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기사 (152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32)창원 황씨(昌原黃氏)-252,814명 창원황씨는 1세조를 달리하는 8개 파가 있다. 이 가운데 황충준(黃忠俊)을 시조로 하는 시중공파(侍中公派), 그리고 충혜왕 때부터 공민왕 때까지 5대에 걸쳐 벼슬을 한 황석기(黃石奇)의 회산군파가 대표적이다.시중공(侍中公)계의 시조 황충준은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토황(土黃)으로도 불리운다. 1세조 황신의 아들 황거정이 조선개국 공신이 되어 가문의 기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25 14:53 (31)의성 김씨(義城金氏)-253,309명 시조 김 석(金錫)은 신라 경순왕의 아들이며 고려 태조 왕 건의 외손으로 의성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의성을 본관으로 했다. 의성은 경상북도 의성군의 지명이다. 의성김씨는 후손 김용비(金龍庇), 김용필(金龍弼), 김용주(金龍珠) 형제 대에 이르러 파가 갈린다.의성김씨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김안국이다. 그는 김굉필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연산군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25 14:50 (30)함안 조씨(咸安趙氏)-259,196명 (30)함안 조씨(咸安趙氏)-259,196명 시조 조 정(趙鼎)은 중국 사람으로 신라 말기에 두 아우를 데리고 우리나라에 왔다. 그 뒤 고려 통일에 큰 공을 세워 대장군이 되었다. 시조의 후손들이 함안에 터를 잡고 살면서 함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함안은 경상남도 함안군의 지명이다. 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인 조안경은 고려 충정왕 때 호조전서를 지냈으나 조선이 개국한 후 관직을 떠나 해주에 은거했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07 15:56 (29)밀양 손씨(密陽孫氏)-274,665명 시조 손 순(孫順)은 신라 개국 당시 6부촌장의 한 사람인 대수촌장 구례마의 후손이다. 구례마가 신라 유리왕 때 손씨로 사성(賜姓)되면서 손씨가 시작된다. 그 뒤 후손 손 순은 5명의 손자를 둔다.그 중 3명이 각각 밀양군, 평해군, 경주군에 봉해지면서 각각 밀양손씨, 평해손씨, 경주손씨로 분관된다. 그리고 손순의 둘째 아들인 손 수의 후손은 청주손씨가 된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07 15:53 (28)문화 류씨(文化柳氏)-284,083명 시조 류차달(柳車達)은 후삼국 통일전쟁 당시 유주(儒州, 문화의 당시 이름)의 호족이었다. 이곳은 현재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 묵방동이다. 왕건이 후백제군을 정벌할 때 류차달이 수레와 군량을 보급하여 큰 공을 세워 삼한공신이 된다.문간공(文簡公) 류공권(7세손)이 고려 명종 때 정당문학과 참지정사 등을 지내고 문장과 글씨로 명성을 떨쳤다. 그의 아들 류언침과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07 15:50 (27)경주 정씨(慶州鄭氏)-303,443명 시조 지백호(智伯虎)는 신라 초기 6부 가운데 진지촌(珍支村)의 촌장이다.박혁거세를 왕으로 옹립한 공으로 유리왕 때 지백호의 5세손 동충이 정(鄭) 씨로 사성(賜姓)되었다. 따라서 경주정씨는 지백호를 1세조로 한다. 신라 말엽 청해진(전남 완도)을 근거로 동아시아의 해상 무역권을 독점했던 장보고의 동지 정 년(鄭年)은 경주정씨 후손이다. 그는 젊어서 단짝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07 15:46 (26)한양 조씨(漢陽趙氏)-307,746명 시조 조지수(趙之壽)는 고려 중엽에 조순대부 첨의중서사를 지냈다. 그 후 후손들이 조선 개국 때 한성(현재의 서울)으로 옮겨 가세가 크게 번영하였고,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그래서 후손들이 한양을 본관으로 했다.고려시대에 시조 조지수의 외아들인 조 휘는 고려 고종 45년(1258) 원(몽고)의 쌍성총관부 초대 쌍성총관을 지냈다. 조 휘의 아들 조양기는 13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07 15:43 (25)수원 백씨(水原白氏)-316,535명 시조 백우경(白宇經)은 당나라 때 중국 소주 사람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간신들의 모함을 받고 신라에 망명하였다. 1세조는 신라 경명왕 때 중랑장을 지낸 백창직이다. 그 뒤 고려 목종 때 백 휘가 수원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수원을 본관으로 삼았다. 백 길은 신라 경순왕 때 교위를 지냈으며 고려 태조 때에는 광평시랑을 역임했다. 그의 동생 백 탁은 고려 태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07 15:37 (24)제주 고씨(濟州高氏)-325,950명 시조 고을나(高乙那)는 널리 알려진 삼성혈 전설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우리나라 고씨는 모두 탐라국 고을나왕의 후손으로 한집안 한 핏줄을 자랑한다. 고씨를 세분하면 성주공파, 전서공파, 영곡공파, 문충공파, 장흥백파, 화전군파, 문정공파, 상당군파, 양경공파 등 아홉 개의 종파가 있다. 그러나 모두 고을나왕의 후손이기 때문에 고씨끼리는 종씨라고 하지 않고 일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07 15:34 (23)창녕 조씨(昌寧曺氏)-338,222명 시조 조계룡(曺繼龍)은 신라 진평왕의 사위이다. 그의 어머니는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으로 조계룡의 출생에 대한 전설이 전해온다. 예향은 창녕현 고암촌 태생으로 그녀가 혼기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복중에 병이 생겼다. 그녀는 화왕산 용지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올리니 신기하게 병이 완쾌되었다. 그런데 몸에 태기가 있었다.어느 날 밤 꿈에 한 남자가 나타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07 15:30 (22)남양 홍씨(南陽洪氏)-379,708명 남양홍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당홍(唐洪)과 토홍(土洪)이 있다. 