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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 말에도 반대부터 하고 보는 정부 부처와 관료들
새 대통령 말에도 반대부터 하고 보는 정부 부처와 관료들
  • 권의종
  • 승인 2022.06.1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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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대학 정원규제 때문에”... 반도체학과 신설 힘들다는 대한민국 관료...몸 사리기보다 기(氣) 살리는 정부 부처와 공무원이 필요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대한민국 공무원은 자질이 우수하다. 영리하기까지 하다. 일부에 국한된 얘기지만, 빗나간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가 여전하다. 위에서 지시가 있어야 움직인다. 지시가 없으면 여간해선 잘 움직이지 않는다. 불호령이 떨어져야 ‘앗 뜨거라’하며 마지못해 움직이곤 한다. 나무랄 수 만도 없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하에서 평생 공직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그들 나름의 생존 노하우다. 

이런 일이 국무회의에서도 벌어지고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에 반도체 인력 양성을 주문했다. 대뜸 반대 의견이 나왔다. 공석인 장관을 대신해 참석한 교육부 차관이 “수도권 대학 정원규제 때문에 힘들다”라며 난색을 보였다. 이에 대통령이 국가의 미래가 달렸는데 웬 규제 타령이냐고 질타하자, 그제야 부랴부랴 반도체 학과 정원 확대를 검토하게 됐다고 한다. 

'반도체 인력 10만 명 양성'을 공약에 포함하는 등 전문 인재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대통령으로선 크게 분노할 일. 국무회의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시켜 ‘반도체에 대한 이해와 전략적 가치’를 주제로 강연까지 하게 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한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신신당부도 했다. 그런데도 국무위원의 반대에 부딪혔으니 화가 날 만도 하다.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는 이어진 발언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반도체는 국가안보 자산이자 우리 산업의 핵심이다. 우수 인재를 키워내는 게 핵심”이라며 “국가의 운명이 걸려 있는 역점 사업을 우리가 치고 나가지 못한다면 이런 교육부는 필요 없다. 시대에 뒤처진 일을 내세운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교육부는 폐지돼야 한다”라고 질타했다는 보도다. 반도체의 안보 전략적 가치와 인재 양성의 절박성을 강조한 대통령의 발언이 속 시원하다. 삼복더위에 마시는 아이스커피 맛처럼 상큼하다.

반도체의 전략적 가치와 인재 양성의 절박성 강조한 대통령...삼복더위 냉커피 맛처럼 상큼

대통령의 ‘반도체 드라이브’에 온 나라가 갑자기 반도체 비상이 걸렸다. 호떡집이 불난 꼴이 됐다. 국무총리가 장관들을 불러 모았다.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며 진두지휘에 나섰다.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 경제부총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토교통부 등 5개 부처가 한 팀이 돼서 첨단산업 인재 양성에 관한 방안을 만들기로 했다는 설명을 내놨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규제로 안된다는 얘기는 어느새 쏙 들어갔다. 총리는 수도권과 지방 대학에 비슷한 숫자의 증원을 생각하고 있고, 구체적인 숫자는 관계 부처 간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인재 양성에 대한 확고하고 구체적이고 지속 가능한 제도를 만들 것임을 힘줘 말했다. 처음부터 지시에 따랐더라면 좋았을 것을. 질책을 받고서 하는 행동인지라 왠지 겸연쩍고 어색하다. 

교육부의 반대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또 교육부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은 인구집중 유발시설로 지정돼 교육부로부터 정원 배정을 받아야 한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확충하려면 국토교통부 장관이 수도권정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허가해야 한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풀면 가뜩이나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모집이 힘든 지방대의 소멸이 빨라질 수 있다. 수도권 집중도 심해질 수 있다. 대학 내 정원 조정도 말처럼 쉽지 않다. 학과 통폐합 등 구조조정 추진에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이 극심할 것이다. 학문연구의 전당인 대학이 4차 산업혁명 기술자를 양산하는 곳이냐는 항변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인문계 등 비(非) 자연계 학과들은 다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먹여 살리는 반도체 산업...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해소할 파격적인 대책 내놔야

불똥은 정치권으로도 튀었다. 여당은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산업 육성방안이 거론된 지 이틀 만에 ‘반도체산업지원특별위원회’ 설치를 발표했다. 의원총회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초빙해 반도체 특강도 개최하는 등 갑자기 부산을 떨었다. 그러면 뭐 하나.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헛수고인 것을. 물론 이런 국가적 중대사에 그러지는 않으리라 믿지만.

반도체 인재 육성의 문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때도 ‘K반도체 전략’이 제안되며 거론했다. 국회에서 관련 특위를 구성, 첨단학과 정원 제한을 관련 규정에서 예외로 하자는 방안이 제시됐다. 당시 여당과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방대 소멸을 가속화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저해하는 행위라는 지금과 똑같은 이유를 댔다. 시민단체들도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을 위한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 계획을 철회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반도체가 어떤 존재인가. 기술 혁명 시대의 총아다. 핵심 전략 품목으로서 위상과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상황이다. 세계 각국이 반도체 확보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반도체는 생명줄과 같다. 수출 효자 품목으로 대한민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국민과 나라를 먹여 살리는 이런 중요한 산업에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앞으로 10년간 3만여 명의 인력이 모자랄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 차원의 파격적인 대책이 나와도 시원찮을 판에 지방대 차별과 지역 균형을 들먹이며 전문 인력 양성을 반대하는 후진적인 공직 문화가 안타깝고 한심스럽다.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커다란 해악이다.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윤 대통령의 말마따나 반대부터 하고 보는 정부 부처나 관료는 쓸모가 없다. 몸 사리기보다 기(氣) 살리는 정부와 공무원만 필요하다. 나라의 녹(祿)을 먹으며 욕까지 먹는 공직자는 자진해서 어서 떠나시라. 나라를 위해 본인을 위해.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경영학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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