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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재난지원금과 '곳간지기'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
긴급 재난지원금과 '곳간지기'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
  • 정종석
  • 승인 2020.04.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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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때 국민에게 주는 돈은 100%든 70%든 조속한 지급이 중요...매사 어려울 때일수록 정도 걸어야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예전엔 며느리가 시집을 오게 되면 시어머니는 곳간 열쇠를 바로 며느리에게 건네 주지 않았다. 같이 살다가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에야 넘겨 주었다. 시어머니는 곳간을 통해 집안의 재산을 관리한다. 이것은 곧 집안 여인들의 권력을 의미했다.

시어머니는 상당한 기간 동안 며느리를 눈여겨보면서 마음 속으로 ‘이제 열쇠를 주어도 충분히 집안 살림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때 곳간 열쇠를 넘겨준다. 그 집안의 풍습이나 분위기를 모르는 며느리에게 함부로 열쇠를 건네주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나라곳간은 다른 말로 '국고(國庫)'이다. 국고를 관리하는 부처는 현재 기획재정부이다. 사람 좋은 인상에 모나지 않은 유형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위에 누가 와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예스맨’ 스타일이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 전만 해도 존재감 있는 경제사령탑이라기보다는 대통령 경제 대변인에 가깝다는 평을 들었다.

그런 그가 달라졌다. 당정청이 초기에 합의한 소득 하위 70% 대상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안에 대해 “기록으로라도 (반대)의견을 남기겠다”고도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결국 뜻을 꺾었지만 재난지원금을 4인 가족 기준 100만원으로 책정해 전 국민에게 나눠 주자는 더불어민주당의 요구에 반대 입장을 상당 기간 굽히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정권의 예스맨’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왔던 홍 부총리지만, 재정 문제에서는 달랐다. 이미 총선 전엔 추경안을 대폭 증액하라는 당의 요구를 거부해 이해찬 대표로부터 “물러나라고 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그로서는 아마도 맘 속으로 사퇴를 결심한 채 여당의 압력에 몸으로 저항했는 지도 모른다.

물론 전 세계가 코로나 대응 차원에서 현금을 살포하는 마당에 한가한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홍 부총리의 ‘항명’ 배경에는 예산당국 수장으로서 기축통화 보유국이 아닌 한국이 현금만 쏟아부을 경우 미래세대에게 부담이 된다는 점을 외면할 수 없다는 심리가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기재부와 홍남기 부총리의 재정건선성 유지 위한 경제논리가 지나치게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

홍 부총리가 그동안 70% 지급을 고수하는 이유는 코로나 19 방역은 안정을 찾고 있지만, 경제위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대책은 전초전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아직 큰 파도나 풍랑은 오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앞으로 기업 도산, 실업 등 실물경제 위기를 막기 위해 정부가 지출해야 할 곳이 많아진다. 따라서 더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 재정 여력을 축적해 놓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과거 재무부 시절부터 현 기획재정부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보수성도 자리한다.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기재부가 보편지급 선례를 남기는 것 자체를 극도로 꺼리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기재부가 한번 보편지급을 하면 향후 같은 요구가 이어질 때 거부할 명분이 없고, 결국 재정에 부담이 된다고 생각해 이를 막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기재부의 반대를 물리치고 곧 '재난지원금' 국회 심사에 들어가기로 함에 따라 ‘전국민 지급'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각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 결과에 따라 29일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5월 중순 이후 ‘전 국민 지급’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재부와 홍 부총리의 재정건선성 유지를 위한 경제논리가 지나치게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압도적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홍 부총리의 예상 밖 저항이 계속되자 당의 압력도 대단히 거셌다.

긴급재난지원금 문제는 총선 이후 여당 태도가 더 강경해졌다. 타협이나 설득이 아니라 관철시키겠다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정부에 보냈다. 그동안 정치권 의견에 귀를 기울이던 홍 부총리는 불편한 심기를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거센 압박에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우리는 여당의 정부정책 개입이 선을 넘었다는 지적에 유념해야 한다. 이른바 ‘관료패싱’이 증가하면 잘못될 경우 문재인 정부에서 큰 부담이 된다. 이런 흐름이라면 앞으로 다른 개혁 과제를 추진할 때도 기재부는 들러리로 전락할 전망이다.

최고 엘리트만 들어가는 ‘최강 관청’ 日 재무성, 아베 총리 등 정치권에 충성경쟁 하다가 몰락 위기 처해

긴급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 사태로 벼랑 끝 위기에 놓인 국민들을 돕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아울러 국민들의 생계와 소비에 도움을 줘서 경제의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 수단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100%든 70%든 조속한 지급이 더 중요하다.

여당과 기재부가 100% 지급을 합의했지만 지금 걸림돌은 오히려 야당의 합의와 국회처리절차이다. “국채발행 불가”에 방점을 뒀던 통합당은 현재 “조건부 심사 가능”으로 입장을 바꿨다.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은 야당이 '조건부 심사'로 선회하면서 공이 다시 정치권으로 넘어간 상태다.

헌법 57조는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지출 예산을 증액할 수 없다’고 돼 있다.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재정 남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헌법 취지 상 기재부가 재정건전성의 최후 보루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여염집에서 곳간 열쇠를 받았다는 것은 시어머니의 신뢰와 며느리로의 존재를 인정받는 뜻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곳간 열쇠 뒤에 숨어있는 의미는 헌법이 부여한 권한 내에서 기재부에 나라살림을 맡겼다는 뜻과 통한다.

우리는 일본에서 금융, 재정, 세제 등 장악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가 비리를 양산해 문제가 된 대장성(大蔵省)의 해체 배경과 과정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대장성은 지난 2001년 재무성으로 이름이 바뀐 뒤 20년이 흘렀지만 일본에서는 또 다시 재무성 해체론이 나온다.

최고 엘리트만 들어간다던 ‘최강 관청’인 재무성이 아베 총리 등 정치권에 충성경쟁을 하는 바람에 지금 몰락의 위기에 처해 있다. 과거 각 부처의 판단에 맡겼던 정부부처 간부 직원 600명의 인사를 총리관저가 사실상 장악했고, 절대적인 인사권 앞에 관료 사회에서 저마다 정치권에 충성 경쟁이 벌어진 결과라고 한다.

세상사가 어려울 때일수록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선현들의 가르침이자 삶의 교훈이다. 정통관료 출신인 홍 부총리가 하위 70% 지급을 고수하다 전 국민 100% 지급안을 최종 수용하기로 한 것은 정부의 곳간열쇠를 쥔 사람으로서 밀리고 밀리다 내린 최후의 선택일 것이다. 우리 기재부 역사에서 홍 부총리 같은 불행한 곳간지기가 다시금 나오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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