당홍은 고구려 때 당나라에서 귀화한 홍학사의 후예 홍은열(洪殷悅)이다. 토홍은 고려 고종 때 금오위별장을 지낸 홍선행(洪先幸)의 후손이다. 당홍의 시조 선대는 고구려 27대 왕인 영유왕 때 당나라에서 8학사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신라 27대 왕인 선덕여왕 때 유학의 발전에 공을 세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07 15:24 (21)남평 문씨(南平文氏)-380,530명 시조 문다성(文多省)은 신라 자비왕 때 공을 세워 남평백에 봉해졌다. 1세조는 고려 숙종 때 서북면지병마사를 지내고 남평군에 봉해진 문 익(文翼)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남평을 본관으로 삼았다. 남평은 전남 나주시 남평읍의 지명이다. 전남 나주군 남평면에 장자지라는 연못과 6미터쯤 되는 바위가 있다. 바위 위에‘문암’이라는 비석을 세워 놓아 문씨 시조의 탄생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8-07 15:16 (20)전주 최씨(全州崔氏)-392,548명 (20)전주 최씨(全州崔氏)-392,548명 전주최씨는 4파로 갈라져 있다. ▲문열공파(文烈公派) 최순작(崔純爵)은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 신호위 상장군 완주백에 오른다. 완주는 전주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전주를 본관으로 했다. 고려시대에 최 숭은 예부상서를 지냈다. 최남부는 문종 때 태학 겸 대장군을 역임했으며 전주백에 봉해졌다. 조선시대에 최유경은 판한성부사를 지냈으며 청백리에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21 17:14 (19)해주 오씨(海州吳氏)-422,735명 시조 오인유(吳仁裕)는 중국 송나라 사람이다. 고려에 귀의해 성종 때 군기감을 지냈다. 시조가 해주에 터를 잡으면서 후손들이 해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한편 본관은 같으나 시조를 달리하는 또 한 파의 해주오씨가 있다. 이들은 고려 고종 때 거란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해주군에 봉해진 오현보(吳賢輔)의 후손들이다. 오현보는 신라 지증왕 때 중국에서 건너 온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21 17:10 (18)안동 김씨(安東金氏)(구파)-425,264명 시조 김숙승(金叔承)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둘째 아들로 공부시랑, 평장사를 지냈다. 중시조(1세) 김방경(金方慶, 충렬공)은 경순왕의 9세손이다. 김방경의 향사는 음력 10월 9일에 한다. 한편 본관이 같으면서도 김숙승을 시조로 하는 계통을 안동김씨 구파,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계통을 안동김씨 신파로 구분한다.안동김씨 구파는 김방경 이후 가문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21 17:07 (17)달성 서씨(達城徐氏)-429,353명 시조 서 진(徐晋)은 고려 때 봉익대부 판도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 서기준과 손자 서 영에 이르기까지 3대가 달성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대대로 달성에 살면서 달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에 있다.시조의 증손 서균형은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제하여 간관(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21 17:03 (16)동래 정씨(東萊鄭氏)-442,363명 우리나라 정씨는 대부분 신라 6부촌의 진지촌장 지백호(智白虎)의 후손이다. 신라 유리왕 때 지백호가 정씨로 사성(賜姓)된 것이 정씨의 시작이다. 동래정씨의 시조 정회문(鄭繪文)은 고려 때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냈다. 1세조는 고려 때 호장을 지낸 정지원(鄭之遠)이다. 그 후 안일호장을 지낸 정문도(鄭文道)를 중시조로 한다. 후손들이 동래에 터를 잡으면서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21 16:56 (15)순흥 안씨(順興安氏)-468,827명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고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되었다. 그 뒤 후손들이 순흥현에 살면서 본관을 순흥으로 했다. 순흥은 경북 영주군 순흥면의 지명이다. 시조의 묘는 당초 경북 영주군 순흥면에 있었으나 중간에 없어졌다. 현재는 제단을 설치하여 매년 음력 10월 1일에 향사한다.시조 안자미의 아들 안영유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21 00:42 (14)평산 신씨(平山申氏)-496,874명 시조 신숭겸(申崇謙)의 처음 이름은 삼능산(三能山)이며 전라도 곡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궁예가 세운 나라인 태봉의 기장(騎將, 기마병의 장수)으로 있었다. 그러나 궁예의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당시 동료 기장들과 만나 궁예를 추출하기로 했다. 이들은 밤에 왕 건의 집에 가서 고하기를 “지금 임금이 정사를 참람히 하고 형벌을 함부로 하여 처자를 죽이고 신하들을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21 00:39 (13)김녕 김씨(金寧金氏)-513,015명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신라 경순왕의 8세손이며 신라김씨의 원조 대보공 김알지의 35세손이다. 그는 고려 인종 때 평장사에 이르렀으며 김녕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김녕을 본관으로 삼았다. 김녕은 김해의 옛 이름이다. 김녕김씨(金寧金氏)는 금녕김씨(金寧金氏)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자인 金은 쇠금(金), 혹은 성김(金)으로 쓰이기 때문이다.한편 가라국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21 00:36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678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