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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블로어' 정병기 KB국민은행 감사의 선택
'휘슬블로어' 정병기 KB국민은행 감사의 선택
  • 이민혜 기자
  • 승인 2015.01.02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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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로빈후드’냐,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도연명이냐?

 
미국에서는 내부 고발자를 일반적으로 '휘슬블로어(whistle-blower)',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이라고 한다. 또는 '딥스로트(Deep Throat)'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딥스로트(Deep Throat)'란 명칭은 1972617일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로 닉슨 미국 대통령을 사임에 이르게 한 이른 바 '워터게이트 사건' 때 알려졌다. 이를 보도한 기자 칼 번스타인과 밥 우드워드에게 정보를 제공했던 사람의 암호명이었다이후 'Deep Throat'가 내부고발자, 밀고자를 뜻하는 고유명사로 굳어졌다.
 
국민은행 이사회에서 보낸 내부 문건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문건에는 특별감사 행위가 불법이니 감사보고서를 봉인하라고 적혀있습니다.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이사회가 감사해임을 논의했습니다. 이사회 결정도 감사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런데 시끄러우니 도둑 잡지 말라고 경찰을 내치는 격입니다. 그야말로 썩은 물입니다.”
 
이는 지난 해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 간의 오랜 내분 당시 최초로 문제를 제기, 주전산기 갈등을 촉발시켰던 정병기 국민은행 상임감사가 지난 9월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충격적인 주장이다. 가을 들어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모두 물러났지만 '내부고발자'였던 정 감사는 경징계를 받으면서 현직에 남았다. 지난 연말 인사에서도 그는 유일하게 물러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윤종규 회장이 단행한 거센 인사태풍속에서도 굳세게 살아남은 것이다.
 
당시 정 감사는 KB내분사태에 지주사와 사외이사, 이들과 연계된 관련 임직원들이 집단적으로 사건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최고 엘리트의 가면을 쓰고 인맥, 학맥 등을 동원해 온갖 거짓으로 비리를 은폐했다면서 지주사 임직원들과도 수시로 모여 협의를 가졌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한 행위를 청문회를 열어서라도 낱낱이 밝혀야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연말 윤종규 회장은 지주사와 계열사의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으나 웬 일인지 ‘KB 사태에 연루된 정 감사만 현재까지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연히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정 감사는 금융감독원에 KB금융의 전산비리를 알린 인물이다. KB 사태 당시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 편에 섰던 윤웅원 KB금융지주 부사장과 박지우 국민은행 부행장은 이번 연말 인사를 통해 퇴임했다.
 
KB금융지주의 한 고위 관계자는 윤 회장이 단행한 대규모 인사를 통해 KB내분 사태 관련 임원이 모두 옷을 벗은 상황에서 정 감사만 자리를 보전하게 됐다정 감사 또한 KB 사태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만큼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게 대부분 직원들의 입장이라고 정 감사의 용퇴를 사실상 압박했다.
 
금융위는 그동안 KB내분 사태의 주역인 정 감사에 대해서 특별히 용퇴를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른 관련자들을 정리하라고 윤종규 회장을 압박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 감사는 금감원에 KB금융의 비리를 알린 사람이다. 그의 자리보전에 대해선 KB금융 안에서도 미묘한 기류가 교차한다. 국민은행은 정 감사가 할 일을 했다는 시선이 강한 반면 KB금융지주는 그를 내부고발자 또는 골치아픈 트러블 메이커로 간주하며 불편한 기색이다. 그는 재무부-기획재정부-금융연구원 등을 거친 이력의 소유자이다. 말하자면 관피아(재무부+모피아)’ 낙하산 출신이다.
 
금융위는 사실상 정 감사의 친정이다. 금융위가 지배구조 개선을 이유로 윤 회장을 달달 볶으면서 문제인사들을 솎아내라고 주문을 했다. 그러면서 정 감사를 쏙 뺀 것은 그가 한솥밥을 먹은 '모피아'식구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윤 회장 취임 후 KB금융지주 내의 달라진 분위기로 그는 이제 졸지에 '눈칫밥'을 먹는 신세가 된 셈이다. '윤종규 체제'는 금융지주 회장과 국민은행장을 겸임한다. 그가 연말 인사에서 일단 자리를 보전했으나 관련자들이 모두 용퇴한 상황에서 시간이 갈수록 뭔가 서먹서먹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정당한 내부고발은 조직의 이익보다 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공익적 행위로 평가된다. 개인의 윤리의식과 양심에 의거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내부고발자 보호제도는 고발자의 신변과 신분을 보장하는 동시에 책임을 감면하고, 경우에 따라 보상하기도 한다. 다만 내부자에 의한 고발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이익이나 보복적 성격을 띤 행동은 정당화할 수 없다.
 
정 감사가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 지를 확실하게 말하기는 힘들다. 실제로 정 감사가 KB금융지주 내의 달라진 여론을 의식해 향후 거취를 고민 중일 수도 있다. 홀로 남아서 영국의 전설적인 의적(義賊)인 '로빈후드’처럼 될 것인지, 아니면  관직을 버리고 표표히 떠나며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었던 도연명(陶淵明)처럼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그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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