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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경주 손씨(慶州孫氏)-78,450명
(99)경주 손씨(慶州孫氏)-78,450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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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손 순(孫順)은 신라 개국 당시 6부촌장의 한 사람인 대수촌장 구례마의 후손이다. 손사성은 조선 세종 때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계성군(鷄城君)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 손 욱과 손 소(孫昭) 형제가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가문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다.

손 소는 조선 초기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그는 세조 5년 김종직과 함께 문과에 급제했으며 주부와 병부좌랑 등을 역임했다. 그 뒤 성주목사와 공조참의를 거쳐 계천군(鷄川君)에 봉해졌다. 안동부사와 진주목사도 역임했으며 특히 문장과 글씨로 명망이 높았다.

손 소의 둘째 아들로 탁월한 문장력과 경륜에 밝았던 손중돈은 김종직의 문인이다. 그는 성종 때 문과에 급제, 양산군수 등을 지냈다. 그 뒤 사복시정 (司僕寺正)에 올라 연산군의 폭정으로 간관(諫官)들이 거의 다 쫓겨날 때 파직당했다. 중종반정 후에 복직, 상주목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지어 그의 공덕을 추모했다. 공조판서, 이조판서를 지내고 도승지를 3번, 대사간을 4번, 경상, 전라, 충청, 함경도 관찰사를 지내고 우참찬에 이르렀다. 1517년(중종 12)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자신의 정치경력을 피력한‘오조상소(五條上疏)’는 지금도 전해진다.

손중돈의 현손(玄孫) 손종로는 무과에 급제했으나 광해 10년 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 부모를 모시며 농사를 지었다. 인조 20년 남포현감이 되었다가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이천에서 경상좌도병마절도사 허완의 휘하에 들어가 쌍령싸움에서 전사했다.

현대 인물은 손정규(한성여자사범학교교장), 손제석(문교부장관), 손열호 동양석판회장, 우석문화재단이사장), 손정수 흥창물산사장), 손진곤(판사), 손석기(대구매일신문논설위원), 손경호(경주상공회의소회장), 손동만(경북도교육위원), 손진원(대유산업 회장), 손도익(경동탄광회장), 손가호(대구방송국차장), 손현수(대현실업 회장), 손장익(안동대교수), 손호윤(재무부생명보험과장), 손장호(동작구부구청장), 손복조(구일산업 회장), 손승목(경북도교위학무국장), 손술곤(동민산업 회장), 손선익(왕표회장), 손진창(명성사장), 손삼곤(경북농촌진흥원장), 손태호(조흥은행경주지점장), 손영을(전매청장), 손경수(농협중앙회국제부장), 손태준(경북대의대학장), 손만호(대구상고교장), 손장락(의학박사, 손의원장), 손정목(법학박사, 서울시립대대학원장), 손승원(손정형외과의원장), 손희원(육군준장), 손위익(손위익산부인과원장), 손진수(해군준장), 손장호(손장호치과의원장), 손봉호(철학박사, 서울대교수), 손일수(신영치과의원장), 손성수(부산지검집행과장), 손특익(대원외국어여고교장), 손인수(서울진선여중고교장), 손홍익(부산지법부장판사), 손우익(시인), 손동하(울산중고재단이사장), 손인호(경남대교수), 손정호(한국법령편찬회장), 손종락(경북대교수), 손정익(칠성제화.칠성목재 사장), 선석락(대구교대교수), 손영규(안동대교수), 손경옥(경진직물 사장), 손우익(경북대교수), 손병태(한의원장), 손정락(전북대교수), 손홍락(삼덕물산 부사장), 손문호(청주사대교수), 손수달(광명전기 사장), 손병회(체신부과장), 손진익(한국산노프코 사장), 손동진(화가, 서울대교수), 손승철(강원대교수), 손관익(덕일보육원장), 손석호(중앙선관위기획관리실장), 손순천(의학박사, 병원장), 손승익(상주사벌고교장), 손성목(서울시건설국장), 손광수(광영교육재단설립자.교장), 손중호(삼창물산 사장), 손중호(조흥은행지점장), 손윤목(국회보사전문위원), 손익곤(풍창산업 사장), 손창호(세무서장), 손진인(재일실업가), 손종수(예천군수), 손홍균(서울신탁은행전무), 손기락(금성사부사장), 손용민(문학박사, 화와이대교수)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본관 경주는 경북 경주시의 지명이다. 기원 전 57년에 6촌(六村)이 연합하여 고대국가를 형성했다. 65년(신라 탈해왕 9) 시림(始林)에서 김씨 시조가 탄생하여 국호를 계림(鷄林)으로 칭하기도 했다. 307년에 최초로 국호를 신라로 하였다. 935년(고려 태조 18) 경순왕이 왕건에 항복하자 경주로 개칭하고 식읍을 주었으며 비로소 처음으로 경주라는 명칭이 생겼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개칭했다. 1895년(고종 32) 경주군이 되었고,1955년 경주시로 승격했으며, 경주군은 월성군으로 개칭되었다. 1989년에는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개칭되었다. 경주 본관 성씨는 강(姜), 고(高), 공(孔), 곽(郭), 권(權), 기(奇), 길(吉), 김씨(金), 나(羅), 남(南), 노(盧), 노(魯), 도(都), 류(柳), 민(閔), 박(朴), 방(方), 배(裵), 백(白), 변(卞), 봉(鳳), 빙(), 서(徐), 석(石), 석(昔), 설(薛), 설(), 섭(葉), 성(成), 손(孫), 신(申), 신(辛), 심(沈), 안(安), 양(梁), 염(廉), 엽(葉), 영(永), 오(吳), 우(禹), 원(元), 유(劉), 유(兪), 윤(尹), 이(李), 임(林), 장(張), 전(全), 정(鄭), 정(程), 조(趙), 주(朱), 주(周), 지(池), 진(陳), 차(車), 채(蔡), 천(千), 최(崔), 추(秋), 편(片), 하(河), 한(韓), 함(咸), 허(許), 현(玄), 홍(洪), 황(黃) 등이다.

