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초계 정씨(草溪鄭氏)-93,586명
(88)초계 정씨(草溪鄭氏)-93,586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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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정배걸(鄭倍傑)은 1017년(현종 8)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예부상서와 중추원사를 지냈다. 그는 초계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성장한 뒤 초계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초계를 본관으로 삼았다. 초계는 경남 합천군 초계면의 지명이다.

정배걸은 개인 서당을 열어 많은 제자를 가르치며 문종 이후 개경의 12사학 중 하나인 홍문공도(弘文公徒)를 이루었다. 홍문공도는 12공도 중 문헌공도(文憲公徒)와 함께 후진양성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정배걸 이후 초계정씨는 내급사공파(內給事公派), 천호장공파(千戶長公派),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박사공파(博士公派),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등 5개 파로 나누어진다. 정배걸의 아들 정문(鄭文)은 예종 때 형부상서와 정당문학 등을 지내며 문명을 날렸다.

정배걸의 4세손 정 영(鄭榮)은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를 지냈고 후손은 내급사공파라 부른다. 정윤기(鄭允祺)는 이부상서를 지냈으며 고려가 멸망하자 남으로 망명하여 후손들이 해남파가 되었다. 정윤기(鄭允耆)는 대제학을 지냈으며 대제학공파의 중조(中祖)가 되었다.

우참찬 정 화는 158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고 1587년 감찰, 형조좌랑을 거쳐 1593년 광주판관을 지냈다. 왜군을 격퇴한 공으로 중화부사(中和府使)가 되었다. 그 후 대사간,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뒤 1617년 폐모론이 일어나자 자원하여 양양부사로 나갔다가 1년 만에 사퇴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대사성(大使成) 겸 동지경연(同知經筵)이 되었고 대사헌, 우참찬 등을 지냈다.

이조참판 정 온(鄭蘊)은 성품이 곧고 절개가 높기로 유명하다. 진사 정유명의 아들로 광해군 때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사서, 정언 등을 거쳐 부사직에 올랐다. 그러나 광해군의 비위에 거슬려 제주도에 10년 동안이나 귀양살이를 한다. 유배생활 중에 ‘망북두시(望北斗詩)’‘망백운가(望白雲歌)’를 지었다. 그 뒤 인조반정으로 풀려나와 경상도 관찰사, 부제학 등을 역임하고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김상헌 등과 함께 척화(斥和)를 주장했으나 마침내 화의가 성립되자 벼슬을 버리고 덕유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였다. 정 온은 자신의 스승인 정인홍이 대북파(大北派)의 권신(權臣)이 되자 절교한다. 그러나 정인홍이 참형을 당하자 아무도 돌보지 않는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 주었다.

