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와 함께 한 옥류천 산책
정조와 함께 한 옥류천 산책
  • 김준혁
  • 승인 2019.12.1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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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이 정조의 포용-리더십 본받아 국민 위한 따스한 정치 해주길

[김준혁 칼럼] 1781년(정조 5) 9월 3일, 정조는 규장각 전·현직 직제학(홍문관·예문관·규장각 정3품)인 정민시, 서호수, 심염조, 호조참판 강세황과 함께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玉流川) 계곡으로 들어갔다. 옥류천 일대는 가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계곡에서 흘러내린 시냇물이 여름철만큼은 아니었지만, 창덕궁 옥류천의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정조가 신하들과 함께 후원의 옥류천을 산책한 것은 표암 강세황이 자신의 어진(御眞)을 그린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기도 하였다. 강세황은 단원 김홍도의 스승으로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이라 불렸다. 정조는 며칠 전 8월 26일, 강세황에게 어진을 그리게 하고, 9월 1일 완성한 초상화를 규장각에 봉안하게 하였다. 국왕으로 즉위하고 나서 첫 어진이었기에 정조의 기쁨은 남달랐을 것이다.

창덕궁 안, 국왕만의 공간을

이틀 후인 9월 3일에 어진을 친람하고 더불어 규장각에 근무하는 강세황도 보기 위해 규장각을 찾았다. 정조는 얼마 전 읽은 책의 문구를 병풍으로 만들어 자신의 서재에 두고 싶다며 그 글귀를 강세황이 직접 써 주기를 부탁한다. 그러면서 더욱 당황스럽게 글씨를 쓴 후 놀 것인지, 놀고 나서 글씨를 쓸 것인지를 물어본다. 평소 학문 연구과 정치적 토론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국왕인지라 대답을 머뭇거린다. 그런 강세황에게 글씨는 후에 쓰자며 정조는 규장각에 있는 모든 신하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다.

정조가 앞장서서 걸어간 곳은 놀랍게도 옥류천 계곡이었다. 창덕궁 내에 가장 신비로운 공간인 이곳은 종친과 경재(卿宰·재상) 등과도 연회를 베풀지 않는 국왕만의 공간이었다. 궁궐의 궐내각사 공간인 외조(外朝), 인정전과 선정전 등 국왕의 정치공간인 치조(治朝), 그리고 희정당과 대조전 등 내조(內朝)의 공간에서 능선을 넘어선 연조(燕朝) 공간이었다. 다시 말해 옥류천은 국왕만의 신성한 공간으로, 궁궐의 다른 그 어떤 공간 하고도 위상이 다른 곳이다. 국왕의 전유물인 이 공간을 정조는 신하들에게 개방하고 이들과 함께 산책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진을 그린 강세황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도 조선 역사상 전례 없는 옥류천 일대의 개방은 상상할 수 없는 파격 그 자체였다. 신하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뻐했다. 더욱이 앞장서서 신하들에게 그곳의 정자와 꽃에 대해 설명까지 하였다. 정조와 함께 옥류천 계곡을 산책한 강세황은 “어찌 우리 임금께서 몸소 이 미천한 신하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뛰어난 경치를 하나하나 일러주시고 온화한 얼굴과 따뜻한 음성으로 한 식구처럼 하신 것과 같겠는가! 내가 어떠한 사람이건데 이와 같이 성스럽고 밝은 세상에서 다시없을 은혜를 받았단 말인가. 멍하니 하늘 상제의 세계에 오른 꿈에서 깨어났나 의심했다”며 호가유금원기(扈駕遊禁苑記)에 기록했다. 정조는 또 규장각 앞의 부용지(芙蓉池)에서 신하들과 함께 낚시를 하고, 그들과 유쾌하게 술 한 잔을 마시며 나라와 백성들의 삶을 이야기 했다.

신하와 함께, 정치도 함께

이처럼 조선 역사상 처음이었던 정조의 창덕궁 옥류천 군신동행(君臣同行)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다. 정조는 궁중 내 금단(禁斷)의 공간인 옥류천을 활용해 즉위 초반부터 자신의 정치구상을 실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했다. 당파가 다른 신하들과 함께 산책을 하면서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들을 하나로 모으고자 한 것이다. 소중한 자신만의 공간을 신하들에게 선뜻 내어줌으로써 신하들은 정조의 의도를 십분 이해하게 됐으며, 그가 제시하는 개혁정책을 받아들이고 도모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정치 개혁 추진과 경제적 안정이 이루어졌고, 정조는 오늘날까지 개혁의 아이콘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검찰개혁에 대한 찬반과 내년 총선에 따른 패스트 트랙 대립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정치적 협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한 때일수록 정치인들이 정조의 포용과 리더십을 본받아 국민을 위한 따스한 정치를 해주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글쓴이 / 김 준 혁
·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교수(한국사 전공)
· 국제기념물유적협회(ICMOS) 한국위원회 위원

· 저서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여유당출판사)
〈정조와 다산의 꿈이 어우러진 대동의 도시 화성〉(더봄)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전투〉(한신대학교 출판부)
〈조선의 최강 군대 장용영〉(더봄)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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