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기사 (152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92)고성 이씨(固城李氏)-84,383명 시조 이 황(李璜)의 선대는 중국 한나라 사람이다. 한무제 때 중서사인이었던 이 반이 군사를 이끌고 우리나라에 온 뒤 눌러 살게 되었다. 이 황은 그 후손으로 24세손이다. 이 황은 고려 덕종 때 문과에 올라 이부상서에 이르고 고성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고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한편 철성(鐵城)은 고성의 옛 이름이다. 따라서 철성을 본관으로 하는 철성이씨(鐵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7:12 (91)순천 박씨(順天朴氏)-87,631명 시조 박영규(朴英規)는 고려 개국공신이다. 그의 후손 박란봉(朴蘭鳳)이 순천부원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순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는 원래 순천 사람으로 견 훤의 사위다. 그는 견훤이 아들 신검과의 불화로 고려 왕 건에게 도피하자 고려에 귀순하여 공을 세운다. 그 뒤 박영규는 왕 건과 사돈을 맺는다. 큰 딸은 태조의 동산원부인(東山院夫人)이 되었고 나머지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7:03 (90)성주 배씨(星州裵氏)-90,239명 성산(星山)과 성주(星州)는 같은 지명이다. 따라서 성주배씨와 성산배씨는 뿌리가 같다. 그러나 지금도 본관을 성주와 성산으로 각각 쓰고 있다. 시조 배위준(裵位俊)은 배현경(裵玄慶)의 후손으로 고려조에 삼중대광벽상공신에 올랐다. 본관을 성주로 정한 것은 그의 현손 배인경이 고려 원종 때 흥안(성산의 옛이름)군에 봉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조에 성산군에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59 (89)벽진 이씨(碧珍李氏)-91,907명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 벽진(碧珍)장군 이총언(李悤言)이다. 그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태조는 그를 고려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벽진장군에 봉하고‘백자천손 대대로 이 마음을 길이 간직하자’는 친서를 보냈다.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벽진으로 하였다. 벽진은 경북 성주군 벽진면의 지명이다. 매년 10월 3일 경북 성주군 벽진면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57 (88)초계 정씨(草溪鄭氏)-93,586명 시조 정배걸(鄭倍傑)은 1017년(현종 8)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예부상서와 중추원사를 지냈다. 그는 초계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성장한 뒤 초계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초계를 본관으로 삼았다. 초계는 경남 합천군 초계면의 지명이다.정배걸은 개인 서당을 열어 많은 제자를 가르치며 문종 이후 개경의 12사학 중 하나인 홍문공도(弘文公徒)를 이루었다. 홍문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55 (87)나주 정씨(羅州鄭氏)-93,845명 나주정씨(羅州鄭氏)의 시조 정해(鄭諧)는 고려 중엽 때 사람이다. 그의 증손 정가신(鄭可臣, 1224~1298)이 고려 고종 때 문과에 올라 수사도(守司徒)를 지낸 뒤 군기감에 추증되었다. 그 뒤 후손들이 나주에 정착하면서 나주를 본관으로 삼았다.정가신(鄭可臣)은 나주 사람으로 자는 남헌, 호는 설재(雪齋),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그는 전남 나주시 동강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53 (86)청풍 김씨(淸風金氏)-94,468명 시조 김대유(金大猷)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인 김순웅의 12세손이다. 김대유가 고려 말에 문하시중을 지내고 청성(淸城,청풍의 별호)부원군에 추봉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청풍으로 하였다. 시조의 묘소는 충북 제천시 수산면 도전리에 있다.조선 중종 때 성리학자 김 식은 청풍김씨가 배출한 인물이다. 당시는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신진사류들이 정치개혁을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50 (85)영천 이씨(永川李氏)-94,491명 영천이씨(永川李氏)는 한문 본관이 다른 또 다른 영천이씨(寧川李氏)가 있다. 전혀 뿌리가 다른 성씨지만 한글 본관이 같아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서도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영천이씨(永川李氏)는 1985년에는 총 2,401가구 9,772명, 2000년 조사에서는 총 7,222가구,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48 (84)여양 진씨(驪陽陳氏)-97,372명 시조 진총후(陳寵厚)의 선대는 중국인이다. 북송(北宋) 말엽 우윤(右尹)벼슬을 지내던 복주(福州) 사람 진수(陣琇)가 난을 피해 가족들을 데리고 고려에 건너와 여양현(현 충남 홍성군 장곡면) 덕양산 아래에 정착했다.그 뒤 진수의 후손 진총후가 고려에 출사하여 예종 때 상장군 겸 신호위대장군(神虎威大將軍)에 이르렀다. 진총후는 인종 4년 김 향, 이공수 등과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46 (83)풍천 임씨(豊川任氏)-99,986명 시조 임 온(任溫)은 고려 때 경상도 추동 안찰사를 거쳐 어사대부, 감문위 대장군을 지냈다. 그 뒤 6세손 임 주(任澍)에 이르기까지 황해도 풍천에 살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풍천을 본관으로 삼았다.--임 주는 충렬왕 때 경상도안찰사, 조봉대부, 감문위대장군을 지냈다. 그 뒤 충숙왕 때 그의 아들 삼사판사 임자송(任子松)과 민부전서 임자순(任子順)이 각각 백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44 (82)나주 나씨(羅州羅氏)-108,139명 시조 나 부(羅富)는 고려 때 중국에서 건너와 정의대부, 감문위상장군을 지낸 뒤 나주에 눌러 살게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나 부를 시조로 하고 여황나씨로 하였다. 