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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대선, 그리고 언론
탄핵, 대선, 그리고 언론
  • 이도선
  • 승인 2017.03.30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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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선칼럼>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사상 3번째 감옥살이 전직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뒤집어쓸지도 모르는 딱한 신세로 전락했다.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란 4년 전의 영광은 진작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란 오욕으로 바뀐 터다. 검찰 수사 도중 자살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포함하면 건국 이후 역대 대통령 11명 중 4명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나머지 대통령들도 지금 잣대를 들이대면 대부분 구속 내지 탄핵감이라니 이러고도 나라가 유지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대통령 탄핵으로 귀결시킨 데에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 특히 보수, 진보, 중도를 안 가리고 모든 언론이 한통속이 된 것은 우리 언론사에서 매우 드문 현상이다. 그중에서도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의 선봉에 섰던 종편들이 이번에는 탄핵의 일등공신으로 180도 돌아선 것은 꽤나 역설적이다. 사회의 주요 의제들을 설정(agenda setting)하고 선거가 끝나면 당선자를 몰아붙이는 게 언론의 기능이고 속성이라 쳐도 이번 변신은 너무 극적이어서 그 배경이 자못 궁금하다.

  최순실 사태로 홍수처럼 쏟아지는 뉴스를 보며 특파원 시절의 불쾌한 경험이 불현듯 떠올랐다. 필자가 1990년대 말 워싱턴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돼서다. 마침 새로 바뀐 국무부 한국과장을 인터뷰하자고 했더니 한국 특파원과는 개별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나중에 특파원 동료들에게 들은 바로는 ‘작문’이 주범이었다. 1차 북핵 위기 때인 1993~94년 제네바 북미회담 당시 얼토당토않은 기사를 마구 써대는 한국 기자들에게 학을 뗀 미국 관리들이 응징 차원에서 공식 발표 이외의 개별 취재는 불허한 게 워싱턴에서도 관행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하긴 국내에서도 대형 사건이 터지면 어김없이 작문 경쟁이 기승을 부리니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 꼴이다. 탄핵 정국 초기에 몇몇 자리에서 지인들에게 “다 지나고 나면 이들 기사의 태반이 엉터리로 드러날 것”이라고 단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의 창작력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최순실 재산 10조 원대’ ‘최순실 아들 청와대 사무관 특채’ ‘사드 배치·개성공단 폐쇄·통일대박론 등의 대북 정책은 최순실 아이디어’ ‘청와대 경호실의 최순실 집 경호’ ‘새누리당 당명은 최순실 작품’ ‘정유라는 박근혜 딸’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의 박근혜 대통령 비하’ ...... 끝도 없다.

  허위·날조 보도만 문제가 아니다. 이석기 석방 구호나 박 대통령의 성행위 묘사 등 촛불집회의 부정적 측면이나 최순실 사태의 또 다른 진실을 담고 있을지 모를 ‘고영태 파일’ 등은 아예 묵살하거나 축소 보도한 편파성도 못지않게 심각하다.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밀회설로 국내외 망신을 자초하고도 모자라 시정의 아낙네들도 다하는 보톡스나 필러 시술을 무슨 큰 범죄라도 되는 양 60대 중반의 여성 대통령이 했느니 마느니 시시콜콜 캐며 국민의 집단적 관음증을 부추긴 ‘참을 수 없는 가벼움’도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대문짝만 한 오보를 내고도 눈 하나 깜박 않는 강심장 역시 우리 언론의 고질병이다. 탄핵 정국에서도 대부분 ‘아니면 말고’로 뭉갰고 정 안 되면 코딱지만 한 정정기사로 생색냈다. 출처가 불분명한 ‘카더라 보도’는 예사이고 심지어 사실이 아님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대로 보도하거나 못 본 척하며 촛불 눈치 보기에 급급했으니 ‘쓰레기 언론’이란 지탄을 받아도 싸다. 혹시라도 탄핵소추안이 기각될까 봐서인지 헌재 판결이 임박해 몇몇 매체가 최순실 사태 관련 보도들의 진위를 가리는 특집을 꾸렸지만 변명과 책임전가만 난무했을 뿐 진정한 자기반성은 없었다.

  탄핵이 옳으니 그르니, 언론이 잘했느니 못했느니 따지기엔 때를 놓친 느낌이다. 하지만 사회의 목탁으로서 언론의 책임 있는 자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매체가 정보를 일방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던 시절에도 그랬지만 요즘은 SNS의 폭발적 발달로 다자간 소통이 손쉽게 이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거짓이거나 잘못된 기사를 걸러내는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이번에도 광우병이나 세월호 때처럼 게이트 키퍼의 역할을 방기하고 가짜 뉴스 생산과 유통에 앞장선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것은 당연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대통령 파면’이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섰다. 다음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느냐에 나라의 명운이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목에서 지난해 미국 대선이 가짜 뉴스로 판세가 뒤집혔을 수도 있다는 분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언론이 또다시 무책임한 보도로 국민의 눈을 가리고 반목과 분열을 부추긴다면 나라의 앞날이 어찌 될지는 볼 보듯 뻔하다. 40여 일 남은 대선 정국에 즈음해 언론이 대오각성과 함께 정론직필(正論直筆)의 본령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이도선 ( yds29100@gmail.com ) 

    언론인,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전) 백석대학교 초빙교수
    (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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