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기사 (152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131)칠원 윤씨(漆原尹氏)-54,263명 시조 윤시영(尹始榮)은 신라 무열왕 때 태자태사로서 고명원로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의 아들 윤 황 이후의 기록은 없어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후손 윤거부(尹鉅富)가 고려 초 칠원현에서 호장보윤(戶長甫尹)을 지내고 칠원백(漆原伯)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칠원을 본관으로 삼고, 윤거부를 중시조 1세로 하여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윤거부는 비록 호장이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5-02-19 06:40 (130)동복 오씨(同福吳氏)-55,517명 (130)동복 오씨(同福吳氏)-55,517명 우리나라 모든 오씨는 한 뿌리다. 중국에서 신라 지증왕 때 우리나라로 건너온 오 첨이 오씨의 선대이다. 오 첨의 후손 오수숙은 고려 고종 때 거란군이 침입했을 때 오현보, 오현좌, 오현필 등 세 아들에게 이를 격파케 했다. 그 공으로 ▲오현보는 해주군 ▲오현좌(吳賢佐)는 동복군 ▲오현필은 보성군에 각각 봉해진다. 그래서 오현좌의 후손들은 동복을 본관으로 삼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5-02-19 01:34 (129)해남 윤씨(海南尹氏)-55,627명 시조 윤존부(尹存富)는 고려 중엽 때의 인물이다. 중시조인 8세손 윤광전(尹光琠)이 고려 공민왕 때 사온 직장을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자 아들들을 데리고 해남으로 피하여 살았다. 해남을 본관으로 삼게 된 것은 12세조인 윤효정(尹孝貞)이 강진에서 해남으로 옮겨 가면서 부터다. 윤광전의 묘소는 전남 강진군 도암면 계라리 한천동에 있으며 음력 9월 9일에 향사한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5-02-19 01:32 (128)죽산 안씨(竹山安氏)(구파)-56,051명 시조 안방준(安邦俊)의 처음 이름은 안지춘(李枝春)이다. 당나라 헌종 4년 (신라 헌덕왕 1년)에 출생, 헌강왕 5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중국 당나라 농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온 이 원(李瑗)의 큰 아들이다. 이 원은 신라 애장왕 때 신라로 건너와 개성 송악산 아래에 정착해 살면서 아들 이지춘(李枝春), 이엽춘(李葉春), 이화춘(李花春) 3형제를 두었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5-02-19 01:30 (127)부안 김씨(扶安金氏)-56,318명 시조 김 일(金鎰)은 마의태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경순왕의 큰 아들이며 대보공 김알지의 29세손이다. 경순왕 9년 고려 태조에게 나라를 넘어가자 개골산에 들어가 마의(麻衣)를 입고 여생을 마쳤다. 묘소는 전북 부안군 산내면 운산리에 있으며 음력 10월 1일에 향사한다.부령(扶寧)을 본관으로 삼았던 때는 김 춘(金春) 때이다. 김 춘의 아버지 김경수(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5-02-19 01:27 (126)강릉 함씨(江陵咸氏)-56,718명 시조 함 규(咸規,시호는 양후)는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광평시랑평장사에 올랐으며 시호는 양후(襄厚)이다. 그러나 함씨의 선계(先系)는 멀리 중국 한나라 때의 대장군 함왕(咸王)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함왕은 한나라 때 대장군으로 우리나라에 와 용문산을 중심으로 적을 토평한 뒤 부족국가를 세웠다. 그는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문산에 석성을 쌓고 촌장을 지냈으며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5-02-19 01:24 (125)전주 김씨(全州金氏)-57,979명 시조 김태서(金台瑞.?