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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실의 바보’와 '버블 파이터'...통화·재정정책과 이주열·홍남기의 선택
‘샤워실의 바보’와 '버블 파이터'...통화·재정정책과 이주열·홍남기의 선택
  • 정종석
  • 승인 2021.06.2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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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가계부채 증가 속 금리인상 등 중요 결정 눈 앞에...적절한 역할 분담 하되 과도한 엇박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한 바보가 샤워실에 들어가 더운 물을 틀자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놀란 바보가 얼른 찬물로 수도꼭지를 돌리자 이번에는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 사이를 왔다갔다하던 바보는 물만 낭비하고 정작 샤워는 하지 못했다.

'샤워실의 바보들(Fool in the Shower Room )'은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 교수가 중앙은행의 과도한 경제 조작을 비판하며 제기한 우화를 모티브로 한다.

완전 고용을 이끌겠다며 온수 꼭지를 열어젖혔던 중앙은행이 뜨거운 물(인플레이션)에 놀라 다시 냉수 꼭지를 급히 틀어 경기침체와 실업, 빈부격차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약을 하면 중앙은행이 섣부르게 시장에 개입하면 물가 불안과 경기 침체가 더 커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말이다.

가계 부채가 역대급 규모로 불어나는 가운데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올 하반기부터 '엇박자'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올 하반기에도 현금성 지원금 지급과 신용카드 캐시백 등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한 경기부양에 나서는 반면,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의 '질서 있는 정상화' 방침을 시사해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재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돈을 풀겠다"는 와중에 한은은 "기준 금리를 연내 2차례까지 올릴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고 있다. 이는 마치 기재부는 돈을 풀어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고, 한은은 금리를 올려 브레이크를 밟는 것으로 시장에 읽혀질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가 고소득층 제외 지원금 방침을 관철하지 못해 현재 여당의 주장대로 현금성 지원금 대상이 전국민으로 확대돼 추석 전 지급된다면, 모든 국민에게 돈을 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리는 모습이 연출될 수 있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대유행이 2년차로 접어들면서 각국 정부는 이제 인플레이션 발생을 적극적으로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파월 연준 의장은 2분기 들어 자산 가격의 거품을 우려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고,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도 금리 상승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연내 금리 인상을 시사한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2년차로 접어들면서 각국 정부는 이제 인플레이션 발생을 적극 우려

자산 버블에 대한 중앙은행의 역할이 강조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자산 가격 버블에 대한 중앙은행의 역할이 금융 기관들이 과도한 위험 선호를 억제하도록 감독·규제를 강화하는데 그쳐야 한다는 것이 기존 입장이었다. 연준에서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에서야 본격 등장했다. ‘버블 파이터(Bubble Fighter)’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도 이 시점이다.

프리드먼은 경제란 시장에서 생기는 스스로의 자정 기능 덕분에 알아서 안정을 찾아간다고 봤다. 따라서 정부의 시장 개입은 가급적 자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기가 과열 혹은 침체 기미를 보인다고 사사건건 개입하다가는 되레 역효과만 생긴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런 정책은 백발백중 과하거나 변덕스럽게 우왕좌왕하기 쉽고 결과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특히 중앙은행의 섣부른 냉탕온탕 정책에 대해 집중적으로 경고했다. 금리 인상 시기를 조금만 놓치면 물가 불안에 흠뻑 고생한 뒤 보이지 않는 도둑에게 가처분소득을 빼앗기고 만다. 지나치게 앞서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버리면 경기를 꺾어버려 실업의 고통을 겪게 된다.

중앙은행은 전체를 잘 보고 완만하게 정책을 펼쳐야지 섣부르게 대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당시 각국 중앙은행 정책은 통화량 조절에 주로 의존하고 있었던 만큼 돈 풀기나 돈 조이기를 꾸준하고 진득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통적으로 화폐발행을 독점하는 중앙은행은 자신들이 시장을 지배하는 신이기를 자처해 왔다. 그들은 통화를 조였다가 풀기를 반복하고 시장은 이를 따른다. 결과는 거품과 붕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끝없는 반복으로 이어진다.

최근 미국에서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테이퍼링 논의의 상당한 추가 진전이 나타나기까지 아직 멀리 있고(a ways away) 진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사실상 시사한 것이다.

한국도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분명히 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의 통화정책, 금리 수준, 완화 정도는 실물경제에 비해서 비춰 볼 때 상당히 완화적"이라며 "연내 늦지 않은 시점에 현재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질서있게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직접적으로 '연내'라고 못 박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의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 발언, 시장에 시그널...파월 의장보다도 훨씬 더 매파적

미국 연준과 우리의 기준금리 인상을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총재의 발언은 시장에 시그널을 확실히 줬다는 점에서 파월 의장보다도 훨씬 더 매파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엇박자'를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역할이 다르다"면서 앞으로 기재부와 한은의 협력을 강조했다.

만약 금리가 인상된다면 가계와 기업의 부담이 커질 것이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가계나 기업이나 정부가 그런 상황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금리는 원래 한은이 독립적으로 결정한다.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 홍남기 부총리와 이주열 한은 총재와는 다음달 초 G20 회의에 같이 출장을 갈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가 여러가지를 고려해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편성하고 한국은행은 나름대로 금리 인상 여지를 보이고 있다. 이를 꼭 거시정책 간 엇박자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힘들고 위기 극복을 위해 도움이 필요한 계층에 대해서는 재정정책이 역할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이 금리나 통화정책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오는 가운데 정부가 대규모 재정 지출을 하느냐는 점이다. 지금은 중앙은행이 유동성 회수를 검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미스매치'가 된다면 미국 등의 움직임을 볼 때 대외환경과도 엇갈리는 것이다.

특히 지원금, 신용카드 캐시백 등 정책 효과가 얼마나 될지도 우려스럽다는 진단이 적지 않다. 소비 진작은 백신을 통한 감염 확산 통제로 대면 소비를 자연스럽게 늘리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책임자인 두 사람이 두 정책을 상호보완적으로 해나가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서로가 적절한 역할 분담을 하되 과도한 엇박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이 필수적이다. 코로나 19로 경제가 중차대한 시점에서 그들이 ‘샤워실의 바보들’이 될지 아니면 또는 '버블 파이터‘가 될 지는 서로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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