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금산(金産)분리와 신제윤 위원장
삼성의 금산(金産)분리와 신제윤 위원장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4.12.26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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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오너 전횡막을 금융개혁 조치 후퇴..알고 그랬다면 '직무유기'

 
몇 년 전에 "사무실에 뱀이 들어왔을 때 기업별 대응방식은 어떨까?"라는 제목의 유머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구었다.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현대 : 우선 때려잡고 고민한다 ...#삼성 : 뱀에게 떡값을 준다... #LG : 삼성의 처리결과를 지켜본다... #두산 : 트위터로 물어본다... #한화 : 회장에게 어떻게 할 지를 물어본다...등등

많은 사람들이 이 문답내용을 지켜보며 실소를 자아냈다. 상상력이 풍부한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이지만 대체로 그럴 듯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이제 명실 공히 글로벌 대기업을 표방하면서 세계를 상대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다만 거센 비바람 속에서 성장을 거듭하면서 기업 별로 닥쳐온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창업 1세 때부터 다져온 특유의 기업문화가 온존하는 가운데 오너의 스타일에 따라서 수십년 동안 기업을 키워온 방식과 노하우가 같을 수 없다.
 
주목할 것은 우리나라 최고의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 대응방식이다. 유머에서 떡값이란 표현이 등장한 탓이다. 우리나라에서 떡값은 사실상 뇌물과 같은 뜻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슨 수단을 써도 좋다는 종전의 삼성그룹 문화와 상당 부분 일맥상통한다. 이병철-이건희 회장을 거치면서  역대로 삼성그룹의 오너일가는 그룹 안에서 의사결정의 독점권과 부귀영화를 누려왔다. 일종의 황제경영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간 순환출자를 통한 그룹지배를 비롯해서 소수 지분에 의한 총수 1인의 경영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을 받아왔다. 세습-무노조 경영과 사외이사 등의 견제역할 부족 등 문제가 파생됐다. 아울러 2, 3세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 사채, 차명주식 등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삼성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클대로 컸다. 무소불위의 정권이라고 해서 가히 삼성을 건드리지 못한다.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도 큰 탓이다, 오죽하면 세간에서 한국을 삼성공화국이라고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현실이다. 지난 2012년 기준 삼성그룹 매출의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내 비중은 23.0%, 주식 시가총액은 25%에 이른다. 이에 따라 쏠림현상이 심화하면서 삼성그룹에 위기가 닥치면 한국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 해 법인세를 63000억원 납부했다. 전체 법인세 세수(稅收)16%를 혼자 감당했을 정도로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삼성의 실적이 나빠지면 국가 경제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8조원 안팎의 세수 차질이 예상되고 있는 것은 삼성을 비롯, 주요 대기업의 실적 부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스마트폰 갤럭시의 위기는 단순히 삼성의 위기가 아니다. 앞으로 삼성이 '스마트폰 이후' 어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는가에 따라서 한국경제의 명암이 엇갈릴 처지다.
 
엊그제 대기업의 금융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등기임원 임명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금융당국이 추진한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재계의 강한 반발에 밀려 후퇴했다. 당초 자산 2조원 이상 모든 금융사에 적용키로 했던 임원후보추천위원회(任推委) 신설 규정에 증권사와 보험사 등 제2금융권이 제외되면서 적용대상이 불과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종적인 적용 대상은 은행지주 등 551개 금융회사 가운데 자산 2조원 이상인 118개사에 불과하다.
 
당초 포함됐던 제2금융권이 임추위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금융위가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의 동력을 스스로 갉아먹었다. 애초의 거창한 공약이 누더기가 된 셈이다. 금융위가 임추위 관련 규정을 대폭 완화한 것은 삼성, 한화 등 다수의 금융계열사를 둔 대기업들이 강하게 반발한 탓이다. 임추위가 의무화되면 각 재벌그룹 총수의 인사권이 불가피하게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김기식 의원은 "2금융권까지 임추위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에 대해 재계, 특히 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삼성그룹의 반대가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수정된 지배구조 모범규준 의결은) 삼성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맹렬히 비꼬았다. 금융회사 임원선임에 있어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임추위 상시적 운영규정의 적용대상을 축소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과정이 석연치 않다. 삼성같은 거대 재벌의 로비나 물타기가 있었을 것이란 추론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위가 개혁안인 모범규준의 시행을 연기하고 관련 규정을 재검토 한 것은 분명히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수장인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제2금융권 지배구조개선안을 이렇게 만든 것은 재벌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고만 것이라는 지적에 분명한 답변을 해야 한다. 만약에 정부가 재벌금융에 굴복하고 알았다면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후 여러차례 4대 구조개혁 대상의 하나로 금융권의 보신주의를 지적해 왔다. 금융당국이 삼성을 중심으로 한 재벌그룹들의 반발에 따라 애초 소신과 입장을 쉽게 번복했다면 이 또한 금융보신주의라는 구태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금융위가 애초 지배구조 개혁안에서 자산규모 2조원이 넘는 금융회사들이 임추위를 의무적으로 만들어 CEO와 임원들을 추천하도록 한 것은 재벌총수가 금융계열사 사장단을 마음대로 임명해온 관행을 제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들어 재벌그룹과 총수 일가가 금융 계열사를 사금고처럼 활용해온 사례는 곳곳에서 드러난다효성캐피탈의 전·현직 대표이사 등이 그룹회장의 장남 등 효성그룹 임원들에게 수천억원의 불법 대출을 해준 혐의로 지난 7월 금융감독원의 중징계를 받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당국의 이번 개혁안 후퇴는 삼성그룹의 금산(金産)분리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현재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문제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과도한 결합에 있다. 만일 그룹의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가 부실해질 경우 그 위기가 삼성생명으로 번지고, 나아가 그룹 전체로 옮아갈 가능성이 크다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지난 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건희 회장의 장기와병으로 경영공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서도 지난 달 14일엔 삼성SDS, 이달 18일엔 제일모직이 유가증권시장에 대망의 상장을 했다.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막중한 비중을 고려하면 삼성그룹 지배구조 문제는 일개 집안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삼성그룹의 금산분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데 필자는 동의한다. 삼성그룹은 혹시라도 산업자본의 부실이 금융자본과 국가경제의 부실로 전이되지 않도록 할 책임이 크다.  국내 경제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재벌그룹이 무너질 경우 그 악영향과 부정적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장기 와병중인 가운데 아직 경영능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이재용 후계체제가 승계를 준비중이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삼성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 않다삼성그룹이 3세 승계를 앞둔 지금 진정 나라의 경제를 생각한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그룹이 당면한 과도한 금산결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힐 때가 된 것이다.
 
신제윤위원장은 이번 금융기관 지배구조 모범규준이라는 개혁조치의 후퇴가 삼성그룹 총수일가의 금산분리 문제와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 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개혁조치가 실행됐어야 그나마 재벌오너의 전횡을 막고 제2금융권의 건전한 육성을 위한 시금석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었던 까닭이다. 신 위원장이 말썽많은 삼성그룹 금산분리의 순조로운 서막(序幕)이 됐을 지도 모를 이 개혁안을 알고서도 후퇴시켰다면 상당 부분 직무를 유기한 것이 된다. 반면 만일 모르고 그랬다면 금융위원장으로서 무능과 안일함의 표출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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