~1257)는 신라 경순왕의 아들 대안군의 후손이다. 그는 고려 무인 집권기인 명종-고종의 5조에 걸쳐 추밀원부사, 상장군, 이부상서, 문하시랑 평장사, 보문각, 대제학 등의 벼슬을 지냈다. 김태서는 1254년 고려 고종 때 몽고군이 경주 일대를 폐허로 만들자 가족을 데리고 전주로 이주한다. 그가 전주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전주를 본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5-02-19 01:21 (124)예천 임씨(醴泉林氏)-58,403명 예천임씨의 시조 임충세(林忠世)는 고려 때 이부상서를 지냈다. 나주임씨를 제외한 평택이씨 등 나머지 임씨의 원시조는 중국 사람 임팔급이다. 그가 당나라 때 간신의 모함을 피해 7명의 학사와 함께 바다를 건너 지금의 평택 땅에 정착한다. 그 뒤 임팔급의 후손 임몽주의 아홉 아들 대에서 여러 본관으로 갈라진다. 그 중 임계미의 후손에서 임 춘(林椿)이라는 인물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5-02-19 01:18 (123)연주 현씨(延州玄氏)-59,096명 시조 현담윤(玄覃胤)은 본래 평안도 연주 출신으로 고려 의종 때에 장군을 지내고 명종 때 일어난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라 연산군(燕山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시조의 봉군지명(封君地名)인 연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연주와 연산은 평안도 영변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연주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5-02-19 01:16 (122)보성 오씨(寶城吳氏)-59,914명 시조 오현필(吳賢弼)은 1216년(고려 고종 3년)에 거란군을 격퇴한 공으로 보성군(寶城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보성으로 했다. 오현필의 묘소는 충남 공주군 장기면 신관리 취리산에 있다. 그런데 오현필은 우리나라 오씨의 원조(遠祖) 곧 도시조(都始祖)라 할 수 있는 오 첨(吳瞻)의 24세 손이다. 오현필의 큰 형 오현보(吳賢輔)는 해주오씨의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5-02-19 01:14 (121)진주 류씨(晋州柳氏.토류계)-60,104명 진주유씨(晋州柳氏)는 류정(柳挺)을 시조로 하는 토류계(土柳系)와 문화류씨의 후손 류인비(柳仁庇)를 시조로 하는 이류계(移柳系)가 있다. 토류계의 시조 류정(柳挺)은 원래 진주에 대를 이어 살아온 선비 집안의 후예다. 류정이 고려 때 벼슬이 좌우위상장군에 이르고 진강(진주)부원군에 봉해짐으로서 후손들이 본관을 진주로 하였다. 류정은 고려 때 벼슬을 지내고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5-02-19 01:12 (120)달성 배씨(達成裵氏)-61,104명 (120)달성 배씨(達成裵氏)-61,104명 우리나라 모든 배씨의 원조는 신라 6부 촌장 중의 한 사람인 지타공 이다. 그는 다른 촌장들과 함께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 왕으로 추대한다. 그 공으로 유리왕 때 지타공은 배씨 성을 하사받는다. 그 뒤 고려 개국공신 배현경을 시조로 한 경주배씨는 자손이 번창 하면서 여러 본관으로 갈라진다. 배씨는 59개의 본관에 인구는 2000년 현재 372,064명이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11-17 00:28 (119)장흥 고씨(長興高氏)-61,626명 고씨(高氏)의 고(高)는 < 높을 고 >이다. 강릉 강화 개성 경주 고령 고봉 고성 고창 고흥 광녕 광명 광약 광영 광주 김해 김화 남양 남해 담양 대전 마재 밀양 상당 상주 안동 양주 연안 연주 영월 영천 옥구 용담 의령 임실 장계 장성 장안 장택 장흥 전주 제주 조치원 진주 창평 청주 충주 토산 평산 해주 홍성 횡성 등 51개 본관에 인구는 2000년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11-17 00:24 (118)전주 류씨(全州柳氏)-61,650명 시조 류습(柳濕)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그는 조선 태종 때 원종공신이 된다. 1414년 하정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좌군도절제사로서 대마도 정벌에 공을 세우기도 했다. 