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뉴스 김태일 기자]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물컵 갑질’에서 촉발된 등기이사 불법 재직 사건으로 진에어에 내려진 행정제재를 정부가 풀어줬다. 제재 20개월 만이다. 이에 따라 진에어는 부정기편 운항 등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휘청이던 와중에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국토교통부는 3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면허 자문위원회를 개최하고 진에어에 내려진 제재를 풀었다. 이로써 진에어는 부정기편 운항의 길이 열림에 따라 국제노선이 닫힌 상황에서 경영위기 타개책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신규 노선 취항과 새 항공기 도입도 가능케 됐다.
국토부는 진에어가 2018년 제재 직전 청문회에서 제시한 경영 정상화 방안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진에어가 지난 25일 주주총회에서 지배구조 개선책을 의결한 영향이 컸다. 사외이사 비율을 ‘4분의 1 이상’에서 ‘2분의 1 이상’으로 명문화하고, 한진칼의 영향력 행사를 방지하기 위해 한진칼 임원이 맡고 있던 기타비상무이사를 폐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이사회 의장을 이사회에서 선임토록 개편했다. 이사회 내에 거버넌스위원회, 안전위원회, 보상위원회도 신설했다.
하지만 이번 행정제재 해제는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초유의 위기를 맞은 상황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행정제재 이후 진에어가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는 등 사내 경영 구조 개선에 힘쓴 덕도 있지만, 항공사들의 줄도산만큼은 막자는 정부 판단이 반영됐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만 해도 국토부 내부와 업계에선 진에어 제재 해제가 힘들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국토부는 앞서 2018년 8월 진에어가 미국 국적자인 조 전무를 2010~2016년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림으로써 항공법을 위반했다며 제재를 내렸다. 같은 해 4월 조씨가 대한항공 전무로 재직할 당시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폭언과 함께 물컵을 집어 던지는 사건이 발생해 악화된 여론이 등기이사 논란으로 옮겨붙은 것이다.
항공법은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을 이사 자리에 앉히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위반 시 면허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 하지만 당시 진에어는 면허 취소 대신 경영 정상화를 조건으로 신규 노선 허가와 신규 항공기 등록 제한 수준의 제재를 받았다. 국토부가 고용 불안정, 소액주주 피해 등의 리스크를 고려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진에어는 앞서 지난해 9월 자구계획 과제이행을 완료했다며 과제이행 결과 등 관련자료를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면허 자문회의는 “경영문화 개선에 일부 진전은 있으나 사외이사 확대 등 이사회의 객관적·독립적 운영 등은 미흡하다”고 지적하며 반려했다.
김상도 항공정책실장은 “진에어가 약속한 경영문화 개선계획을 마련한 만큼 제재 해제 필요성이 있다는 면허 자문회의의 의견을 받아들여 제재해제를 결정했다”며 “앞으로 진에어가 이런 취지대로 운영돼 신뢰받는 항공기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며 지켜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