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골프대디
LPGA 골프대디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4.09.3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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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골프백과 함께 사랑하는 딸들을 어깨서 내려놔야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높고 푸른 하늘의 가을이다. 아침 저녁으로 청명하고 시원하다 못해 이제 싸늘한 바람이 옷깃을 스친다.
 
9월 들어 국내외에서 여자 골프대회가 한창이다. 얼마 전 미국 앨라배마 주 프랫빌 RTJ골프장(72)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요코하마 타이어 클래식 마지막 라운드를 TV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우리나라의 허미정 선수가 최종 합계 21언더파 267타를 기록하며 세계 1위 스테이시 루이스(17언더파 271)4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5년 만의 LPGA 우승이다.
 
국가대표 시절 대표적인 유망주였던 그는 2009년 미국으로 건너가서 LPGA 세이프웨이 클래식 우승 이후 철저히 잊혀진 존재였다. 눈길을 잡아끈 건 그의 메마른 표정이다. 짧은 퍼트를 놓치든 버디를 잡든 그는 표정이 별로 없었다.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은 프랑스 에비앙 챔피언십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그가 마침내 요코하마타이어 클래식에서 우승하면서 스물다섯 나이와 어울리지 않던 건조한 표정을 눈물로 씻어냈다. 무려 5년의 암흑기가 만든 무표정을 지운 것이다.
 
허미정의 웃음 뒤에는 아버지 허관무 씨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이른바 골프대디(Golf Daddy/Golf Dads)’의 힘이다. 딸을 위해서 하던 사업을 접고 온 가족과 함께 미국행을 선택한 허 씨는 이번 대회에서 캐디백을 맸다. 미국 현지 매체들도 허미정과 허미정 아버지에게 관심을 가졌다. 허미정은 우승 후 아버지에게 특히 감사를 표했다.
 
허미정은 아버지가 이번 주 내내 캐디 백을 메주셨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모든 스윙을 배웠을 정도로 아버지가 내 스윙 코치이기도 했다. 내가 샷이나 퍼트에서 실수하면 아버지가 바로 어떤게 틀렸고 스윙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그래서 미스 샷이 나와도 어떻게 바르게 쳐야 하는 지를 알 수 있었다. 이번 주에 정말 큰 도움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국내 골프에서도 골프대디들의 활약은 대단하다. 2주 전 막을 내린 교촌 허니 레이디스 대회에서는 연장까지 가는 명승부가 펼쳐졌다. 지방 대회치곤 엄청난 갤러리(골프장 추산 12,000)가 운집한 가운데 이정민과 김보경은 18홀이 모자라 연장 3라운드까지 가는 접전 끝에 결국 이정민의 우승으로 승부가 갈렸다. 선수들의 승부도 재미있었지만 연장전에 돌입한 두 선수의 캐디는 두 선수 다 아버지인 점이 눈길을 끌었다. 땀을 쥔 승부에 재미를 더해주는 대목이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자골프대회에서 이른바 골프 대디들은 우리나라 여자골프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화제거리다. 한국의 골프 대디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스타 선수들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도 그 뒤엔 언제나 열성적이고도 가족애가 뛰어난 아버지가 있었다. 골프 실력도 대단하지만 훌륭한 선수로 키우려는 부모의 교육열이 남다르다.
 
특히 골프계에서는 아버지들의 극성이 대단하다. ‘골프 대디의 원조,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씨를 보면서 박세리는 아버지는 항상 내가 더 강해지고 최고가 되길 원하셨다고 했다. 김미현의 아버지 김정길씨는 중고 밴으로 넓디넓은 미 전역을 몰고 다니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던 것으로 유명하다.
 
1994년 미국에서 개최된 월드컵축구를 앞두고 이른바 사커 맘(Soccer Mom)’ 열풍이 하나의 사회현상이 됐었다. 당시 월드컵대회로 미국에서는 아이를 축구선수로 키우기 위해 온갖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는 어머니들이 등장했다. 이에 빗댄 골프 대디는 더 이상 다른 나라 말이 아니다. 골프선수인 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아버지들을 골프대디로 부르게 됐다.
 
