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金會의 '위험한 질주'
西金會의 '위험한 질주'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4.12.0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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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학맥의 '승자독식'과 '신관치 금융' 사태를 우려한다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떠나 금융기관 CEO의 경질 문제는 정권 교체기마다 등장한 단골 메뉴다. KB금융지주의 경우 임기를 다 채운 CEO가 이상할 정도다. 다른 금융지주들의 CEO 또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부유일기(蜉蝣一期)의 신세로 전락했다.

KB의 경우 '관치(官治)'에 휘둘리는 고질적인 한계를 명백히 드러낸 대표적인 금융기관이다. 올해 임영록 KB지주 회장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 통보를 받음에 따라 역대 수장 5명 모두가 제재를 받는 수모를 당했다. 이에 앞서 KB 수장을 역임한 황영기 회장, 강정원 은행장, 어윤대 회장 모두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이 가운데 황 회장과 강 전 행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불명예 퇴진을 하고 말았다.
 
과거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의 합병 이후 초대 통합 은행장을 역임한 김정태 전 행장은 당시 3연임에 시도했다 하지만 2004년 임기를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국민카드 합병과 관련해 회계기준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까지 은행장에게 내려진 최초의 '문책경고' 였다.
 
우리금융 회장 출신인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도 20089KB금융 지주회사 출범과 함께 화려하게 금융권으로 복귀했지만, 임기 1년 만에 직무정지 상당의 징계를 받고 불명예 퇴진을 해야만 했다. 20099월 취임한 강정원 회장 겸 행장 역시 관치의 통제 하에 있는 지주사 회장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다. 당시 강 회장은 '외국계 은행 출신의 정통 뱅커'로 금융권의 이목을 사로잡았지만, 부실대출과 카자흐스탄 BCC은행 투자손실, 이사회 허위보고 등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MB정부 4대 천왕으로 불리던 어윤대 전 회장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20107월 취임 때부터 MB정부의 ‘4대 천왕으로 불리며 최고 실세로 군림했다. 하지만 정권 말기 그 기세가 급격히 꺾였고,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정권의 집중 타깃이 돼 뭇매를 맞아야 했다. KB 출신 전임 CEO 4명 가운데 3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화려하게 깜짝 등장했다가 정권 교체와 함께 무수한 뒷말을 남긴 채 쓸쓸히 사라진 것이다.
 
소문으로만 돌던 서금회(西金會/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는 역시 막강했다. 이광구 우리은행 부행장이 지난 5일 차기 우리은행장에 내정됐다. 행장으로서의 개인 능력 여부를 떠나 서금회 멤버인 이 부행장이 예상대로 행장에 오르면서 서금회의 독주와 '신()관치(또는 정치금융)' 논란이 더욱 증폭되는 양상이다.
 
얼마 전 대우증권 사장에 서금회 멤버인 이 회사의 홍성국 부사장이 내정된 데 이어 서강대 경영학과를 나온 이 부행장까지 우리은행장을 꿰차면서 서금회가 금융권의 핵심 세력으로 떠올랐다. 당초 금융권에선 이순우 우리은행장이 무난하게연임할 것이란 전망이 강했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들 역시 원활한 민영화를 위해 이 행장의 연임이 적절하다는 의중을 간접적으로 내비쳐 왔다. 그런데 행추위가 꾸려지기도 전에 이 부행장이 유력 후보로 급부상했다.
 
서금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들이 2007년 만든 모임이다. 은행, 증권, 보험, 카드, 자산운용 등 금융산업 전반에 걸쳐 회원들이 포진해 있다. 현 정권 들어 행장에 발탁된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을 비롯해 박지우 국민은행 수석 부행장, 김윤태 산업은행 부행장, 이경로 한화생명 부사장 등이 멤버다.
 
