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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고성 이씨(固城李氏)-84,383명
(92)고성 이씨(固城李氏)-84,383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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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이 황(李璜)의 선대는 중국 한나라 사람이다. 한무제 때 중서사인이었던 이 반이 군사를 이끌고 우리나라에 온 뒤 눌러 살게 되었다. 이 황은 그 후손으로 24세손이다. 이 황은 고려 덕종 때 문과에 올라 이부상서에 이르고 고성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고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한편 철성(鐵城)은 고성의 옛 이름이다. 따라서 철성을 본관으로 하는 철성이씨(鐵城李氏)도 고성이씨와 같은 뿌리다. 고성은 경상남도 고성군의 지명이다. 경남 고성군 회화면 봉덕리의 금봉제에서 음력 10월 3일에 제향한다.

6세손인 이 진은 고려 고종 때 사람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학사가 되었다. 이존비는 원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판밀직사사를 지냈다. 이 우(李瑀)는 충숙왕 때 사람으로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문장과 덕행이 높아 후에 철성부원군에 봉해졌다. 충선왕 때의 이 암은 1313년 문과에 급제, 찬성사를 거쳐 좌정승)이 되었고 공민왕 때의 이 림은 문하시중을 지냈다.

조선시대의 이 근은 판중추부사, 이 원(李原)은 좌의정, 이 육(李陸)은 병조참판을 지냈다. 중종 때의 이 택(李澤)은 예조판서, 이성길은 호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이 괄의 난’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진 이 괄은 고성이씨 후손이다. 그는 무과에 급제하고 선조 때 형조좌랑. 태안군수를 역임했다. 광해군 14년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부임하기 직전 인조반정에 가담했다. 후금과 분쟁이 잦자 평안도 병마절도사 겸 부원수로 발탁되어 영변에 출진, 성책을 쌓고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등 국경 경비에 힘썼다.

그러나 인조 2년 아들 이 전이 일부 지식층과 교유하며 공신들의 횡포를 개탄한 사실이 과장되어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무고를 받는다. 이에 공신들의 제거를 이유로 난을 일으킨다. 막강한 군대와 탁월한 작전으로 관군을 격파하고 흥안군을 왕으로 추대까지 했다. 그러나 다음날 장만이 거느린 관군에게 참패한다. 그 뒤 이천으로 도망갔으나 부하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 기는 유형원, 정약용 등의 학통을 계승한 실학자다. 1905년 동경에 가서 천황과 정계의 요인들에게 일본의 한국 침략을 규탄했다. 장지연 등과 대한자강회를 조직하여 민중계몽과 항일운동을 했다. 1907년 결사대 자신회(自新會)를 조직, 을사5적의 암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이교연(1413 癸巳生) : 문과(文科) 세종24년(1442) 친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이육(李陸, 1438 戊午生) : 문과(文科) 세조10년(1464) 춘당대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이여(1484 甲辰生) : 문과(文科) 중종5년(1510)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주(李胄, 1484 甲辰生) : 문과(文科) 성종19년(1488) 별시 이등(二等), 이찬(李澯, 1498 戊午生) : 문과(文科) 중종18년(1523) 알성시 병과(丙科), 이후영(李後榮, 1649 己丑生) : 문과(文科) 숙종10년(1684) 식년시 병과(丙科), 이순선(李舜善, 1807 丁卯生) : 문과(文科) 헌종12년(1846) 식년시 병과(丙科), 이성길(李成吉, 1561 辛酉生) : 문과(文科) 선조22년(1589) 증광시 병과(丙科), 이수(李邃, 1577 丁丑生) : 문과(文科) 선조39년(1606) 식년시 병과(丙科), 이시항(李時沆, 1690 庚午生) : 문과(文科) 경종1년(1721)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169명이 있다. 문과 38명, 무과 18명, 사마시 111명, 역과 1명, 음양과 1명이다.

