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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의 오만과 비겁
카카오톡의 오만과 비겁
  • 이도선
  • 승인 2014.11.12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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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선칼럼>요즘 놀라고 화나서 가슴이 벌름벌름하는 일이 시도 때도 없이 터지곤 하지만 어처구니없기는 ‘사이버 검열’ 논란도 매한가지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는 얼마 전 국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와 “수사기관의 카카오톡 감청 영장에 불응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금까지 검찰의 영장 집행에 협조해 왔으나 앞으로는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더 중요히 여기겠다는 논리다.

  관련 기사를 읽고 난 뒤의 느낌은 한마디로 ‘경악’ 그 자체였다. 고객의 사생활을 법에 우선하겠다니. 이게 시가총액 8조 원을 넘나드는 코스닥 1위 기업의 총수 입에서 나올 말인가? 그것도 법 만드는 게 본업인 국회의원들 면전에서. 하긴 영장 불응이 실정법 위반이라면 처벌받겠노라고 기자회견에서 큰소리친 사람이니 새삼스러운 일도 못 된다.

  이 대표는 자신을 독재정권 시절의 민주투사쯤으로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의 행보는 그러나 법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으로 비칠 뿐이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발부된 영장에 불응한다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혹시 국민의 기본권이 걸려 있다면 저항권 차원에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라고 기본권을 탄압하려는 영장을 법원이 용인하겠는가.

  이 대표는 서울대학교를 나와 기자로 잠시 활동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법학박사학위와 변호사 자격을 딴 미국 영주권자로, 카카오에 합류하기 전에는 미국 법무법인과 한국IBM에서 각각 일했다. 이런 경력으로 미뤄 보건대 그의 발언이 결코 법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지는 않았을 테다. 감청 영장이 발부됐다는 것은 해당 사안이 이미 프라이버시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법원의 판단을 의미하고, 영장 불응은 곧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그가 왜 영장 불응이란 무리수를 뒀을까? 한마디로 ‘얄팍한 장삿속’이다. 이른바 ‘사이버 망명’으로 회사가 곤경에 놓이자 상황 반전을 노려 공권력에 대드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사이버 망명’은 정진운 노동당 부대표가 주장한 ‘카카오톡 사찰설’이 시중에 확대 와전돼 가입자가 외국계 서비스로 대거 이탈한 데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야권의 정치 공세까지 한몫 거들자 사태가 급속도로 확산됐으나 가입자가 곧바로 회복되면서 ‘사이버 망명’은 찻잔 속 태풍으로 싱겁게 끝난 모양새다.

  자신의 카카오톡 공유자 3,000여 명이 사찰당했다는 정 부대표의 말에서는 선동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검찰은 그의 집시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려고 하루치 송수신 내역을 압수했을 뿐이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그의 공유자 3,000여 명 각각의 공유자들, 또 그들의 공유자들도 모두 사찰된 셈이니 정 부대표의 하루치 송수신 내역 압수수색으로 카카오톡을 이용하는 모든 국민이 사찰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의 인권선진국이라도 범죄 수사를 위한 합법적인 영장은 시빗거리가 못된다. 현재 탈세 혐의 등으로 미국 사법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대표라면 이쯤은 기본 상식일 것이다. 한 여당 의원은 연간 감청 영장 건수는 한국 150건, 미국 3,000건으로 인구 대비로 치면 미국이 5배나 많다며 “‘사이버 검열’ 논란은 제2의 광우병 사태”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 대표는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는 정공법을 택하지 않고 비겁하게도 카카오톡 이용자를 볼모 삼아 법을 짓밟으려 했다. 그보다는 감청은 합법적 영장이 발부된 극히 예외적 경우로 국한되므로 일반 가입자는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설득하는 게 정도였다.

  실제로 작년에 집행된 카카오톡 감청 영장은 모두 86건으로 국내 가입자 4,000여만 명의 0.0002%에 불과했다. 카카오톡을 포함한 전체 감청 영장 161건 중 124건(77.0%)이 국가보안 사건 관련이고 나머지는 유괴, 성폭행, 뇌물 등 특수.강력 사건이다. 고객의 사생활 보호도 중요하나 이들 범죄 혐의자에 대한 감청 영장을 거부할 명분은 될 수 없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사업자(다음카카오)를 최대한 설득하고, 도저히 설득이 안 되면 긴급 감청이나 압수수색 영장으로 직접 집행하는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못 박았다. 긴급 감청이란 감청부터 하고 법원의 사후 허가를 받는 것으로 만약의 영장 불응에 따른 법의 공백 상태를 해소할 강력한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불필요하고 세련되지 못한 언행으로 사태를 키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검찰의 통렬한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특히 국민 모두가 소위 ‘빅 브라더(big brother)’에 무한대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엄중히 받아들여 ‘사찰’로 오인될 여지는 눈곱만큼도 남기지 않는 투명하고도 공평무사한 법 집행을 체질화하려는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이도선 ( yds29100@gmail.com )  
    언론인,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백석대학교 초빙교수
    (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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