서금회 멤버는 아니지만 역시 현 정권에서 발탁된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까지 포함하면 서강대의 막강 파워는 더욱 커진다. 서금회 측은 박 대통령과 무관한 그야말로 친목모임이라며 '금융계 독식설'에 억울해 한다. 하지만 최근 선임된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에 이어 또다시 내정설이 사실로 결론 나면서 금융권 전반의 인사는 난맥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권에는 정권과 정치권에 줄을 대지 않으면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없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보이지 않는 손논란도 거세다. 2차 행추위를 하루 앞둔 지난 1일 이순우 행장이 돌연 연임 포기 선언을 하면서 외압설이 끊이지 않았다. 당초 금융위 고위 관계자가 외압의 주체로 지목됐지만 최근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청와대 실세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행추위원들 역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내정설 등이 돌자 크게 불쾌해 했으나 결국 우리은행 지분 57%를 보유한 대주주(예금보험공사)를 의식해 현실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 부행장이 아닌 다른 후보가 차기 행장 후보로 발탁됐다면 (대주주인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주주총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윗선의 의지가 그렇다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낙하산 인사를 밀어주는 것 외엔 (행추위원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런 측면에서 금융당국 수장의 발언이 매우 무책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최근 금융권 주요 인사에서 약진을 거듭하는 '서강대 금융인 모임(서금회)' 논란에 대해 "시장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금회 소속 이광구 우리은행 부행장의 차기 행장 내정설과 관련해 "내정설이라는 것은 없고 우리은행 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가 절차에 따라 자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병석 의원이 "행추위가 차기 행장 후보군을 3명으로 압축했을 때 이 부행장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온다"고 묻자, 신 위원장은 "행추위에서 검증 절차를 하기 때문에 안 맞는 말"이라고 부인했다. 그는 "우리은행장 선출 과정에 금융위가 개입하거나 청와대 뜻을 전달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하며 "금융권에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 자체도 이상한 용어라고 생각한다"고 강변했다.
 
이는 금융권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을 부인하는 것이다. 청와대나 정치권 실세가 하는 일이니 부인할 수 밖에 없는 처지는 이해가 간다. 그렇더라도 거짓말처럼 들리는 말을 국회에서까지 늘어놓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닌다. 자칫 금융권은 물론 국민의 대변자인 국회를 능멸하고, 나아가 전체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인 탓이다.
 
이순우 행장처럼 연임 의사를 강하게 밝혔던 현직 행장이 느닷없이 포기를 선언을 한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과거에도 관치가 있었지만 그때는 관료들의 철학과 책임의식이라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금융권 수장 자리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이광구 내정자와 관련한 여러 의혹들이 설령 사실과 다르더라도 논란이 된 후보는 일단 비켜가는 '숨고르기'의 모양새를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낙점된 사람의 내정설이 미리 새어 나가 여론의 비판이 거센데도 원안대로 밀어붙이는 것이 최근의 인사 행태다. 최소한의 투명한 절차를 지키려는 노력마저도 최근엔 사라졌다는 지적이 많다. 투서와 비방은 1990년대 CEO 인사 때마다 기승을 부렸다. 특정인을 깎아내리거나 모함하는 투서가 청와대에 수북이 쌓였다. 2000년대 들어 투서는 사실상 사라졌다. 그런 투서와 비방이 최근 다시 살아났다.
 
이순우 행장의 연임이 유력해지자 그의 비리를 들춰내는 투서가 청와대와 사정기관에 날아들었다는 후문이다. 투서 내용은 대부분 작년에 이미 혐의 없음으로 결론난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행장은 상처를 입었고, 이를 토대로 연임 포기 압력이 행사됐다는 얘기도 나돈다. 대우증권 사장 인선 과정에서도 투서는 위력을 발휘했다. 한 유력한 후보자가 꽃값을 과다하게 사용했다는 투서가 날아들면서 선임 절차는 다시 지연됐다. 투서의 내용은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후보자는 결국 사장 경쟁에서 탈락했다.
 
이처럼 최근 금융권 CEO들의  인선결과는 우리나라의 정치금융과 신관치금융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도로를 마구잡이로 질주하듯이 말이다. 제동장치가 없는 자동차는 앞으로 언젠가 사고를 내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은 속이 시원할 지는 몰라도 대형 사고가 나면 그 엄청한 피해를 감당할 수 있을까. 대형 차량사고가 일어나면 운전자 본인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양산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서금회식 승자독식'이나 '신관치 금융' 사태는 그렇지 않아도 후진적이고 취약한 한국 금융산업을 향해 덮치는 하늘의 먹구름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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