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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부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文 정부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정종석
  • 승인 2017.11.2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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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 몰락, 국정 폐쇄적 운영-인사실패서 비롯..‘밀실주의’ 인선 비극 되새겨야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발행인] 고인이 된 김영삼(YS) 대통령의 재임 때 인사원칙 중 제일 덕목이 ‘철통 보안’이었다. 스스로 “내가 직접 임명을 통보하면서 미리 새나가면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고 인사원칙을 소개했다. 그래서 그의 인사는 ‘깜짝쇼’라고 불리기도 했다.

자신감 넘치는 YS의 보안자랑은 자주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김상철 서울시장의 경우는 김 시장 자택 정원 부지가 그린벨트를 상당 부분 침범했다는 보도가 이내 터져 나왔고, 그는 취임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퇴진해야 했다. 여론의 뭇매에 마음이 상한 YS는 모든 고위 공직자의 경력과 재산 상황 등에 대한 정밀 점검 특명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점검 책임자인 인사비서관의 고려대 졸업 학력이 가짜로 드러나 또 우스개거리가 되고 말았다.

김대중(DJ) 대통령이 총리 후보로 지명한 장상·장대환의 경우 관련 자료가 부족해서 사단이 벌어졌던 게 아니다. 이명박(MB) 대통령이 지명한 김태호 총리 후보도 다를 바 없다. 조금만 유의해도 알 수 있는 임대소득 탈루 등 이유로 21일 만에 자진 사퇴해야 했다. 박근혜(GH) 대통령이 ‘환관’에 비유되는 문고리 3인방의 보좌 속에서 최순실의 원격조종에 따른 밀실정치를 하는 바람에 결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을 받고 말았다.

보안은 매우 중요하다. 인사 때마다 숱한 사람들이 기를 쓰고 달려드니 자칫 잡음이나 양산하기 십상이다. 음해·중상모략이 판칠 수도 있다. 이러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보안은 절실하다. 그러나 역대 정부에서 밀실인사는 하나같이 실패했다. 그래서 위험천만이다. 특히 GH 때는 그나마 이루어진 밀실인사도 발표 전까지 봉인되어 있어 ‘밀봉(密封) 인사’라는 별명까지 더했다.

GH의 머릿 속에는 항상 ‘인사는 보안이 생명’이라는 경구가 새겨 있었는 지도 모른다. 결국 ‘원맨(?) 인사’가 사고를 치는 것이다. 보안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때로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범할 소지가 많다. 돌이켜 보면 GH의 비극은 취임 초부터 줄곧 이어져온 국정의 폐쇄적 운영에 따른 인사실패에서부터 잉태됐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산출신 인사들 잇달아 금융권 수장..PK가 금융권 새로운 키워드 부상

엊그제 김태영(64)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이 은행연합회장으로 내정됐다. 이를 두고 금융계에서는 ‘의외’를 넘어서 '깜작쇼'라는 자평이 나왔다. 당초에는 이사회가 추천한 후보 7명 중 전직 재무관료 출신인 김창록 전 산업은행 총재와 민간 출신인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이 유력 후보로 거론됐기 때문이다.

김 내정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막강한 금융계 인맥으로 부상한 부산 출신에다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영남상고를 졸업하고 1971년 농협에 입사해 금융기획실장,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 등을 거친 정통 농협맨 출신이다. 어찌보면 이런 인물이 금융연합회장이 되는 것은 입지전적인 성공신화이고 업계출신들로부터도 환영을 받을 일이다. 더욱이 모피아 출신들이 각종 금융협회장을 독차지한 종래의 풍토를 감안하면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다.

김 내정자는 그동안 은행연합회장 하마평에 오르내리지 않았던 인물이다. 또 지난 대선 때 그가 문재인 캠프 금융경제위원회에 공동 부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선임 배경에 정치적인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산 출신 인사들이 잇달아 금융권 수장에 오르면서 PK(부산·경남)가 금융권의 새로운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는 기운도 느껴진다.

정작 문제는 일부 금융사들이 대표이사 선출의 전 과정을 비공개로 해 투명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은행연합회장도 은행장들이 참여하는 이사회를 통해 단독 후보를 발표할 때까지 회장 선출 과정을 모두 비공개로 했다. 농협은행도 차기 행장 단독 후보가 확정돼야 결과를 외부에 공개할 방침이다. 지난 10월 이동빈 Sh수협은행장 선출과정도 모든 과정이 비공개였다.

세상은 바야흐로 개방체제(open system)으로 가고 있다. 모든 것이 투명하고 검증가능하며 대명천지에 부끄러운 것이 없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여기에 이르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는 국가안보와 같은 중차대하고 민감한 문제를 빼고는 국민 앞에 공개하고 여론의 지지를 받는 것이 마땅한 이치다.

더구나 금융회사나 금융단체들은 국민의 신뢰를 먹고사는 조직이다. 뭐가 두려워서 칸막이를 치고 밀실에 앉아서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철통보안 인사를 일삼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히려 은행연합회장이나 은행장의 선출과정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후보들의 정보가 많아지고 이런 정보들로 검증해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다.

수장 뽑을 때 항상 절차-과정 투명해야..우리 시대 '일그러진 영웅’ 주인공 '엄석대'는 누구? 

특히 은행의 경우, 항상 관치금융 논란이 나오는 만큼 항상 수장을 뽑을 때 절차와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군사독재정부 시절이 지나고 민주화된 지도 상당히 오래됐다. 그런데도 행장추천위원회를 둔 일부 은행을 빼고는 우리나라의 경우 기관장을 선출할 때 대부분 비공개로 하고 있는 것이 적폐라면 적폐가 아닐 수 없다. 그 선출과정이 보다 투명할 수록 후보자 검증을 더 철저히 할 수 있고, 나아가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987년 발표된 이문열의 중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50년대 말의 한 시골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부정한 방법으로 친구들 위에 군림하는 엄석대라는 인물을 통해 권력의 형성과 몰락과정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이문열은 소설에서 권력의 속성과 무기력한 대중들의 모습을 알레고리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사회와 역사, 권력의 속성,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교호 관계를 미시적으로 기발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반년을 넘긴 우리나라는 지금 매일같이 적폐청산이 한창인 가운데 해방 후 어느 때보다도 격동의 세월을 살고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아침에 눈만 뜨면 귀가 번뜩이는 새 뉴스가 양산되고, 나는 새를 떨어드릴 정도로 위세를 떨치던 과거의 권력실세들이 하루아침에 검찰의 오랏줄 신세가 되는 변화무상한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주목받고 있는 ‘부금회’(부산 출신 금융인 모임)의 영향력이 금융권에서 새삼 회자되는 것은 유감이다. 현 정부 들어 선임된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과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 이동빈 Sh수협은행 등이 모두 부산과 연고를 맺고 있다. 또 금융계에선 협회 스스로 관료 출신을 금융 당국에 대한 바람막이로 이용하려는 것이야말로 보험사들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구태(舊態)라는 지적이 나온다.

협회의 역할을 금융 당국의 규제에 대한 바람막이로 좁게 인식하다 보니 관 출신을 전적으로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협회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해 나갈 수 있는 민간 후보 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은행연합회장의 경우, 단독 후보 확정 때까지 비공개로 하고, 후보 선출 마지막쯤 정부가 넌지시 의사표시를 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만큼 아직도 우리 금융권이 관치의 영향권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방증이다.

달은 차면 기울고, 산은 오르면 내려와야 한다. 모든 것은 변하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래서 인생을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본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소설의 주인공인 '엄석대'는 누구이며, 현재 그리고 앞으로 엄석대가 될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를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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