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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무다리에 막힌 국정
외나무다리에 막힌 국정
  • 김병주
  • 승인 2014.08.2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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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칼럼>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한사람이 의연하게 울돌목을 막아서서 대첩을 올린 이야기, 영화 “명량”이 현재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단기간에 1600만 명을 훌쩍 넘도록 관객이 계속 몰려 종전의 흥행성과를 갈아치우고 있다. 이것은 근래 바로 되는 일은 없고, 어처구니없는 세상일들은 많아, 애국충절의 감동에 목말라하는 인구가 많다는 반증이다.

  
이순신은 시대를 초월한 민족의 영웅이다. 그를 추앙하는 인구가 저리도 많은데, 어찌하여 요즘 나라꼴은 이래도 신통치 아니할까? 우리사회에 막무가내 인간들의 존재 때문이 아닐까? 대다수 사람들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슨 일에나 무턱대고 혼자 외나무다리를 지키듯 나서는 것이 반드시 정의롭고 현명하기만 한 처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 부득이 맞서 싸우려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면 두 가지 문제를 고려한다. 하나는 다툼의 대상 선정이고, 그 다음은 다툼의 방법이다.

  
요즘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마지막 버티기(hold-out)가 횡행하고 있다. 마지막 버텨내기는 부동산 시장 ‘알박기’들의 주특기이다. 각종 지역개발, 아파트 재개발 사업 등에서 한사람 또는 극소수가 시일을 질질 끌며 선량한 다수인에게 상당한 경제적·정신적 손실을 입히고, 사업주와 뒷거래로 이익을 챙기고도 버젓하게 승자로 살아간다.

  국내외 금융시장, 특히 채권구조조정 협상 테이블은 버티기 무리들의 놀이터이다. 지난 8월 7일 아르헨티나 역사상 여덟 번째 국가채무 디폴트가 발표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꼬이게 되기까지 헤지펀드들의 집요한 버티기가 있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죽은 시체 뜯어먹고 사는 새 ‘벌쳐’(vulture)라는 별명이 따른다.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에는 어느 정도의 마찰과 저항을 일종의 간접비용으로 받아주는 것이 사업추진의 관행이었다. 이것이 불씨가 되어 곳곳에 격렬한 불길로 타올라 번져가는 후환을 낳았다. 노동 분쟁터에서, 터널·송전탑 등 기간시설 공사장에서,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서 환경 등을 이유로 막장까지 끌고가며 절대 다수 국민의 공익을 좀먹어 들어가는 유충 무리와 균사체 덩어리로 번지고 있다. 기생(寄生)생물이 많은 숙주(宿主)나무가 결국 고사하듯이, 한국의 민생(民生) 나무숲이 이렇게 시름시름 병이 깊어간다. 각종 저항운동에 이골이 난 단골 인사들이 유명인사로 떠오르고, 대중매체들은 이들의 앵무새 입이 되어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

  
이순신은 못난 임금 선조와 속 좁은 반대파에게 여러 차례 시달림을 받았다. 그가 뛰어난 것은 그런 고초 속에서도 금도(襟度)를 가지고 절도(節度)를 지켰다는데 있다. 만부득이 선물을 바치는 등 에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작은 일에는 주장을 세우지 않고 큰일은 기어코 이루었다. 유연함이 있었기에 강인할 수 있었다. 주어진 시대상황의 틀 속에서 그 한계를 알고 불가능한 승리를 불가피한 귀결로 이끌어 내는 것이 그의 성공비법이었다.

  
국민은 세월호 후유증에 지쳐있다. 침몰 이후 만 4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희생자들을 애석히 여기고 경박함을 삼가는 조문 분위기가 여전하다. 3년상을 지키던 예전과 달리 초상 치르고 삼우제 마치면 대게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요즘 세태인데도 말이다. 예전 3년 시묘하던 시절에도 마을 어귀에 움막을 짓지 않았다. 아직 바다에 갇혀 있는 불운한 시신들의 조속한 인양을 바라는 마음이야 한결 같지만, 일상 복귀와 경제 활성화를 재촉하는 자연스런 욕구가 점차 강한 압력으로 감지된다. 5천만 국민 대다수는 친부모상보다 긴 문상 분위기에 피곤을 느끼고 있다. 만사에 무게중심이 있는 법, 기울어진 균형은 되잡아야 한다. 문제해결도 보상도 그러하다. 국력소모의 정국을 조속히 수습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보다는 막장 드라마 늘이듯 흥행하는 미디어, 그 드라마에 외나무다리 지킴이 주연과 곁불 쪼이려 다가서는 정치인 조역들은 바람개비 같은 세상인심을 너무 모른다. 이제는 눈물을 거두고 이성의 눈으로 냉엄한 국내외 정서를 직시할 때이다.

  
일부 유가족들이 버티고 있다. 공동체의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는 인식에 눈을 떠야한다. 투표로 당선된 국회의원은 마땅히 유권자들 속내 마음을 바로 읽고 대변해야 한다. 다수의 유권자들은 불만을 속으로 삼키고 있다. 국민의 손에 선출된 적 없는 소수 인사들에게 스스로 볼모잡힌 정치인들은 풀뿌리 정서 변화를 놓치고 있다. 의회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대통령에게 따로 무슨 비장의 해법이 있다고 또다시 면담을 요구하는가? 법질서를 교란시키고 국민부담 늘이는 길 이외는 말이다. 사건 있을 때마다 특별법이 재정된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하나? 천안함 특별법이 있었던가? 한번 전례가 만들어지면, 반복을 막을 장사가 없다. 그래도 특별법? 그렇다면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치도록 하자. 전과기록 없는 성실 납세자들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그러한 투표제를 도입하자.

  
이순신은 싸워도 주어진 제도 속에서 싸웠다. 그러다가 스스로 죽음의 자리를 선택해야 하는 한(恨)이 있어도 말이다. 그는 몸은 이미 죽었어도 아직도 불후의 위인으로 살아있다. 광장에 텐트치고 자제력을 잃은 자들이 위인인가? 국정에 균형을 잃으면 나라가 좌초한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김병주 ( pjkim@sogang.ac.kr )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재단법인 나눔21 이사장
 
   (전) 한국경제학회 회장
 
   (전) 한국은행금융통화위원회 위원, 금융산업발전심의회 위원장
 
   (전) 한국투자자보호재단 이사장, 소액서민금융재단 이사장
    (전)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경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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