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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말기 금융권 '세도정치'...제동 풀린 모피아-정피아의 낙하산 인사
정권말기 금융권 '세도정치'...제동 풀린 모피아-정피아의 낙하산 인사
  • 정종석
  • 승인 2020.12.2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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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기업은행장에 윤종원 전 靑 수석 낙점 이래 은행연 등 6개 기관의 수장 자리를 정·관 출신 인사 '싹쓸이'
조선시대 세도정치, 패권다툼 정신 팔린 국정책임자들의 부패와 무능 연상...언론의 지적-호소를 귀담아 들어야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또 다시 정권 말기만 되면 어김없이 금융권에 불어닥치는 계절풍인가. 은행권 인사를 모피아-정피아들의 낙하산 인사가 장악했다. 해도 해도 너무 다 해먹는다는 탄식과 신음이 곳곳에서 나온다.

최근 논란의 시작은 손해보험협회장 자리였다.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재직 중에 손해보험협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 회장은 금융감독위원회 은행감독과장, 감독정책과장,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 상임위원을 지낸 후 한국증권금융 사장을 거쳐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재직 중이었다.

금융 전문성 면에서는 인정받는 인사이기는 하지만 주요 보직 중 보험 관련 업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에서 다소 의아하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정 회장이 자리를 옮기면서 공석이 된 한국거래소 이사장 자리는 또 다른 ‘관피아’ 손병두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채웠다. 그는 행정고시 33회로 기획재정부 국제기구과장, 외화자금과장,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금융정책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은행연합회장 자리는 점입가경이다. 현역인 김광수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단독 후보로 추대됐다. 김 회장은 재정경제원 금융정책과 사무관,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 2018년 4월부터는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선임, 연임에 성공하며 임기를 수행 중이었다. 임기 도중에 더 좋은 자리를 찾아나선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이야말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전형이 아닐까. 

지난 해 선출된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장이 각각 행정고시 25회, 26회 출신이다. 현재 6개 주요 금융협회장 중 5개를 이른바 모피아가 싹슬이를 한 것이다. 순수 민간 출신은 대신증권 대표였던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 밖에 없는 셈이다.

금융권 자리 나눠먹기에 관피아도 합세했다. 신임 보험연수원장에 3선 의원 출신인 민병두 전 국회 정무위원장이 내정됐다. 직전 정희수 전 원장(현 생명보험협회장)에 이어 또 정치인 출신 인사가 그 자리를 꿰찬 것이다.

과거 저축은행 파문으로 낙하산 인사가 도마 위에 올랐는데도 은행권의 낙하산 인사 선임 관행 여전

금융권 전체가 소위 '낙하산'들의 자리 나눠 먹기 대상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 전 의원은 지난 17대, 19대,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대 국회에선 금융분야 전반을 담당하는 정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수년째 지속되는 금융권 낙하산 논란은 정치권의 물밑 압력과 업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정부나 정치권은 힘 있는 전직들의 자리를 챙겨줘야 하고, 주요 금융협회 등은 법안 개정 등 정치권 로비를 위해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모피아(Mofia) ’는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옛 재무부 출신 인사를 지칭하는 용어다. 재정경제부(MOFE·Ministry of Finance and Economy)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에서 유래한 범죄조직 마피아(Mafia)의 합성어다. 이들 재무 관료들이 마피아처럼 세력을 구축해 경제계를 장악하고 산하 기관에 투입되는 현상을 두고 모피아(Mofia)의 세력화라고 말한다.

과거 저축은행 파문으로 낙하산 인사가 도마 위에 올랐는데도 은행권의 낙하산 인사 선임 관행은 여전하다. 주로 모피아로 불리는 경제관료 출신들이 은행권 요직을 대거 차지하는 가운데 행정안전부와 국가정보원, 감사원 출신 낙하산도 빠지지 않는다. 또 금융권에 경쟁력과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 힘든 정치권 인사들도 다수 은행 사외이사나 감사 자리에 포진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부터 ‘나라다운 나라’ ‘공정과 정의’를 외쳐왔다. 과거 정부에서 세월호 사태 등을 통해서 낙하산의 횡포를 여실히 경험한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막아야 할 사명과 임무가 주어져 있었다.

