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7:00 (금)
(121)진주 류씨(晋州柳氏.토류계)-60,104명
(121)진주 류씨(晋州柳氏.토류계)-60,104명
  • 정복규
  • 승인 2015.02.19 01:12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주유씨(晋州柳氏)는 류정(柳挺)을 시조로 하는 토류계(土柳系)와 문화류씨의 후손 류인비(柳仁庇)를 시조로 하는 이류계(移柳系)가 있다. 토류계의

시조 류정(柳挺)은 원래 진주에 대를 이어 살아온 선비 집안의 후예다. 류정이 고려 때 벼슬이 좌우위상장군에 이르고 진강(진주)부원군에 봉해짐으로서 후손들이 본관을 진주로 하였다.

류정은 고려 때 벼슬을 지내고 진주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진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류정의 딸이 우봉최씨 집안에 시집가서 최충헌을 낳았고, 그 외손녀를 다시 며느리로 맞아들였다. 최충헌 집권 시기에 우봉 최씨가에서 사위와 며느리를 얻음으로써 꾸준히 번성을 누린다.

류문통은 세조 6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사간을 거쳐 상주목사에 이르렀다. 그가 지은청천유고에는 진주류씨 상계(上系)가 밝혀져 있다. 류문통의 아들 류인귀는 연산군 2년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수찬이 되었다. 다음에 정언으로서 폐비윤씨 문제와 관련돼 회덕에 유배된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 나왔다.

류인귀의 동생 류인숙은 중종 2년 진사시에 합격, 3년 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이조조랑, 직제학, 대사헌, 도승지를 역임하고 기묘사화에 조광조의 일파로 투옥되었으나 영의정 정광필의 도움으로 석방, 다음해 경주부윤이 되었다. 그러나 명종이 즉위하자 대윤 윤임의 일당으로 명종의 즉위에 반대하고 계림군을 옹립하려 했다는 소윤 윤원형의 탄핵을 받아 무장에 유배된 뒤 사사되었다.

문정공 류근은 1591년 정철이 화를 당할 때 그 일파로 몰려 탄핵을 받았으나 선조의 두둔으로 화를 면했다.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왕을 호종했으며 그 뒤 경성 안무사가 되어 민심을 수습했다. 류응수는 선조 때 무과에 급제, 선전관이 되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공을 세워 함흥 3걸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류흥룡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 류지정을 대신하여 적에 잡혔다가 풀려나왔다. 청주와 회덕에 살면서 경전을 닦는 한편 50년간 존왕양이(尊王攘夷)를 교육의 기본으로 삼아 후진을 양성했다. 문인이 4-5백 명에 이르렀으며 문산부자(文山夫子)라 불렀다. 우암 송시열이 묘비명을 지었다.

류후성은 18개 읍의 수령을 거치고 현종 때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효성이 두터웠는데 어머니가 7년 동안 병을 앓자 스스로 의학공부를 하여 구완하였고 전의(典醫)로도 활약했다. 청백함으로도 이름이 있었다.

현대인물은 류일환(유한양행창설자), 류치환(시인), 류치진(극작가), 류덕형(연극인,서울예전학장), 류승국(정신문화연구원장), 류상호(국회의원,서울고법부장판사), 류래형(주오사카총영사), 류욱형(서울보훈지청장), 류택형(서울지검검사), 류원영(한국전자회장), 류특한(유유산업회장), 류해창(우진건설,제일기업사회장), 류영해(대전을지병원장), 류종수(동양화가), 류승택(신아일보편집국장), 류승호(유한킴벌리사장), 류익수(독립운동가), 류병룡(함흥군수), 류갑수(검사,변호사), 류만수(대구지검검사), 류민수(독립운동가), 류병진(서울고법부장판사), 류국년(진주농림전문대학장), 류만수(대한애국청년단의장), 류해조(양구군수), 류해문(변호사), 류승해(단천-홍원군수), 류만형(한의사,한학자), 류세형(동국대교수), 류승운(독립유공자), 류승원(육군준장,국회의원), 류승수(대일한의원장), 류해인(구로고등학교장), 류정근(합천경찰서장), 류윤수(서울이문역장), 류봉수(건설부사무관), 류경학(농공학박사), 류해억(지방전매서장), 류해종(건축설계사), 류치운(동진산업회장), 류해성(세무사), 류창억(인하대교수), 류영길(유일상사대표), 류보형(대한석유협회상무이사), 류재형(()삼양스포츠사장), 류승조(도서출판상서각대표), 류원형(소창한의원장), 류장발(유전공학박사,미국대학교수), 류태환(부산덕흥의원장), 류종수(동양화가), 류우수(동아대교수), 류영구(유신경외과의원장), 류은규(고려예식장부사장), 류해덕(교수,경영학박사), 류형만(철학박사,교수), 류정호(아주섬유공업사대표), 류영환(대원당한의원장), 류해준(청구목재상무이사), 류욱형(천주교안성성당총회장), 류준형(강남한의원장), 류지연(한국금속공업사회장), 류치형(경찰서장), 류두형(경찰서장), 류철형(국방부조달본부부이사관), 류길형(치과의원장), 류춘복(양평-고양군수), 류태형(극동모방사장), 류휘형(서울지방국세청조사국장), 류부형(홍익회중앙회장), 류준형(육군소장)씨 등이 있다. (무순, 이류계 및 전 현직 구분 안 됨)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유자한(柳自漢) : 문과(文科) 세조6(1460) 평양별시 일등(一等) 장원급제, 유자빈(柳自濱) : 문과(文科) 세조8(1462) 식년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등 모두 465명이 있다. 문과 137, 무과 35, 사마시 289, 의과 2, 음양과 1, 율과 1명이다. 과거 급제자는 류인비(柳仁庇)를 시조로 하는 이류계(移柳系)와 구분이 안 된 것이다.

