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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식 채무탕감 상상
'샤일록'식 채무탕감 상상
  • 강민우 기자
  • 승인 2017.07.3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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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해이 조장" 우려 속 '빚의 노예'서 해방해야

[금융소비자뉴스 강민우 기자] 악덕 고리채 업자인 샤일록은 영국의 문호인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명작 ‘베니스의 상인’의 등장인물이다. 샤일록은 돈이 필요한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고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허벅지 살 한근을 떼어가기로 약속을 했다.

안토니오가 돈을 갚지 못하자 샤일록은 판사에게 안토니오의 살 한근을 떼어가겠다고 재판을 신청했다. 재판관은 심사숙고 끝에 샤일록에게 안토니오의 살 한근을 떼어가도 좋다고 판결을 했다. 샤일록은 신바람이 나서 시퍼런 칼을 가죽가방에서 꺼내어 안토니오의 허벅지에 대었다.

그런데 판사는 살 한근만 떼고 피는 한방울도 가져가면 안된다고 했다. 샤일록은 자기가 큰 실수를 했고, 자기가 나쁜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 종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대규모 부채탕감은 역대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다. 이명박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신용대사면을 실시했고 박근혜 정부도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약 56만명의 빚을 감면해 줬다.

문재인 정부가 꺼낸 빚 탕감의 수위는 훨씬 더 높다. 감면이 아니라 아예 빚은 물론 연체 기록까지 없애준다는 면에서 파격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10년 이상, 1,000만원 이하 장기연체채권(약 40만명) 소각과는 별도의 채무탕감이라 앞으로 대규모 빚 탕감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같은 정부의 방침에 대해 “빚을 성실히 갚는 사람만 피해를 본다”는 비난 여론도 적지 않다. 정부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15년 동안 빚을 안 갚으면 도덕적 해이는 사라진다는 것이냐”며 “성실히 빚을 상환하는 사람들과의 역차별도 고려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빚의 노예로 장기간 고통받는 채무자들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나라의 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도 서민들의 채무 부담을 줄여주는 공약을 내걸었고,이 가운데 상당 수가 실행됐다. 다만 원금 일부를 감면해 주고 이자를 낮춰주는 '채무 재조정' 방식이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도권 금융에서 탈락한 금융소비자들이 다시 정상적인 금융시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서민금융의 궁극적 목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빚 권하는 폐습'을 버리고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을 서민금융의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고도 말했다.

문제는 이번처럼 원금을 전액 없애주는 조치는 전례가 없었다는 점이다. 정부가 나서서 빚을 전액 갚아줄 경우 결국 국민 혈세가 투입돼야 하고 채무자들에게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는 탓이다. 또 채권소각에 따른 금융기관의 손해는 결국 정부가 메워 줄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또 15년 동안 빚을 못 갚은 사람들도 있지만 차명으로 금융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장기연체자 모두가 금융거래를 못 하는 사람이고 이를 구제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은 ‘보여주기 정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수 많은 빚 생활자들이 비록 '버티면 정부가 나서 해결해 준다'는 잘못된 기대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빚이 많아서 생활이 도탄에 빠진 사람들을 이대로 놓아둘 수는 없다. 정부는 앞으로 국고에 부담을 주지 않고, 채무자들이 최소한의 자발적 상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쪽으로 부채탕감의 규모와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효를 연장해가며 채권 추심을 할 만큼 하다가 더 이상 갚을 능력이 없다고 보고 소멸시효를 완성시킨 채권들”이라며 “돈이 많은데도 악의적으로 빚 상환을 하지 않는 사례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빚 탕감을 통해 채무자들의 새 출발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문재인정부 금융정책의 첫 번째 실험이다. 그럴 정도로 우리 주변에서는 '빚의 굴레'가 심하다. 샤일록을 재판한 판사가 말한 대로 살 한근 만 떼고 피는 한방울도 가져가지 않도록 하는 지혜, 다시 말해 국민혈세를 낭비하지 않고 채무자들을 빚의 수렁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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