정윤영(1833~1898)은 1881년 영남, 경기, 강원, 충청, 전라 등 전국에서 전개된 신사척사운동‘척화만인소’를 작성하는 등 척사론을 주도한 핵심인물이다.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서 초계정씨 만주공파 후손으로 태어난 그는 당시 경기도를 대표하는 유학자였다. 그는 예리한 현실 인식과 뛰어난 문장으로 척사운동의 배후에서 상소문의 기초부터 마무리까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가 제시한‘의만언봉사(擬萬言封事)’22조는 당론, 지역색, 문벌 등에 의한 인재 등용의 차별을 비판하고 널리 인재를 발탁하여 쓸 것을 역설했다. 당시 보수 유림으로서는 파격적인 시무개혁론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대 인물인 정재동 씨는 미국 보스턴 뉴잉글랜드음악원 지휘과를 졸업, 서울합창단, 국립오페라단 지휘자를 지내고 서울시향 상임지휘자, 중앙대음대교수를 역임했다. 그 밖에 현대 인물은 정균식(국회의원), 정우식(국회의원), 정연기(전북지사), 정종철(경남지사), 정기순(석유공사이사), 정담진(의학박사), 정덕균(변호사), 정순동(진주농대교수), 정순경(의학박사, 고려연합병원장), 정종화(건국대교수), 정종구(농학박사, 동국대교수), 정종욱(언론인), 정도순(외무부통상국장), 정백순(야촌상사 사장), 정연규(일본 조일신문 기자), 정종선(공학박사), 정현복(서예가), 정현학(송설매사장), 정순오(정산부인과병원장), 정순만(정형외과병원장), 정을영(기상대예보국장), 정을관(의학박사, 왕산의료재단이사), 정용태(법학박사, 청주대교수), 정도영(왕산병원장), 정좌구(동산병원산부인과장), 정현립(경영학박사, 숭전대교수), 정현백(철학박사, 성균관대교수), 정용운(이학박사, 미국미시간대교수), 정석헌(초계정씨대종회장), 정만홍(의학박사), 정재명(의학박사), 정경섭(충북대교수), 정재경(소장), 정성흠(변호사), 정갑섭(대구형무소장), 정봉구(충북대농대교수), 정기섭(천안경찰서장), 정인복(국립광업연구소장), 정인승(쌍용제지주식회사 회장), 정인악(남양대표이사), 정민수(서울지검검사), 정재춘(한양대교수), 정세구(서울사대교수), 정효종(한양대교수), 정병학(숙명여대대학원장), 정인균(소장, 사단장), 정수영(고려대교수), 정성균(부장판사), 정연순(대한무역진흥공사 프랑크푸르트무역관장), 정덕상(동양화가), 정병대(경찰서장), 정명시(강릉상고교장), 정만철(대관령감자원종장장), 정근영(초등교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정문익(鄭文翼,1571 辛未生) : 문과(文科) 광해군 3년(1611)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시망(鄭時望,1586 丙戌生) : 문과(文科) 인조8년(1630)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계주(鄭啓周, 1706 丙戌生) : 문과(文科) 영조 16년(1740)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종영 (鄭宗榮, 1513 癸酉生) : 문과(文科) 중종 38년(1543) 식년시 병과(丙科), 정덕기(鄭德麒, 1556 丙辰生) : 문과(文科) 선 조9년(1576) 식년시 병과(丙科), 정원석(鄭元奭, 1585 乙酉生) : 문과(文科) 인조 5년(1627) 정시3 병과(丙科), 정창주(鄭昌, 1606 丙午生) : 문과(文科) 인조 15년(1637) 정시 병과(丙科), 정창주(鄭昌, 1606 丙午生) : 문과(文科) 인조 24년(1646) 중시 병과(丙科), 정명겸(鄭鳴謙, 1601 辛丑生) : 문과(文科) 인조 26년(1648) 식년시 을과(乙科), 정위주(鄭緯柱, 1713 癸巳生) : 문과(文科) 영조 29년(1753) 식년시 을과(乙科) 등 모두 289명이 있다. 분야별로는 문과 58명, 무과 27명, 사마시 203명, 음양과 1명 등이다.

집성촌은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 충북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미남리, 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금리, 경남 합천군 쌍백면 육리,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풍계리,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와룡리, 경북 경산시 남천면 협석리, 경남 합천군 쌍백면 평구리, 전남 곡성군 삼기면 월경리,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일원 등이다.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도 집성촌이다. 이곳에 처음 뿌리를 내린 인물은 약 450년 전 정배걸의 18세손인 정호(鄭湖)이다. 현재 이곳에는 32대손 6가구가 18대 정호로부터 15대째 세거하고 있다.

본관 초계(草溪)는 현재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지역이다. 신라 때는 초팔혜현(草八兮縣)이라 불리었고,757년(신라 경덕왕 16) 팔계로 고쳐 강양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고려 태조 23) 초계로 명칭을 고쳤고, 1334년(고려 충숙왕 3)에는 초계현이 군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합천군 초계면이 되었다. 초계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초계김씨(草溪金氏), 초계변씨(草溪卞氏), 초계정씨(草溪鄭氏), 초계주씨(草溪周氏), 초계최씨(草溪崔氏) 등이 있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초계정씨는 1985년에는 총 20,215가구 83,311명, 2000년에는 총 29,264가구 93,58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9천여 가구,1만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8628명, 부산 10320명, 대구 4626명, 인천 2535명, 경기 10031명, 강원 7671명, 충북 4462명, 충남 1630명, 전북 2055명, 전남 4041명, 경북 3466명, 경남 13770명, 제주 76명이다. 초계 본관이 있는 경남, 그리고 부산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8,502명, 부산 11,440명, 대구 5,847명, 인천 4,043명, 광주 1,840명, 대전 1,178명, 울산 1,883명, 경기 17,769명, 강원 6,351명, 충북 4,113명, 충남 1,402명, 전북 1,458명, 전남 1,717명, 경북 3,764명, 경남 12,142명, 제주 137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경남, 부산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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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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