현대 인물은 이진희(문화방송사장, 문공부장관), 이기백(육군대장, 국방부장관), 이수정(대통령정무제1비서관, 문화방송전무이사), 이석제(총무처장관, 감사원장), 이동화(육군중장, 철도청장), 이행원(한국일보편집위원), 이재선(서울시부교육감), 이만용(상공부통상진흥국장), 이경(국회의원), 이양호(국회의원), 이종왕(대구시장), 이두화(고려대교수), 이상기(영남대교수), 이재현(가톨릭의대교수), 이병현(의학박사, 연세대교수), 이병희(대구서구청장), 이보형(제일은행장), 이승건(대구운수사장), 이영기(검사장), 이종간(해군소장, 대한조선협회이사장), 이종성(경북도교육위원), 이종익(신구전문대학장), 이지형(육군준장, 뉴서울관광사장), 이기웅(충청은행장), 이민규(심계원감사관), 이성화(철학박사), 이도선(수원간호전문대학장), 이지열(전주교대학장), 이기화(서울대사범대교수), 이상희(민의원), 이기화(한국일보이사), 이종만(동아대교수), 이형기(부산대사범대학장), 이기현(명지대교수), 이웅열(중도일보사장), 이양기(영남대교수), 이호규(구미공전교장), 이기준(서울대교수), 이한동(국회의원, 내무부장관), 이기석(소년한국일보사장), 이기흥(방송광고공사전무), 이진구(진주교대교수), 이형규(부산대공대학장), 이승관(부장검사), 이영식(중앙일보국장), 이재호(변호사), 이보형(제일은행장), 이영진(국회의원), 이유입(민족사학자), 이송준(부산동양관광호텔사장), 이영창(치안본부장), 이석건(충남대교수), 이덕곤(육군준장), 이종배(대전병무청장), 이한조(경기일보업무이사), 이승영(안국화재보험부사장), 이병희(영덕군수), 이공빈(의학박사), 이석희(교도소장), 이승곤(외무부이사관), 이인섭(한일합섬전무), 이진형(한국과학기술대교수), 이수형(한국과학기술대교수), 이삼현(국민대교수), 이익환(연세대교수), 이기서(광운공대교수), 이승흥(동대문소방서장), 이현석(양곡가공협회중앙회부회장), 이승계(변호사), 이종백(검사), 이승구(검사), 이정현(부산동래상업고등학교, 부린학원이사장), 이성철(중앙일보부장), 이기영(고교교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이 황을 1세조로 하는 도촌공파의 항렬자는 24世 선(宣) ○ ○춘(春), 25世 ○증(曾) 득(得)○,26世 하(夏)○ ○도(道), 27世 ○인(寅) 행(行)○,28世 종(種)○,29世 ○열(烈), 30世 기(基)○, 31世 ○호(鎬), 32世 한(漢)○, 33世 ○모(模), 34世 희(熙)○, 35世 ○재(在), 36世 용(鎔)○, 37世 ○영(永), 38世 근(根)○, 39世 ○연(煙)이다.

호군공파는 24世 혁(赫)○ 시(時)○,25世 재(栽)○ ○언(彦), 26世 현(鉉)○,27世 ○원(原), 28世 동(東)○,29世 ○열(烈), 30世 기(基)○, 31世 ○흠(欽) ○호(鎬), 32世 영(泳)○ 영(永)○, 33世 ○환(桓) ○근(根), 34世 형(炯)○ 경(炅)○, 35世 ○균(均) ○규(圭), 36世 강(綱)○ 종(鍾)○, 37世 ○수(洙) ○구(求), 38世 영(榮)○ 계(桂)○, 39世 ○희(熙) ○휴(烋)이다. 주요파는 안정공파, 둔재공파, 호군공파, 좌윤공파, 동추공파, 병사공파, 참판공파, 사암공파, 도촌공파, 은암공파 등이다.

본관 고성은 경상남도 고성군의 지명이다. 변한시대에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 또는 고사포국(古史浦國)이었다. 737년(신라 효성왕 1)에 신라에 흡수되어 고자군(古自郡)으로 불리우다가,757년(경덕왕 16)에 고성군(固城郡)으로 바뀌었다. 995년(고려 성종 14)에는 고주(固州)로 확장되었고 후에 철성부(鐵城府)로 승격되었다가,1018년(현종 9) 고성현으로 강등되었다. 1896년 13도제 실시로 경상남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용남군의 동해면이 편입되었다. 고성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고성고씨(固城高氏), 고성김씨(固城金氏), 고성남씨(固城南氏), 고성도씨(固城道氏), 고성박씨(固城朴氏), 고성오씨(固城吳氏), 고성이씨(固城李氏), 고성장씨(固城張氏), 고성정씨(固城鄭氏), 고성제씨(固城諸氏), 고성최씨(固城崔氏) 등이다.

집성촌은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하저리,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증거리,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봉서리, 충남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 전남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 경북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경북 청도군 매전면 하평리, 경북 청도군 금천면 김전리,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방지리, 경북 청도군 금천면 동곡리, 경북 성주군 금수면 광산리, 경남 고성군 동해면 외곡리, 경남 사천시 사남면 사촌리,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가산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고성이씨는 1985년에는 총 17,571가구 71,910명, 2000년에는 총 26,286가구 84,38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9천여 가구,1만3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4,258명, 부산 10,215명, 대구 7,453명, 인천 2,137명, 경기 7,291명, 강원 1,149명, 충북 1,663명, 충남 4,218명, 전북 1,037명, 전남 2,309명, 경북 9,194명, 경남 9,953명, 제주 1,033명이다. 부산, 경남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4,633명, 부산 11,874명, 대구 8,829명, 인천 3,429명, 광주 1,057명, 대전 2,803명, 울산 2,130명, 경기 13,382명, 강원 1,062명, 충북 1,829명, 충남 2,112명, 전북 944명, 전남 1,207명, 경북 7,752명, 경남 1,0162명, 제주 1,178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부산, 경남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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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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