아버지의 역할이 커지면서 점차 많은 골프대디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됐다. 고단한 LPGA 투어에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골프 만을 위해 안정적으로 시합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딸이 최고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이끄는 한국 부모들의 깊은 마음이 아닐까 이해한다.
 
지난 200285. 미국 LPGA 투어 커미셔너 타이 보타우가 투어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부모님들로부터 경기에 관련된 조언이나 코치를 받지 말아달라라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골프대디 문제가 미국 스포츠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자리에 참석했던 선수들은 당부가 아니라 일방적인 주의라고 해석했다. 또 사무국이 제기한 부모들의 부정 행위는 없었다고 애써 해명에 나서기까지 했다.
 
미국에서 한국 여자선수들의 선전이 돌풍을 일으키는 가운데 일어난 이 일은 한국의 골프대디를 바라보는 다소 냉소적인 시각을 보여줬다. 1998년 박세리의 LPGA US오픈 우승 이후 한국여자선수들이 우승대열에 잇달아 가세하자 미국인들이 한국선수 주변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였던 탓이다.
 
LPGA는 한 때 일부 한국 선수들의 아버지가 딸의 공을 치기 좋은 자리로 옮겨 놓거나 그린 뒤에서 수신호로 방향이나 적당한 클럽을 알려주는 부정행위를 한다며 회의를 소집하기도 했다. 다른 선수들이 보는데 큰 소리로 꾸지람을 하는 행위를 일삼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 미국 언론에서는 한국 아버지들의 이러한 모습을 비꼬아 냉소적 의미의 골프대디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사실에 2003년 뉴욕 타임지 골프 칼럼니스트 마이클 애커시는 아시아 골퍼들은 LPGA가 고향이라는 칼럼에서 한국선수 부모에 대한 오해는 한국문화가 미국문화와 다르기 때문에 빚어진 것일이라고 옹호했다그는 또 테니스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미국도 일부 스타들의 부모가 지나친 간섭을 한다한국 부모들은 자신의 삶을 팽개친 채 낯선 땅에서 언제나 자식들과 함께 한다고 썼다.
 
재미교포 골퍼 크리스티나 김(한국명 김초롱)은 이 칼럼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모든 것을 함께하는 문화라고 이해를 구했다. 애커시는 부모들이 경기 도중 한국어로 부적절한 지시를 하는 등 부정행위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언어장벽 때문에 겪게 되는 문제라고 한국의 골프대디 열풍을 풀이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자식을 위해서 극성스러운 부모는 이 세상 어디에나 있다. 문제는 이같이 식지 않는 한국의 골프대디 열풍이 괴연 교육적 관점에서 옳은 일인지 또 사회적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한국의 골프대디 가운데 병마와 싸우는 아버지들이 예상 외로 많다고 한다. 2005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던 김주연의 부친 김용진 씨는 지난 1년여 동안 폐암과 싸워오면서 그토록 고대하던 딸의 두 번째 우승을 못보고 열흘 전 56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앞서 2004년 레이크사이드여자오픈에서 첫 우승을 거둔 김소희의 아버지 김주영 씨는 딸의 우승소식을 접한 뒤 1년 만인 53세 때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유소연의 부친 유창연 씨도 최근 대장암 수술을 받았고, KLPGA투어 임지나의 아버지도 간암으로 병마와 싸우고 있다. 특히 LPGA를 개척해 온 1세대 선수 아버지들의 심신은 말이 아니다. 주부골퍼 한희원의 부친 한영관 씨는 수년 전 심장병 수술을 두 차례나 받았고, 지금은 은퇴한 박지은의 부친 박수남 씨도 한동안 심장병과 전립선암으로 10년 가까이 고생을 했다.
 
장정의 부친 장석중 씨는 딸 뒷바라지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데다 몸 관리를 잘못해 달팽이관 이상으로 균형감각을 잃었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 호전됐고, 박세리를 골프여왕으로 키운 박준철 씨도 몇해 전 C형 간염과 신장 이상으로 병마와 싸우기도 했다.
 