묘는 전북 완주군 고산면 율곡리 분토동에 있다. 부인‘삼한국대부인최씨’의 묘는 전북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유일여자고등학교 뒤편 시사재(건지산) 앞에 있다. 전주류씨의 시조 류습(柳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11-17 00:22 (117)상산 김씨(商山金氏)-63,528명 시조 김수(金需)는 고려 때 보윤(甫尹)을 지내고 상산군에 봉해졌다. 그는 본래 신라 김알지의 후손이다. 후손들이 여러 대에 걸쳐 상산에 살면서 상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상산은 경상북도 서쪽에 위치하는 상주(尙州) 지역의 옛 지명이다. 따라서 상산김씨는 상주김씨라고도 한다. 김득배는 상산김씨가 배출한 큰 인물이다. 그는 고려 공민왕 8년 홍건적이 침범했을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11-17 00:20 (116)부안 임씨(扶安林氏)-63,589명 시조 임계미(林季美)는 고려 현종 때 평장사 금자광록대부로 있다가 왕으로부터 조그만 혐의를 받아 목숨을 빼앗으려는 계략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임진강에서 뱃놀이를 핑계삼아 배에 탔던 임계미 등 세 사람은 돌이키려는 왕명도 아랑곳 하지 않고 풍랑에 휘말려 고초를 겪으면서 지금의 전북 부안군 보안면 포구에 닿아 상륙하게 되었다. 그 후에 왕의 오해가 풀려 보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11-17 00:18 (115)온양 방씨(溫陽方氏)-64,128명 시조 방지(方智)는 중국 하남 사람으로 신라 문무왕 9년(서기669년) 당나라 문화 사절로 신라에 왔다. 설총과 함께 동방유학과 예교(禮敎)의 진흥에 힘쓰다 우리나라에 정착한다. 그 후 상주에 정착하여 살았기 때문에 상주란 본관을 사용했다. 그 후 방운이 온수(온양)군에 봉해짐에 따라 온양으로 개관하게 되었다. 시조인 방지로부터 방운 까지는 문헌이 없어져서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11-17 00:16 (114)평창 이씨(平昌李氏)-65,945명 시조 이광(李匡)은 고려 인종 4년에 태어나 고려 명종 때 태사(太師)를 역임하고 광록대부로 추밀원부사에 올랐다. 후에 백오(白烏.평창의 옛이름)군에 봉해졌다. 태사(太師)는 고려 시대 임금의 고문을 맡은 정일품 벼슬이다. 태부(太傅), 태보(太保)와 함께 삼사(三師)라 불렸는데 이 중 가장 높은 벼슬이었다. 혹은 고려 시대 동궁에 속하여 왕세자의 교육을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11-17 00:14 (113)배천 조씨(白川趙氏)-66,155명 배천은 한자로는 백천(白川)이 맞다. 그러나 지명은 배천으로 부르기 때문에 배천유씨라 한다. 시조 조지린(趙之遴)은 중국 송나라 태조(조광윤)의 맏아들인 조덕소(趙德昭:위왕)의 셋째 아들로 979년(고려 경종 4년) 황제 등극 문제로 일어난 난을 피하여 우리나라에 건너와 지금의 황해도 배천군 도태리에 정착했다. 그는 고려 현종 때에 좌복야 참지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11-17 00:12 (112)진보 이씨(眞寶李氏)-66,407명 시조 이석(李碩)은 고려 충렬왕과 충선왕 무렵 진보현리(眞寶縣吏)를 지낸 뒤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했다. 그의 아들 이자수(李子脩)가 고려 공민왕 13년에 봉상대부 지춘주사(奉常大夫 知春州事)로 홍건적을 평정, 안사공신(安社功臣)에 책록되고 송안군(松安君)에 봉해졌다. 그런데 흔히 시조가 향리(鄕吏)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하천(下賤)계급인 아전과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11-17 00:09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678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