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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블랙홀’ 사라졌다...“이제 경제로 눈 돌리자”
‘조국 블랙홀’ 사라졌다...“이제 경제로 눈 돌리자”
  • 권의종
  • 승인 2019.10.1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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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무너지면 되는 일 없어... 신물 나는 정치타령, 극심한 갈등 그만 끝내고, “다시 경제로”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강한 자도 쉽게 쓰러진다. 고대 로마제국의 멸망도 사소함에서 비롯되었다. 로마는 제정 말기 팽창정책을 쓰면서 세입보다 세출이 더 많았다.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네로 황제는 서기 64년 묘안을 떠올렸다. 로마 대화재 후 재건과 도심 개조를 겸한 재원확보를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은전을 주조할 때 구리를 살짝 섞어 은 함량을 줄인 주화를 대량 유통했다. 주화의 구리 함량이 적어 일반인은 알아보지 못했다.

후대로 가면서 왕들은 은전의 구리 함량을 늘려갔다. 은전은 그 가치의 2/3를 상실했다. 고티쿠스 황제 시절인 244년 이후에는 은의 함량이 1/20로 줄어들었다. 은전으로 발행된 화폐는 누가 봐도 구릿빛 확연한 동전(銅錢)이었다. 시민들의 은전 기피는 당연했다. 이방인들도 로마에 파는 상품 대금으로 은전 수령을 거부했다. 로마 군대가 이국에 주둔할 때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경비로도 은전 데나리우스를 받지 않았다.

더 가관이었던 것은 나라가 세금을 징수할 때 자기들이 만든 은전을 기피하고 순수 은괴로만 내게 한 점이었다. 은전이 시장에서 교환가치를 잃고 은전을 매개로 한 상거래가 불가능해졌다. 물물교환이 출현했다. 도시인끼리 물물교환을 해봤자 농촌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구할 수 없었다. 농촌 사람들이 돈 받고 식량을 팔지 않자 도시인들은 자기 물건을 갖고 농촌에 내려가 식량으로 바꿔야 했다.

물물교환 경제가 성행하다 보니 도시 시장이 무너졌다. 살길이 막막해진 도시인들이 대거 시골로 내려갔다. 시골에 가도 자기 땅이 없다 보니 영주한테 몸을 의탁해야 했다. 영주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지대를 바쳤다. 영주 농장에서 농사도 지어주었다. 농부와 노예의 중간신분인 이들을 농노(農奴)라 불렀다.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때가 서로마제국을 끝으로 고대를 마감하고 중세 장원경제의 서막을 여는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다.

위조 화폐에 무너진 로마...국가 몰락, 백성 고통 부르고, 고대서 중세로 역사 흐름 바꿔

역사는 이 시기를 암흑의 중세라 부른다. 그리스 로마의 찬란했던 사상과 철학, 문학과 문명이 어둠 속에 잠겼다. 역사의 진보도 멈췄다. 훗날 막스 베버는 로마제국의 멸망은 상거래 감소와 물물교환 경제의 확대가 주원인이었다고 진단했다. 경제 파탄이 국가 몰락, 백성 고통을 초래했고, 고대에서 중세로 역사의 흐름까지 바꿔 놓은 셈이다.

막강 로마제국이 경제적 요인으로 무너진 것은 역사의 의문이다. 로마제국의 몰락은 한국 경제에게도 소중한 교훈을 선사한다. 첫째, 시장 경제를 무시한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부의 원천이 오로지 농업에 있는 것으로만 믿고 상업을 경시했던 당연한 귀결이었다. 상업의 쇠퇴는 시장 경제를 무너뜨리고 결국 로마제국까지 쓰러뜨린 것이다.

우리 경제를 로마제국 당시와 비교하는 건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양자 간 유사점이나 없는 것도 아니다. 남북관계 교착,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 한일 무역 갈등 지속 등 대외 요인과 함께 국내적으로 경제난에 시달리는 게 작금의 우리 현실이다. 각종 대내외 악재에 시달렸던 로마제국 말기와 흡사하다. 경제가 온갖 정치적 이슈들에 가려 국정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있는 것도 닮은꼴이다.

둘째, 국민 불신이 국가 멸망의 단초가 되었던 점도 주목할 만하다. 폭발적 인플레이션이 화폐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실물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국가 통화시스템을 무너뜨렸다. 인플레이션 앞에서 거대 제국도 맥없이 무너질 수 있음을 로마가 현실로 보여주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인플레이션보다 더 위험한 디플레이션 공포에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지만 기업과 국민은 벌써부터 경기침체의 한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경제는 이론이 아닌 실제, 말로 적당히 때울 수 있는 정치와 달라...현실로 결과 보여줘야

불신이 위기를 부른다. 정부는 지난해 초 연말이 되면 경제가 좋아질 것으로 자신했다. 연말이 되어도 경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또 다시 올 하반기가 되면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호언했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지만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 들어 정부는 또 말을 바꾼다. 경제가 어렵지만, 방향은 제대로 가고 있다는 자평을 내놓고 있다.

청와대는 경기 하강의 원인이 반도체와 세계경기 둔화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펼친다.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싶지만 그간 하도 그런 말을 자주 듣다보니 이제는 변명으로밖에 안 들린다. 도대체 국민을 뭐로 보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로 여기는지. 속상함과 분함보다 위기의식 부재의 정부가 되레 더 걱정이 된다.

셋째,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정치도 성립할 수 없음을 일깨워줬다. 로마제국 몰락 이후 중세의 역사는 천년의 암흑세계를 견뎌야 했다. 후기 로마의 정치적 불안정과 무역활동 침체가 제국 몰락의 직격탄이 되었다. 이에 견주어볼 때 작금의 우리 형편도 안심할 상황은 못 된다. 조국 사태로 야기된 정치 불안과 국민 갈등의 여진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작년 12월 이후 내리 10개월째 추락하는 수출 동향과 성장률 저하도 예사롭지 못하다.

경제는 이론이 아닌 실제(實際)다. 말로 적당히 때울 수 있는 정치와 사뭇 다르다. 현실로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그리스 아고라 광장에서 시작된 고대 민주주의도 아테네의 탄탄한 경제기반 위에서 태동할 수 있었다. 검찰 개혁, 선거법 개정 등 어느 정치적 사안도 긴급성과 중요성 면에서 경제에 비할 바 못된다. 경제가 무너지면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 나라와 백성은 고달파진다. 신물 나는 정치 타령, 극심한 갈등은 그만 끝내자. 이제 경제로 눈 돌리자.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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