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뉴스 이동준 기자] 올 한해 빼어난 실적을 거두며 4연임이 무난해 보였던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이 '노조 와해'라는 암초에 부딪쳤다. 비록 실형은 면했지만 재판부로부터 유죄를 인정받은 만큼, 향후 연임 과정에 있어 법률 리스크가 최대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그룹 금융계열사 임원인사는 원기찬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의 거취가 주목된다. 원 사장은 삼성 노조와해 혐의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연임 여부에 더욱 시선이 쏠린다.
원 사장의 연임 가능성을 놓고 여전히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원 사장은 17일 열린 재판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받았다. 2013년 당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인사팀장으로서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에 노조가 설립되자 일명 ‘그린화 작업’으로 불리는 노조와해 전략을 그룹 차원에서 수립하고 실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동안 원 사장의 연임에 무게가 실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원 사장이 그룹을 위해 일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이번에 물러나게 되면 삼성그룹이 그룹 차원의 범죄혐의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어서다.
그러나 삼성그룹이 이례적으로 1심 재판만 끝난 시점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내놓으면서 원 사장의 연임 가능성이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원 사장은 2013년 12월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돼 2015년 12월과 2017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연임에 성공했다. 6년을 꽉 채워 대표를 지낸 만큼 이번에 물러나도 모양새가 어색하지 않다. 혐의를 인정해 물러나기보다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물러날 때가 됐다는 명분이 있는 셈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원 사장의 생년월일은 1960년 2월으로 기재됐다. 하지만 2013년 말 삼성그룹이 제공한 프로필에서 원 사장의 출생년도는 1959년으로 적혀있다.
"이재용 파기환송심 재판 앞두고 유죄 판결 받은 원기찬 사장을 삼성그룹에 남겨두는 것 부담 될 수도"
원 사장의 출생년도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1960년생이라고 가정해도 내년 2월이면 만 60세가 되기 때문에 ‘60세 퇴진론’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원 사장은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연임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금고 이상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자는 금융사 임원자격을 상실한다. 원 사장의 경우 1심 선고라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그가 항소할 경우 최종심까지는 사장직을 내려놓지 않아도 된다.
금융당국과 여론의 향배에 따라 원 사장의 행보가 달라질 가능성은 있다. 이는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처한 상황과도 비슷하다. 결국 원 사장의 사례가 당국 및 여론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풍향계가 되는 셈이다.
다만 경영실적만 볼 때 물러날 이유가 없다는 점이 변수다. 올해 카드업계를 둘러싼 최악의 경영환경, 코스트코와 독점계약 만료라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삼성카드 실적이 지난 해보다 소폭이나마 증가하고 삼성카드 주가 역시 4만 원대를 넘기며 고공 행진하고 있다.
내년에도 카드업계의 상황이 좋지 않고 그룹 전체에 드리운 ‘사법 리스크’로 경영 불확실성이 짙어진 만큼 그룹 내 ‘베테랑’으로 꼽히는 원 사장을 남겨둘 가능성 역시 배제하기 어렵다.
한 재계 관계자는 "법원 판결후 삼성그룹이 즉각 반성문을 내는 등 종전보다 노조문제에 전향적 태도를 보인 이유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 줄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면서 "같은 맥락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원 사장을 그룹에 남겨두는 것 역시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원 사장이 만약 항소하면 재판이 장기간 이어져 경영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