로 반복된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 같은 부당한 대우가 잘못인지도 모르는 소비자가 다수라는 사실이다. 워낙 오랜 기간 눌려 지내오다 보니 그 정도면 합당한 대우인 줄로 착각한다. 금융소비자보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정부 책임 또한 작지 않다. 금융소비자 권익보호를 위한 국가의 후견적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여태껏 금융소비자보호 관련 법률 하나 만들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 정부 입법안으로 ‘금융소비자보호기본법안'이 겨우 발의되었지만 아직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금융소비자보호를 담당하는 전담기관 설립도 미적대긴 마찬가지다. 대선공약이었는데도 뚜렷한 이유 없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생각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금융소비자를 뭐로 아는지”, “금융소비자보호는 언제까지 구호에만 그칠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가만히 있다고 ‘가마니때기’가 아니고, 바라만 본다고 ‘바보’가 아니다. 점잖은 사람이 성나면 더 무섭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문제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 경영학박사/ 중소기업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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