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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맨 '소신 키우기'
중앙은행맨 '소신 키우기'
  • 이민혜 기자
  • 승인 2014.11.2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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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일 한국은행 부총재보의 '自伐者無功(자벌자무공)’ 함축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중앙은행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시장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시장의 기대를 합리적으로 통화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김준일 한국은행 부총재보가 지난 18일자로 발간한 ‘한은소식 2014년 11월호’ 한은칼럼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그는 또 “늦가을에 한국은행의 후원을 바라보며 생각해 본 필자의 단상”이라며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낙엽의 군무를 바라보며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自伐者無功(자벌자무공)’을 떠올린 것은 반드시 우연만은 아닐 것”이라는 여운을 남기며 글을 맺었다.
 
‘자벌자무공’이란 자기의 공을 스스로 떠벌리는 사람은 공적이 없다는 뜻으로 그의 표현처럼 현시대의 언어로 바꾸면 ‘잘난 척하지 말라’는 뜻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김 부총재보 임기는 내년 4월25일까지다. 그에게 있어 이같은 한은 후원의 정취를 맞볼 기회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법 하다. 그런 점에서 ‘한은소식’을 빌어 ‘자벌자무공’을 언급한 것은 그가 말한 그대로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특히 그가 외부출신 인사라는 점에서 한은과 한은사람들을 향해 남기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통상 밖에서 보는 한은 사람들을 공부 잘하고 소심하며 말 잘듣는 ‘모범생’이다. 그렇다면 김 부총재보의 말은 한마디로 ‘적극적으로 목소리 좀 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가 부총재보로 재임하는 동안 기준금리는 3.25%에서 2.00%까지 떨어지며 역대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다섯 번의 인하를 경험하는 사이 아쉬움도 많았을 것이다. 특히 지난해 4~5월과 최근 7~10월까지 세 번의 금리인하를 전후한 기억은 그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 많았을 법 하다.정부와 정치권은 물론이거니와 장단기금리 역전을 통한 시장의 압력을 그가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서울 중구 소공동 한국은행(한은) 본관. 각 국실의 한은 직원이 삼삼오오 모여 웃는 얼굴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이 보였다. ‘뼛속까지 한은맨’으로 불릴 정도로 조직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이주열 전 부총재가 이날 차기 한은 총재로 지명됐기 때문이다. 김중수 총재 임기 내내 “한은의 자존심이 뭉개졌다”며 분을 삭이던 많은 직원은 이날만은 마치 ‘독립기념일’이라도 맞은 듯 자축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은 대외 파고에 휩쓸리지 않고 철저히 국민의 입장에서 소신에 따라 우직하게 일하는 인재상을 바람직한 것으로 꼽아왔다. 하지만 전임 김중수 총재 시절에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개별 임직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극히 제한했다. 이에 따라 이 총재는 이런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판단, ‘중앙은행맨’에 걸맞은 자신감과 의견을 피력할 수 있도록 팔을 걷어붙였다는 분석이다.
 
이 총재는 최근 임직원들에게 “맹목적 충성과 과도한 아부는 천박함을 보이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총재바라기’식으로는 조직에서 인정받기 힘들다는 인사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라는 의견도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 소신 있는 중앙은행 직원이 돼야 한다는 것을 총재가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야근도 소신 것 하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 총재는 “한은에서 야근은 필연적이지만 상사의 눈치를 보며 일없이 늦게까지 앉아 있는 사람을 나는 존중하지 않는다”며 “유능한 직원은 자기의 일을 마치면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고 오히려 신뢰 못 받은 직원이 상사가 떠날 때까지 남아 있는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가 최근 보여준 최근 일련의 조치들은 김 전 총재와 대비를 이룬다. 김 전 총재는 소통창구를 하나로 해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명목으로 총재 외 다른 임직원들이 대외 발언을 하는 것을 통제했다. 심지어 해당 발언을 한 이를 추적하기도 했다.
 
결국 이런 상황을 추론할 때 그가 느꼈던 아쉬움을 ‘자벌자무공’이란 말을 빌려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는 글에서 “통화정책과 관련하여 소통(communication)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하던 그는 전임 한은 총재인 김중수 총재의 부름을 받고 2011년 3월 한은 경제연구원장겸 수석이코노미스트(Chief Economist)로 한은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불과 1년이 조금 지난 2012년 4월 한은 부총재보로 발탁됐다. 이른바 ‘김중수 키즈(kids)’로 불린 인물이다.
 
중앙은행은 중립적이고 탈(脫)정치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역대 한은총재는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켜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정통 한은맨이 아닌 외부에서 수혈된 한은 간부로서는 중앙은행을 보는 시각과 처신이 뭔가 달라도 다를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처럼 한은맨들이 맹목적 충성과 과도한 아부로 일관한다면 물론 이는 천박한 일이다. 국가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중앙은행 맨들의 진정한 소신키우기에 찬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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