지금의 모피아-관피아 독주는 애초 문 정부가 주창했던 관피아, 낙하산 근절 철학과도 배치된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역시 한성대 교수 시절 2012년 발간한 본인 저서 ‘종횡무진 한국경제’에서 ‘재벌과 모피아의 함정에서 탈출하라’는 부제를 달 정도로 모피아 중심의 인사 폐해를 지적하고 경계론을 펼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직전 후보 시절 한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의 정책협약을 통해 '금융권 낙하산 인사 근절'을 약속했지만 공염불이 된지 오래다. 임기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현 정부의 금융권 낙하산은 더 심해지고 있다.

올 1월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장에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낙점되면서 금융권에 외부 출신 낙하산 투입이 줄을 잇고 있다. 이후 은행연합회, 손해보험협회, 생명보험협회, 한국거래소, 보험연수원, SGI서울보증 등 6개 기관의 수장 자리를 정·관 출신 인사가 싹쓸이했다.

 모피아-관피아 출신끼리 ‘회전문 인사’ ‘짬짬이 인사’로 요직을 나눠 갖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금융권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겠다던 정부의 약속이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관료 출신이 요직을 차지할 수 없다’는 법은 없다. 또 능력 있는 인사도 적지 않다.

문제는 지나치게 금융권 인사에서 관피아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데 따른 폐해이다. 전관을 앞세워 금융권이 행정관청을 구시대적인 로비 창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은 산업의 혈맥이다. 피가 정상적으로 흐르지 못하면 몸이 고장난다. 마찬가지로 산업의 혈맥인 금융이 막히면 경제에 주름살을 가져온다. 

금융권 수장 자리에 관료·정치인 출신 인물들이 잇따라 내정되면서 이들 조직을 전문성이 없는 정치·관료 출신이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일각에서는 모피아-관피아들이 로비스트나 하면서 연봉을 받으러 왔다는 빈정거림마저 들린다.

우리나라 금융기관, 금융사마다 수장 선임 시스템이 있고 여기에 따라 최적의 인사를 모실 수 있도록 틀은 다 갖춰놓았다. 모피아-관피아 출신끼리 ‘회전문 인사’ ‘짬짬이 인사’라는 식으로 요직을 나눠 갖는 모습은 공정과 평등, 정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 왕조시대에 백성은 도탄에 빠져도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풍악을 즐겼던 탐관오리들. 갖은 명목으로 세금을 강제징수하여 중앙고위층에는 상납하고 자신은 치부하여 곳간마다 뇌물과 온갖 패물, 양식을 그득하게 채우고 향락을 즐긴 탐관오리들은 조선 말기 결국 나라를 말아먹은 주범들이었다.

탐관오리들의 횡포와 도탄에 빠진 민생은 외면한 채 세도정치, 패권다툼에만 정신이 팔린 국정책임자들의 부패와 무능은 조선을 파멸로 몰아갔다. 일본 침략 이전에 조선은 내부로부터 탐관오리들의 발호와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의 합작으로 스스로 무너진 셈이다.

시대가 바뀌어 과거 대간(臺諫/감찰 임무를 맡은 대관(臺官)과 국왕에 대한 간쟁(諫諍) 임무를 맡은 간관(諫官)의 합칭)의 역할은 오늘날 언론이 수행한다. 입법 행정 사법이 서로 정립해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는 가운데, 제4부라 불리는 언론이 외곽에서 권력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권력집중이 낳을 부정과 부패를 방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와 권력자들은 언론의 지적과 호소를 별로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다. 현 정권이 임기 말년에 접어들면서 쓴소리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조선시대 양반 지배층의 여론을 대변하는 언관, 곧 오늘날의 언론이었다. 왕은 싫든 좋든 이 대간이란 언론을 통해 관료와 스스로의 직분을 점검했기에 대간은 `군주의 눈과 귀'라고 불렸다. 이들이 조선시대 여론정치의 주역이었던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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