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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보다 지독한 게 부동산"...새해 경제와 젊은이들의 서글픈 희망가
"코로나보다 지독한 게 부동산"...새해 경제와 젊은이들의 서글픈 희망가
  • 권의종
  • 승인 2021.01.0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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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끌’ 부동산, ‘빚투’ 주식...종잣돈 마련 위해 예·적금 깨고 ‘마통’ 트고, ‘부모 찬스’까지 더해서 투자 나서
경제도 생물, 잘못되면 찾아내 고쳐야...그냥 지나치거나 선심성 대책으로 대충 때우려다간 망하기 십상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돈 모으기가 힘들다. 예전에는 열심히 일만 하면 부의 축적이 가능했다. 물려받거나 가진 게 없어도 노동의 대가인 월급만 착실히 모으면 먹고사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자식 교육과 내 집 마련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자녀 혼수비용, 노후 자금의 밑천도 거의 근로소득에서 나왔다. 그런 상황이 바뀌었다. 월급만 갖고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워졌다. 티끌만 한 월급은 모아 봤자 티끌에 불과하다.

근로소득만 믿고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인식이 2030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근면과 성실, 저축을 중시하는 삶은 고지식함의 전형으로 꼽힌다. 받는 월급은 그대로인데 부동산 등 실물자산 가격이 뛰다 보니 자산이 없는 사람은 아예 ‘벼락 거지’ 취급이다. 집이나 주식에 한눈팔지 않고 월급을 차곡차곡 모았을 뿐인데 빈곤층 전락이라니. 분하고 억울하다. 이런 일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 땅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다니. 경악할 노릇이다.

시간 대비 수익으로 볼 때 근로소득의 가치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재테크가 필수의 ‘생계 수단’으로 등장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돈을 추구하고 부를 축적하는 삶이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게 무리일 수 없다. 명예보다 돈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무작정 탓할 순 없다. ‘돈은 좋은 것’이고 ‘많으면 더 좋다’는 인식이 시대의 보편 덕목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그러다 보니 돈으로 돈 버는 자본소득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부동산과 주식 투자를 개인의 능력으로 여긴다. 노력에 의한 대가로서 불로소득이 아니라는 것이다. 돈에 대한 열망이 강해질수록 다른 한편에서는 상실감이 커지는 게 문제다. 국민일보·공공의창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2.7%가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박탈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근로소득만 믿었다간 ‘벼락 거지’ 신세...명예보다 재테크로 돈 잘 버는 삶이 존경의 대상

‘근로소득 쇠퇴’, ‘자본소득 득세’의 한복판에는 집값 폭등이 똬리를 틀고 있다.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근로소득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고 있다. 고소득 직업을 가져도, 땀 흘려 일해도 월급 만으론 집 마련이 불가능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전세금 인상이나 월세 내기도 버겁다. 지난해 12월 KB 월간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지역의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10억4,299만 원,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5억7,582만 원으로 집계되었다.

코로나보다 지독한 게 부동산이다. 전염병이야 백신과 치료제로 제어될 수 있으나, 집값은 초강력 정책으로도 약발이 잘 안 듣는다. 24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전국에 걸쳐 집값이 치솟는다. 백약이 무효라는 게 결코 과장이 아니다. 종잣돈 마련을 위해 예·적금 깨고 ‘마통(마이너스 통장)’ 트고 ‘부모 찬스’까지 더해 투자에 나서는 젊은이가 부쩍 늘고 있다. 부동산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 주식은 ‘빚투(빚내서 투자)’의 서글픈 희망가다.

정책 실패, 제도 실패와 무관치 않다. 지난 얘기를 꺼내는 게 부질없으나, 문득 작년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이 떠오른다. “부동산 투기를 잡고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는 발표가 있었다. “급격한 가격 상승이 있었던 곳은 원상 회복돼야 한다”고 했다. “대책이 시효를 다했다고 판단되면 보다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겠다”며 “임기 내 부동산만큼은 확실히 잡겠다”고 단언했다.

맘대로 안되는 게 부동산일까. 현재까지 집값은 원상회복이 아니라 회복 불능에 달했다. 전세난도 심화되었다. 물량이 줄어 부르는 게 값이 되었다.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전셋집 한 곳을 보려 9개 팀이 줄을 서 제비뽑기로 세입자를 결정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정부는 다양한 주택 공급 방안 마련에 역점을 두겠다면서도 공공임대주택 확대, 부동산감독기구 설치를 들먹인다. ‘집은 사는(buy) 게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며 국민을 되레 가르치려 든다.

자본소득 추종을 탓할 바 아니나, 과열은 끝물 있어...폭락 땐 개인 파산, 금융 부실의 뇌관

자본소득 추종에는 고용 불안도 한몫한다. 안정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줄고, 진입 자체도 바늘구멍이다. 2020년 11월 기준 국내 실업률은 3.4%를 기록했다. 15세 이상 29세 이하 청년 실업률은 8.1%에 달했다. 30대 취업자도 2019년 같은 기간보다 19만4,000명이 줄었다. 아르바이트 등 단시간 노동으로 정기적 소득을 못 내는 ‘불완전 취업자’까지 포함하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월급 만으로는 은퇴 후 삶을 보장받기 힘든 현실도 투자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고령화 추세로 기대수명은 빠르게 늘고 있으나, 마땅한 노후 보장 수단은 턱없이 모자란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에 그친다. 이마저도 40년을 꾸준히 냈을 때나 해당한다. 직장인의 평균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25년임을 고려하면 소득대체율은 30%대로 떨어진다.

비(非) 근로소득 중심의 투자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큰 수익을 좇는 투자 열광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나 심히 걱정은 된다. 과열은 반드시 끝물이 있다. 오르기만 하는 자산은 세상에 없다. 폭락 땐 개인 파산, 금융 부실, 경제 파탄의 뇌관으로 작용한다. 근원 대책이 절실한 이유다. 주택 공급과 규제 완화를 통한 주거 안정, 창업 및 취업 활성화, 안정된 일자리 확대 등의 획기적 조치 없이는 투자 열풍을 결코 누그러뜨리기 어렵다.

몸에 병이 들면 정확한 진찰과 처방으로 빠르고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 병의 원인은 그대로 묻어둔 채 제아무리 좋은 영양제나 보약을 장복한다고 해도 병원균의 내성만 더 커질 뿐 병은 악화되기 마련이다. 경제도 사람의 몸이나 마찬가지다. 잘못된 곳이 있으면 어서 찾아내서 고쳐야 한다. 못 본 척 슬쩍 지나치거나 보여주기식 선심성 대책으로 대충 때우려 했다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망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는 악행이 된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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