집성촌은 경북 경주시 강동면 인동리, 경북 경주시 강동면 단구리,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경북 예천군 용문면 일원, 경북 군위군 효령면 내리리, 경북 군위군 소보면 송원리, 경북 상주시 공성면 거창리, 경북 문경시 동로면 마광리 등이다.

경북 경주시 북쪽의 설창산이 둘러싸고 있는 강동면 양동리에는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대종가가 있다. 이 마을은 5백여 년 동안 전통을 잇는 유서 깊은 반촌마을이다. 입향조는 경주손씨 중흥조인 손 소이다. 원래 양동리는 풍덕유씨(豊德柳氏)가 살던 곳이다. 손 소가 25세 때 이곳 유씨 집안의 딸과 결혼하면서 이 부락에 터를 잡은 것이다. 손 소는 5남 3녀를 두어 경주손씨의 숲을 이룬다.

그의 둘째 아들이 조선 명현의 한 사람으로 청백리에 오른 우재(愚齋) 손중돈이다. 여기에 손중돈의 여동생 손씨부인이 여주이씨(여강이씨) 이 번과 결혼,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중 장남이 이언적이다. 이래서 양동은 경주손씨와 여강이씨의 전통적인 토성마을이 됐다. 한 때 이곳은 149가구 중 경주손씨가 35가구 80여 명, 여강이씨가 88가구 268명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도 양동마을은 경주손씨와 여강이씨가 함께 오손도손 살아가고 있다. 이 마을은 1984년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항렬자는 24世 흥(興), 25世 한(漢), 26世 신(新), 27世 철(哲), 28世 계(啓), 29世 영(榮), 30世 순(舜), 31世 민(敏), 32世 유(柳) 이다. 주요파는 종파, 낙선당파, 석당공파, 수운정파, 사호파, 중훈공파, 안락당파, 망숙공파, 유곡공파, 어은공파, 영천생원공파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61명이 있다. 문과 21명, 무과 4명, 사마시 36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경주손씨는 1985년에는 총 19,462가구 81,560명, 2000년에는 총 24,830가구 78,45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가구 수는 5천 가구 가량 늘었다. 반면 인구는 오히려 3천 명 가량이 줄었다. 조사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3444명, 부산 9243명, 대구 8892명, 인천 1410명, 경기 5980명, 강원 4351명, 충북 2222명, 충남 2200명, 전북 912명, 전남 2405명, 경북 22891명, 경남 7370명, 제주 230명이다. 경북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1,289명, 부산 8,502명, 대구 10,625명, 인천 2,249명, 광주 165명, 대전 884명, 울산 5,220명, 경기 10,090명, 강원 3,116명, 충북 2,007명, 충남 1,022명, 전북 348명, 전남 532명, 경북 19,032명, 경남 3,255명, 제주 114명이다. 대구, 경북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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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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