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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라든 중산층(squeezed middle)'
'쪼그라든 중산층(squeezed middle)'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4.10.2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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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개념 제대로 세우고, 각종 정책 재검토해야

 
지난 2011년 말 옥스퍼드 사전이 '쪼그라든 중산층(squeezed middle)'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심각한 경제위기가 중산층의 설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옥스퍼드 사전은 쪼그라든 중산층의 정의를 '물가상승, 임금동결, 공공지출 삭감 등에 영향 받는 사회계층으로 소득 수준이 낮거나 중간층인 사람들'이라고 풀이했다. 이 용어는 에드 밀리밴드 영국 노동당 당수가 그 해 초 BBC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처음 사용한 이후 널리 퍼졌다.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물가상승과 임금동결로 고통받는 중산층을 일컫는 말이다.
 
그로부터 3년이 훌쩍 지났다. 최근 발표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산층의 규모가 4년 만에 6.1% 포인트(47.4%→41.3%)나 감소했다. 2009년에는 10명 중 5명 정도가 중산층이었지만 2012년에는 4명 남짓으로 줄었다는 뜻이다.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은 같은 기간 각각 1.6% 포인트, 4.5% 포인트 증가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중산층에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중산층에 계속 머물 확률도 3% 포인트 정도 감소했다. 이른바 ‘중산층의 붕괴’ 현상이 빨라지고 있다. 중산층 비중이 줄어들면서 계층 구조가 중간 부분이 두꺼운 ‘마름모형’에서 ‘원통형’으로 악화하는 셈이다.
 
누구나 경제의 허리가 중산층이라는 것은 잘 안다. 중산층(middle class)의 개념에 대해 세계적으로 통일된 기준은 없다. 대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마련한 기준을 운용한다. OECD는 소득의 중간값인 50~150%의 소득계층을 중산층으로 본다. 그리고 중위소득의 50% 미만을 빈곤층, 50~150% 미만을 중산층, 150% 이상을 고소득층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은행은 대체로 보수적인 경제진단을 하는 곳이다. 그런 한은이 꼭 1년 전인 지난 해 10월 중산층의 가계 빚 부담 증가세에 우려를 표했다. '가계부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던 한은이 공식적으로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힌 건 그때가 처음이다. 전세금 급등세와 자영업 업황 악화, 금융권의 건전성 관리 강화 속에 중산층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의미다.
 
전세금 상승에다 금융기관의 리스크관리 강화가 맞물려 중소득·중신용 가계의 채무 부담 우려가 높아졌다. 2011년 이후 금융권에 대한 건전성 관리가 강화되면서 중간 이하의 신용등급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업체로 내몰렸다. 은행권에선 새로 빌린 돈보다 갚은 돈이 더 많았지만, 대부업체의 중산용 차주 비중은 2010년 말 13.4%에서 지난해 말 16.0%로 증가했다.
 
중산층의 몰락은 우리나라 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중산층이 경제의 기둥 역할을 맡았던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 상승은 그에 못 미치면서 노후대책 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중산층이 늘고 있다. 미국 전체 중산층의 약 3분의 1(34%)은 401k(확정기여형 기업연금제도)나 IRA(개인퇴직계좌) 등 퇴직연금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연금에 가입한 경우에도 연간 납부액이 2만달러에 그쳐 지난 해 2만5,000달러에서 감소했다. 퇴직 후에 대비한 저축도 매우 부실하다. 약 5분의 1(19%)은 은퇴에 대비한 저축을 아예 하지 않고 있다. 현재 생활에 급급해 저축을 나중으로 미뤘다는 사람도 50%에 이른다. 미국의 중산층이 무너지는 징후다.
 
최근 출간된 ′2016 미국 몰락′에 따르면 지난 2008년 현재 보통의 미국 가정은 연 소득의 무려 130%에 이르는 빚을 지고 있다. 미국 내 소득 중위 가구의 순자산은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전인 2007년 수준에서 43% 감소했다. 현재 미국 중산층은 1984년 이후 30년래 가장 극심한 빈곤에 시달린다. 이처럼 미국 중산층의 생활 기반이 붕괴된 것은 낮은 임금 인상과 고용 불안 탓이다. 미국은 지난 40년간 평균 노동생산성이 2배 증가한 반면 실질임금은 제자리 걸음이다. 최저임금이 올라 저소득층 소비가 증가해야만 경기부양 효과를 얻을 수 있을 정도다.
 
미국에선 특히 지난 17년간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중산층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지난 1993~2010년 유럽 주요국에서는 고임금과 저임금 일자리는 증가한 반면 중간임금 일자리는 오히려 감소했다. 미국도 금융위기를 겪은 뒤 ′일자리 없는 경기회복(Jobloss Recovery)′이 나타나면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특별한 기술이 없는 화이트칼라 사무직의 몰락이다. 미국·독일·일본 의 중숙련 노동자 계층은 1992∼2010년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소득이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고숙련·저숙련 노동자의 실질 소득은 증가했다.
 
이들 선진국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나라가 직면한 중산층 몰락과도 상통한다. 경제 위기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신용 위기'다. 신용 위기는 주식과 부동산에 얹혀있는 '가계 부채'와 직결된다. 안팎의 경제 여건이 나빠지면 소득-소비-경기가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러면 결국 가계 부채의 뇌관이 터지고 거품이 꺼지면서 신용 위기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이를 소홀히 하면 자칫 뱅크런(대규모 현금인출 사태)으로 인한 경제적 '아노미 현상'에 들어갈 위험성이 있다.
 