이처럼 골프선수를 둔 아버지들의 잇따른 투병은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다. 최나연의 부친 최병호 씨는 힘든 것은 어떤 부모나 같지만 특히 골프 선수를 둔 부모는 자녀에게 올인하는 경향 탓에 스트레스가 더 심한 편이라고 토로한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면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고 한다. 최근 김주연 부친의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은 몇몇 골프 대디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정기 모임을 갖기로 했다고 한다.
 
최나연, 신지애, 김인경, 김하늘 등 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스타급 선수 부모들이 가끔 저녁 자리를 함께 한다고 한다. 이들은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면서 앞으로 딸에게 매달리지 말고 부모들끼리라도 만나 골프도 치고, 얘기도 나누며 회포를 풀자면서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자신을 희생하며 아들딸들을 최고의 선수로 키워낸 골프 대디들에게 일단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골프라는 운동은 플레이어가 혼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운동이다. 옆에서 이거해라, 저거해라... 뭐 챙겨라... 뭐해라... 초등학생도 아닌데 이것 저것 챙기는걸 보면 결국엔 아무리 잘해도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학교에 일일이 찾아와서 수업하는데 뒤에서 참관하고 쉬는 시간에는 애들한테 이것저것 참견하는 부모가 있다면 과연 정상적인 일일까.
 
박세리를 키운 것이 골프대디라지만 그 과정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것 같다. 박세리에게는 한밤 중에 공동묘지로 보내서 담력을 키우고 성적이 나쁘면 귀싸대기를 맞고 하는 비정상적인 훈련과정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스스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스스로 잘 하는 선수가 결국 큰 선수가 되는게 아닐까.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한국의 골프대디 문화를 한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듯 싶다. 한국의 골프대디들은 선수의 모든 훈련과 골프레슨, 스케줄을 직접 관리한다. 부모 자신의 성공보다 자녀의 성공을 최우선시한다. 부모들의 열성은 자녀의 성공이 본인과 가족의 성공이라는 한국의 가족문화를 잘 대변한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의 여자골퍼들이 어떻게 하면 보다 스스로 좋은 매너와 경기력으로  동반자들과 함께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고, 선수 아버지들은 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올인열정'이 꼭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지를 따져봐 할 시점이다.
 
한국 부모들의 열성은 서양선수 부모들이 자식을 대하는 것과 형태 면에서 크게 다르다. , 서양선수 부모들은 자녀들의 투어생활을 자신의 인생과는 별개인 선수들 만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반면 한국선수 부모들은 자녀의 성공을 곧 자신의 성공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자신의 직업, 사회생활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녀의 뒷바라지를 위해 미국행에 오른다.
 
시각을 달리해 보면 ‘골프대디문화는 단순히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골프를 좋아하는 부모로서 자녀를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 동반 유명세를 타고 싶은 강한 욕망과 본인들의 세대에서 이루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실현해 보자는 대리만족 심리가 작용했을 수도 있는 탓이다.
 
이제 우리나라 여자 골프선수들도 '스스로 즐기는 골프'를 실천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경기 때마다 아버지 눈치를 보지 않고, 우승할 때에도 상금만 받아가는 선수가 아니라 골프 대중화에 기여하고, 스폰서가 인간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선수, 나아가 다양한 자선 활동으로 친근하고 따뜻한 이미지로의 변화를 앞장서서 이끌어내야 한다.
 
아버지에 의존하지 않고  선수 자신이 경기의 주인공이 되어서 경기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스스로의 인생을 사는 우리나라 여자 골프선수들을 LPGA에서 보고 싶다. 아들이나 딸이나 나이 20이 넘으면 이미 '품안의 자식'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 만의 삶이 존재한다. 아버지의 인생이 그대로 자식의 인생이 될 수는 없다. 그러려면 골프대디들이 먼저 무거운 골프백과 더불어 사랑하는 딸을 어깨와 등에서 내려놔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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