항렬자는 24() (), 25(), 26() (), 27() (), 28() (), 29() () (), 30() () (), 31() (), 32(), 33() (), 34() (), 35() (), 36() () (), 37() () (), 38(), ()

주요파는 양화공파(백참판공파, 계참판공파, 안간공파), 총랑공파(진천군파, 대사성공파, 판서공파) 등이 있다. 집성촌은 경남 합천군 봉산면 봉계리,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진현리, 경북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경남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 충북 청원군 현도면 노산리, 경남 합천군 묘산면 가산리, 경남 합천군 야로면 하빈리, 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등이다.

본관 진주는 경상남도 진주시의 지명이다. 1392(태조 1)에 진양대도호부가 되었다가 1402(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진주 본관 성씨는 진주강씨(晋州姜氏), 진주고씨(晋州高氏), 진주곽씨(晋州郭氏), 진주권씨(晋州權氏), 진주김씨(晋州金氏), 진주노씨(晋州魯氏), 진주동방씨(晋州東方氏), 진주류씨(晋州柳氏), 진주모씨(晋州牟氏), 진주박씨(晋州朴氏), 진주배씨(晋州裵氏), 진주백씨(晋州白氏), 진주서씨(晋州徐氏), 진주소씨(晋州蘇氏), 진주오씨(晋州吳氏), 진주유씨(晋州劉氏), 진주유씨(晋州兪氏), 진주윤씨(晋州尹氏), 진주이씨(晋州李氏), 진주임씨(晋州林氏), 진주임씨(晋州任氏), 진주장씨(晋州張氏), 진주전씨(晋州全氏), 진주정씨(晋州鄭氏), 진주정씨(晋州丁氏), 진주조씨(晋州曺氏), 진주조씨(晋州趙氏),진주주씨(晋州朱氏), 진주진씨(晋州陳氏), 진주진씨(晋州秦氏), 진주채씨(晋州菜氏), 진주최씨(晋州崔氏), 진주탄씨(晋州彈氏), 진주하씨(晋州河氏), 진주한씨(晋州韓氏), 진주형씨(晋州邢氏) 등이 있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진주류씨는 1985년에는 총 17,667가구 72,829, 2000년에는 총 18,685가구 60,10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숫자는 이류계와 토류계를 구분하지 않고 합친 것이다. 15년 만에 1천여 가구가 늘어났다. 반면 인구는 오히려 12천여 명이 줄어들었다. 조사과정에서 어떤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21,019, 부산 5,606, 대구 2,454, 인천 3,325, 경기 12,346, 강원 2,022, 충북 4,794, 충남 7,353, 전북 2,399, 전남 1,228, 경북 3,489, 경남 6,668, 제주 124명이다. 서울, 경기, 충남, 경남, 부산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5,349, 부산 3,788, 대구 2,076, 인천 3,873, 광주 207, 대전 3,085, 울산 803, 경기 15,654, 강원 1,204, 충북 3,723, 충남 3,523, 전북 878, 전남 394, 경북 2,101, 경남 3,359, 제주 87명이다. 경기, 서울, 인천, 부산, 충남, 경남, 대전 지역에 많다.

 

-------------------------------------------------------------

  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인기기사
뉴스속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금융소비자뉴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여의도동, 삼도빌딩) , 1001호
  • 대표전화 : 02-761-5077
  • 팩스 : 02-761-5088
  • 명칭 : (주)금소뉴스
  • 등록번호 : 서울 아 01995
  • 등록일 : 2012-03-05
  • 발행일 : 2012-05-21
  • 발행인·편집인 : 정종석
  • 편집국장 : 백종국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윤정
  • 금융소비자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금융소비자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fc2023@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