그 뒤 고려 성종 때 여황이 나주로 바뀌면서 나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나주의 다른 이름인 금성을 본관으로 한 금성나씨는 나주나씨와는 그 뿌리가 다르다. 구분하기 쉽게 나주나씨를 당라(唐羅), 금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41 (81)원주 원씨(原州元氏)-109,505명 원주원씨(原州元氏)는 시조가 다른 3개 파가 있다. 첫째 원 경(元鏡)을 시조로 하는 운곡파(耘谷派)다. 원 경은 중국 당나라 사람으로 고구려 보장왕 때 당태종이 파견한 홍 경(洪鏡), 지 경(池鏡), 신 경(辛鏡) 등 경(鏡, 거울경) 자를 이름으로 하는 8학사 중의 한 사람이다. 당태종은‘모든 사람이 본받을 수 있는 거울이 되라’는 뜻으로 경(鏡)을 이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5 16:37 (80)선산 김씨(善山金氏)(김추계)-109,682명 (80)선산 김씨(善山金氏)(김추계)-109,682명 김추계의 선산김씨 시조는 김 추(金錘)이다. 그는 신라 김알지의 28세손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이다. 경순왕과 고려 태조 왕 건의 맏딸 낙랑공주 사이에서 태어나 일선군(一善君)에 봉해졌다. 일선(一善)은 선산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선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김추계의 선산김씨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선산을 본관으로 했다. 김 추 이후의 세계가 확실하지 않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3:00 (79)선산 김씨(善山金氏)(김선궁)-109,682명 (79)선산 김씨(善山金氏)(김선궁)-109,682명 경북 선산에는 선산을 본관으로 하는 두 김씨가 있다. 엄연히 뿌리가 다른 데도 성과 본관이 같아 혼란이 많다. 김 추(金錘)를 시조로 하는 선산김씨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선산을 본관으로 했다. 본관 선산은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의 지명이다. 경북 선산군 고아면 원호동 속칭 들성(평성) 마을은 235가구 중 32가구를 뺀 203가구가 모두 김추계의 선산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57 (78)기계 유씨(杞溪兪氏)-113,430명 시조 유삼재(兪三宰)는 신라 때 아손(阿飡)을 지냈다. 그 뒤 후손 유의신(兪義臣)이 고려 개국에 반대하다가 고려 태조의 미움을 받아 기계(杞溪)의 호장(戶長)으로 좌천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그곳에 살면서 본관을 기계로 삼았다. 시조 묘소는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미현리에 있다. 조선 초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유효통(兪孝通)이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55 (77)풍양 조씨(豊壤趙氏)-113,798명 시조 조 맹(趙孟)은 고려의 개국공신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바위(巖)였는데 태조 왕 건이‘맹(孟)’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조 맹은 왕 건을 만나기 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송능리 천마산의 암굴에 은거했다. 그 뒤 왕 건과 함께 후삼국 통일에 나선다. 당시 그의 나이는 70세였으며 벼슬은 문하시중 평장사에 이르렀다. 지금도 천마산에는 왕 건을 만났다는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52 (76)합천 이씨(陜川李氏)-115,462명 시조 이 개(李開)는 신라 때 최치원의 문인으로 유학과 문학의 진흥에 힘썼으며 강양(江陽, 지금의 합천)군에 봉해졌다. 고려가 건국되자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키다 가수현장(嘉樹縣長)으로 강등되었다가 합천호장(陜川戶長)이 되었다.그 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합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이 개의 조상은 신라 6촌중 하나인 알천 양산촌의 촌장 이알평이다. 따라서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50 (75)고령 신씨(高靈申氏)-116,966명 시조 신성용(申成用)은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고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역임했다. 그의 선조는 신라의 선비로 대대로 고령에 살면서 호장을 지내왔다. 그래서 후손들이 고령을 본관으로 삼았다. 신성용의 8세손 신숙주도 익재좌리공신으로 고령 부원군에 봉해졌다. 시조의 6세손 신 장, 신 평, 신 제 3형제의 후대에서 크게 번성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특히 신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48 (74)충주 지씨(忠州池氏)-118,211명 시조 지 경(池鏡, 903~1003)은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960년(고려 광종 11)에 귀화했다. 당시 태학사로서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정착하여 벼슬이 금자광록대부 태보, 평장사에 이르렀다.그 뒤 지 경의 6세손인 지종해(池宗海)가 충주에 살았으며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로 충주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충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시조 지경의 묘는 평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46 (73)능성 구씨(綾城具氏)-120,503명 시조 구존유(具存裕)는 고려시대 벽상삼한삼중대광 검교상장군에 이르렀다. 그의 장인인 주 잠(朱潛, 신안주씨 시조)은 송나라 한림학사로서 송나라가 몽골에 패망하자 1224년(고려 고종 11) 망명하여 금성(나주의 옛이름)에 정착하였다. 주잠이 능성에 살며 2남1녀를 두었는데 딸이 구존유와 혼인하여 능성에서 살게 되자 구존유가 능성을 본관으로 하였다. 본관 능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44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678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