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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잃으면 국가가 아니다
정의를 잃으면 국가가 아니다
  • 장태평
  • 승인 2019.10.1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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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평 칼럼] 대한민국의 현재는 참으로 무섭다. 정치가 전쟁이 되었다. 반대파는 적이고, 적은 죽여야 한다. 지금은 옳고 그름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우리 편이 이겨야 한다. 권력은 원래 그런 속성이 있다. 형제간이나 부모 자식 간에도 내 편이 아니면, 많은 사람이 죽고 피를 흘렸다. 원시적인 권력싸움이다.

사람이 깨이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권력싸움의 규칙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권력싸움에서 졌다고 죽지는 않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에너지가 절약된다. 당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국가 발전을 논의하게 되었다. 정치가 생존게임보다는 정책게임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가 원시로 되돌아가고 있다.

조국 사태는 각목을 들고 구역 쟁탈을 하는 조폭 싸움과 같이 되었다. 수백만 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조국의 장관 임명을 철회하라고 농성했다. 이에 반하여 친여 세력은 조국 수호 집회를 통해 오히려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은 조국의 거짓만큼이나 어이가 없었다. 사슴을 말이라 우기는 지록위마(指鹿爲馬)에 다름 아니다.

조국은 도덕적 양심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범죄 혐의가 짙은 사람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반하는 사회주의자이다. 진행 중인 수사 혐의는 대법원 판결 시까지 무죄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장관 인사 청문 절차는 의미가 없다. 고위 공직자는 국정을 담당할 능력과 함께 도덕성과 국가관이 확실해야 한다.

조국은 장관직을 사퇴했다. 그러나 사태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조국은 사퇴의 변에서 개혁을 위해 자기 역할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자기 잘못을 반성하지 않았고, 대통령도 여권도 야권의 정치적 압력으로 조국이 사퇴한 것이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아직도 잘못을 모른다. 진정으로 잘못을 알게 될 때까지 사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 국가에 정의와 법의 지배가 무너진다면, 국가가 아니다. 약육강식의 정글일 뿐이다.

임진왜란 1년여 전 조선은 일본에 통신사를 보냈다. 일본의 전쟁준비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정사 황윤길은 돌아와서 전쟁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하는데, 부사 김성일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우겼다. 유성룡이 김성일에게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어찌하려고 그러느냐고 묻자, “저라고 어찌 왜인들이 끝내 움직이지 않으리라 생각하겠습니까? 황윤길의 말에 경향 각지가 놀라고 미혹될 것이기에 그럴 따름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성일은 전쟁이 난 후 책임을 통감했고, 전쟁 발발 후에 일본군과 싸우는 중에 병사했다. 김성일은 집권당이었고, 야당인 황윤길이 민심을 혼란시키면 정권이 흔들리게 된다는 걱정을 했다. 그 결과 국가를 존망의 위기에 빠뜨리고, 국민을 총칼에 도륙 당하게 하고, 온갖 고통을 겪게 하였다. 무엇으로 그 죄를 씻을 수 있겠는가. 지금 정의가 사라진 편가르기 정치가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정치의 근본을 공자는 바르게(正) 하는 것이라 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공의가 심판의 기준이다. 국가에는 정의가 바로 서야 한다. 누군가가 존경한다는 호치민의 관사에 가보았다. 옛 총독이 살던 멋진 관사는 혼자 살기에는 너무 커서 정부청사로 사용하도록 하고, 자신은 전기공들이 거주하던 곳에 살았다고 한다.

호치민의 검소한 삶의 현장을 보면서, 베트남 통일의 힘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호치민의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철학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지도자는 정의감과 원칙이 바로서야 한다. 그것이 애국심이다. 지도자는 하늘과 국민과 역사가 심판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여권의 조국 지지는 불의이다. 사회정의를 팽개치고, 편협한 집단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공의를 잃은 정치는 실패한다. 이제 거짓 정치를 멈추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의 ‘억지정치’를 일대 전환하지 않는 한, 사태는 끝난 것이 아니다. 조국 지지 팻말을 들고 나왔던 사람들이 거리의 야유와 질시에 가책을 느끼던 것을 집권 세력이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수많은 국민이 거리로 나온 것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목불인견의 심정에서 나온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무서운 시간’이 지금 우리 국민의 절규라는 것을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거 나를 부르는 게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장태평 ( taepyong@gmail.com )

(재)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
(전) 한국마사회 회장
(전) 제58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전) 기획재정부 정책홍보관리실장,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전) 농림부 농업정책국장, 농업구조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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