필자가 볼 때는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난에 따른 단순한 '경제적 충격'보다 '사회·문화적 충격'이 더 걱정이다. 주식이나 펀드의 손실은 경제 문제로 끝나지만, 부동산은 중산층의 자존심을 상징한다. 사회·문화적인 충격으로까지 이어져 더욱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펀드런(대량 환매 사태)'보다 '뱅크런'의 충격파가 훨씬 심각하다. 부동산값이 하락하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펀드 손실은 경제로 끝나지만, 부동산은 사회문화적 충격과 공황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계층(hierarchy)'을 상징한다. 흔히 서울에 자기 소유 아파트를 갖고 있으면 중산층, 그게 비싼 아파트면 부유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자산가격이 하락해 불안해서 팔아야 하는 시점이 와도 선뜻 팔지 못한다. 중산층이 갖고 있는 마지막 자존심 때문이다. 아파트를 헐값에 판다는 것은 중산층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는 셈이다. 그만큼 사회적 상징성이 크다. 따라서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까지 줄곧 버틴다. 사회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는 중산층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 버팀목 역할을 하는 중산층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면 사회·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굉장히 심각한 사태가 벌어진다. 
 
중산층의 몰락과 붕괴가 단순히 경제문제를 넘어서 체제의 위기와 직결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과거 조선시대에도 군역과 세금을 주로 담당했던 중산층들이 붕괴되어 국가의 재정이 약해지고 결국 국력의 쇠약으로 이어졌다. 지배계층 양반들의 일반 백성들의 노비화를 보면 성리학을 양반들의 편의대로 해석하여 노비를 세습시키는 방법으로 이용했다. 부모 가운데 어느 한쪽이 노비라면 자식도 자동적으로 노비가 되는 그런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결국 중산층은 붕괴되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했다.
 
결과적으로 국력의 쇠퇴를 가져왔고. 끝내는 조선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외세가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지가 된 것은  결국 그 나라의 위정자들과 기득권 엘리트들의 책임이다. 자신의 안위 만을 꾀한 처참한  결과인 탓이다. 국가가 백성들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없애주고, 경제의 허리인 중산층을 중점적으로 육성했다면 어떤 나라가 넘보아도 물리칠수 있는 기초 체력, 즉 국력을 배양했을 것이다.
  
물질문명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은 대체로 ‘탐욕’에 길들여져 있다. 투자는 수익을 동반한다는 망상을 갖고 있다. 지금은 단순히 상위층과 하위층의 격차 만이 문제가 아니다. 가계부채의 증가와 함께 중산층의 몰락 가능성이 점쳐진다. 자칫 중산층이 위쪽(上)이  아니라 아래쪽(下)로 집중적으로 몰릴 수 있는 까닭이다. 지금부터라도 이런 상황을 막아야 한다. 중산층이 몰락하면 국가와 사회의 미래에 희망이 없게 된다. 
 
박근혜 정부가 중산층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지 2년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중산층에 대한 기준 하나도 마련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국민 절반 이상은 스스로를 저소득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내놓을 중산층 강화 방안은 실효성에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중산층은 국가 차원에서는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면서 사회 안정의 근간이다. 건강한 중산층의 성장은 국가 발전의 기본이다. 따라서 정부가 적극 나서서 소득증대와 가계부담 경감, 다양한 재산 형성 등의 정책을 내놓아 체감할 수 있는 중산층 기반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정부의 정책들은 겉돌고 있다.
 
정부의 기준에 따라 중산층으로 분류된 사람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정책을 전혀 체감하지 못한다. 현행 기준으로는 연봉 2,500만원, 실제 월급으로 주어지는 돈은 150만원이 조금 넘는 사람이 연 6,000만원 정도 받는 사람과 동급(중산층)으로 취급된다. OECD 기준에 맞춘 우리나라의 중산층 기준은 지나치게 낮게 설정돼 있다.
 
현행 중산층 기준은 소득이 가장 많은 가구와 가장 적은 가구를 한 줄로 세운 뒤 정확히 중간에 위치한 가구 소득(중위소득)을 100으로 놓고 50~150 사이의 가구를 말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우리 국민의 65%가 중산층에 해당된다. 소득으로는 4인 가족 기준 연소득 2,124만~6,372만원 수준이다. 현행 기준대로라면 연소득이 2,100만원만 되어도 6,400만원의 고소득자와 함께 중산층으로 분류된다.
 
정부의 중산층 기반 강화에 대한 정책은 전반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아울러 실효성 있는 방향 설정이 시급하다. 중산층에 대한 정책은 부분적인 손질보다는 전반적으로 정립돼야 한다. 최경환 경제팀이 내건 '민생 안정'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이에 걸맞는 중산층의 범위가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중산층을 강화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중산층에 대한 정의(定義)조차 내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모습이다.
 
마냥 표류하는 한국 경제의 키를 제대로 잡기 위해서는 '쪼그라든 중산층'이 살아나야 한다. 정부가 중산층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고,그동안 시행했던 각종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를 시급히 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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