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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실회의와 서별관회의
녹실회의와 서별관회의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7.04.2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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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사태-국민연금 지원과 구조조정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발행인] 지금은 없어졌지만 옛 경제기획원 장관(부총리)실에는 녹실(綠室)이라는 공간이 있었다. 여기에서 진행된 회의가 이른바 녹실회의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장기영 전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경제부총리가 관계 부처 장관을 비공개로 불러 경제 현안을 조정한 회의였다.

당시 회의장소였던 서울 세종로 경제기획원 3층 부총리 집무실 옆 소회의실의 카펫과 응접실 가구가 모두 녹색이어서 이렇게 불리었다. 녹실회의는 공식 경제장관회의와는 달리 비공개였다, 하지만 정부부처내 비중이나 무게감이 상당히 컸다. 경제 현안과 관련되는 각료들이 참석, 주요 현안들을 여기서 조율한 뒤 공식 회의에 넘겼기 때문이다.

지난 1986년 기획원이 과천청사로 옮겨지면서 부총리 집무실 의자는 자주색으로, 양탄자는 회색으로 바뀌었지만 이름은 계속 녹실회의로 불렸다. 이후 1990년대 중ㆍ후반 이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멤버로 추가된 ‘청와대 서별관 회의’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녹실회의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경제현안 조율한 녹실회의..‘청와대 서별관 회의’ 생기며 역사속 사라져

서별관회의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을 주축으로 열리는 비공개 경제금융점검회의다. 청와대 본관 서쪽의 회의용 건물인 서(西)별관에서 열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융안정을 협의하는 공식적인 조직이며, 거시금융 점검회의의 별칭이다.

1997년 김영삼 정부에서 경제 관련 법 개정과 같은 사안의 쟁점을 조율하기 위해 관련 부처 장관들과 청와대에서 회의를 열었던 것에서 시작해 노무현 정부 때 사실상 정례화됐다. 금융 지휘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기구가 없고, 회의 설치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고, 주요 정책에 대한 논의가 밀실에서 비공식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뒷말이 많았다.

문제는 서별관회의가 경제 컨트롤타워라는 이름 아래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안들을 결정하지만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해 6월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언론인터뷰를 갖고 베일에 가려져 있던 청와대 서별관회의를 폭로했다. 회의 개최일, 참석자는 물론이고 개최 여부조차 확인이 안되는 고위급 회의의 비밀스러운 단면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홍 전 회장은 2015년 10월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을 지원한 사실과 관련해 “청와대·기획재정부·금융당국이 결정한 행위로, 애초부터 시장원리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으며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폭로했다. 대우조선해양의 5조원 규모 분식회계 사실을 인지하고도 대규모 지원이 이뤄졌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엉터리장부를 만드는 분식회계는 우리나라 기업의 고질적인 병폐다. 특히 배를 만드는 조선업계의 회계는 ‘회계의 무덤’으로 불릴 만큼 복잡하다. 대우조선해양과 대우건설 모두 분식회계 경력이 있다. 분식회계는 법에서 금지하고 있으나 이들은 죄의식 없이 진행했다. 게다가 대우조선해양과 대우건설은 공적자금 지원도 받은 경력이 있다.

대우조선, 정관계-언론계 로비 물두하는 사이에..산은 등 채권단은 '눈 뜬 장님'

대우조선에서 지난 수년간 대규모 분식회계가 벌어지고 있는 데도 최고경영진들이 자신의 연임을 위해 실적을 부풀려 왔다. 그들은 또 자구노력보다는 정관계와 언론계 로비에 몰두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도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그저 눈 뜬 장님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은 그 동안 5조3,000억원의 자금을 수혈 받았다. 올해 4조원 가량을 추가로 지원을 받는다.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의 여러가지 공통점 중 가장 고약한 면은 분식회계다. 이들의 분식회계는 최근의 일 만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또 있다. 때만 되면 분식회계를 저지르며 잘못을 숨기려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김우중 전 대우회장이 군림하던 1999년 대우그룹은 무려 20조를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2015년에는 대우건설의 3,800억원 가량의 분식회계가 발각되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20억원의 철퇴를 맞았다.올해는 대우조선해양이 분식회계로 5조를 숨긴 것으로 알려진다. 분식회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실적을 속이는 거짓말이다. 따라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거짓된 정보로 위기를 넘기려는 막가파식 술수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대우조선 비리의 핵심은 경영진의 ‘상습도벽’과 산업은행의 부실감시라고 할 수 있다. 대우조선의 전 경영진들은 재임중 부정과 비리를 속여왔다. 일명 '빅배스'라고 하는 부실 털기로 빠져나갔다. 빅배스는 경영진 교체 시기에 잠재 부실을 모두 털어내는 회계기법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애 따르면 국민연금이 대우조선을 지원키로 한 것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들 가운데 91%는 '밑빠진 독 물 붓기'라며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네티즌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국민연금이 대우조선해양을 지원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며 “조선업은 희망이 없고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는 댓글을 남겼다.

새 대통령, 정밀-과감한 기업 '외과수술’ 필요..사라진 '녹실회의' 부활 권해

‘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무책임(29%)’에 대한 언급량도 많았다. 낙하산 인사를 통한 방만경영과 더불어 분식회계 및 수천억원대 성과금 지급이 알려지면서 국민연금의 자금 투입이 ‘혈세 낭비’라는 반응이다. 다음으로 ‘해체하라(14%)’ ‘국민연금 비난(10%)’ ‘한진해운 지원(10%)’ ‘산업은행 비난(4%)’ 등의 의견들이 뒤따랐다.

따지고 보면 사실 대우조선을 살린다는 것과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서로 모순적인 '이율배반'의 관계다. 기본적으로는 대우조선을 살리려면 국제적으로 우리가 책임자를 처벌한다, 또 책임자가 이러한 것들을 자꾸 조사하고, 결과적으로  회계법인이 문을 닫는다. 이런 과정을 되풀이한 끝에 국제적 신용도가 더 나빠지게 된다. 그래서 너무 소문을 낼 수도 없고, 이런 상태에서 부실과 악순환이 계속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폐해를 알면서도 정부가 서별관회의를 통해서 이를 묵인, 사실상 범죄행위를 눈감아준 점이다. 2013년 STX조선과 팬오션이 문제가 될 때도 서별관회의에서 채권단 자율협약을 주장했다가 결국 팬오션은 법정관리로 가고 말았다. 채권자들의 막대한 피해를 낳았던 2013년 동양사태 때도 서별관회의가 밀실결정을 주도했다.

동양그룹이 부도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도 기업어음(CP)을 마구 발행했다. 이 때 서별관회의에서 동양그룹 위기를 알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봐주는 대책을 논의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최근 대우조선 사태와 마찬가지로 기업관리에 무능력과 많은 의문점을 드러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경제팀장에 전적인 권한과 함께 구조조정 책임을 줘야 한다. 그리고 지나간 문제라도 철저하게 꼭 책임을  물어야 한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과거 이헌재 부총리처럼 냉정한 구조전문가가 나서서 부실기업 수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정밀하고도 과감한 구조조정, 이른바 ‘외과수술(surgical operation)’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새 정부에서 사라진 녹실회의의 부활을 권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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