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民願)이 민원(民怨)'...한국, '민원왕국' 오명 벗을 때도 됐다
‘민원(民願)이 민원(民怨)'...한국, '민원왕국' 오명 벗을 때도 됐다
  • 권의종
  • 승인 2019.09.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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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하는 금융 민원, 귀책사유 찾아내 근본대책 마련해야...사후 해결보다 사전 예방이 방책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다 좋은 직업은 없나보다. 국회의원은 선거만 없으면 할 만하다고 한다. 성직자는 설교만 없으면 해볼 만하고, 교수는 강의만 없으면 지낼 만하다는 얘기다. 최근 법무부장관 임명을 보면 장관도 청문회만 없으면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얼핏 들으면 우스갯소리 같지만 말 가운데 뼈가 들어 있다. 힘들고 싫은 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새기고 싶다.

공직자도 싫은 게 있다. ‘민원(民願)’이다. 한번 휘말리면 좀처럼 헤어나기 힘든 곤욕 중의 곤욕이다. 조직 내 감사 부서는 물론 외부 기관에까지 불려 다니기 일쑤다. 조사와 심문을 받느라 혼쭐이 난다. 내용 소명과 자료 제출로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정상적 업무처리에도 당할 때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빈총도 안 맞은 것만 못하다고, 발생 자체만으로 당사자에 엄청난 고통을 안기는 게 민원 아닌가.

조직 내 눈총부터 싸늘해진다. 다른 사람에게는 생기지 않는 민원이 유독 특정인에게만 생긴게 대한 주변의 측은지심이 더 견디기 힘들다. 이럴 땐 드러내놓고 변명도 어렵다. 더욱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의 민원 발생은 필연적이다. 합리적 결정이 내려져도 불리해지는 쪽은 불만을 토로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결정하면 저쪽에서, 저렇게 결정하면 이쪽에서 들고 나오기 예사다. 이래저래 죽어나는 건 공직자다.

공직자도 사람이다. 민원을 당하고 나면 일하기가 싫어진다. 민원인 대하기가 겁나고 부담스럽다. 대인공포증도 겪는다. 동료의 고통을 목격한 여타 공직자들 역시 몸조심에 들어가게 된다. 징계와 질책이 일벌백계가 되기도 하나, 파생되는 역기능도 경계해야 한다. 소극적이고 보신적 업무처리로 자칫 국민 불편과 불이익을 가중시킬 수 있다. 개선이 개악이 되고, 민원이 민원(民怨)을 살 수 있다.

공직자의 혐오 대상, ‘민원’...업무 처리에 일벌백계되기도 하나, 파생되는 역기능도 경계해야

금융관련 민원도 예상을 뛰어 넘는다. 올해 상반기 중 금융 민원이 4만 건에 육박한다. 금융소비자가 금융감독원에 방문하거나 인터넷 등을 통해 접수한 민원 건수가 3만 9,924건에 이른다. 근무일수를 기준할 때 하루 평균 332건 꼴이다. 권역별로는 보험 민원이 압도적이다. 전체의 61.9%, 2만4,760건이다. 이어 비(非)은행(8,452건), 은행(4,674건), 금융투자(2,038건) 순으로 민원이 많다.

카드사·저축은행 등 비은행을 제외한 모든 금융업 권에서 민원이 증가했다. 증권·투자 자문 등 금융투자 부문에서 17.7% 급증,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KB증권, 미래에셋대우증권 등 대형 증권사의 연이은 전산 장애로 보상을 요구하는 투자자 민원이 몰려서다. 보험과 은행 민원도 각각 1.6%, 1.4% 증가다. 생명 보험의 상품 설명 부실 등 불완전 판매 민원이 늘어난 탓이다.

손해보험도 보험사의 보험금 산정과 지급에 문제가 있다는 민원이 많아졌다. 자동차 보험의 적자가 커지자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심사를 강화하면서 보험금 산정을 둘러싼 분쟁이 증가한 결과다. 2016년부터 집중적으로 판매된 치아보험도 보험 가입 후 일정 기간 치료비를 보장하지 않는 면책 기간 2년이 지나 계약자의 보험금 청구가 늘면서 민원이 함께 증가했다.

은행 민원은 주로 인터넷·폰뱅킹 등 금융 사기나 개인 신용정보 유형이 늘었고 대출과 예·적금 민원은 줄었다. 비은행 민원은 작년 상반기보다 9.5% 감소했다. P2P(Peer-to-Peer·개인 간) 회사를 상대로 한 투자자 민원이 71% 급감한 영향이다. “P2P 금융의 투자자 보호 법규가 미비해 민원 처리에 한계가 있다는 점 등을 소비자가 인식한 때문이라는 금감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금융회사의 환골탈태 시급...금융소비자보호 선진화 절실 속 소비자들도 함께 대오각성 해야

심각성은 민원 건수에 머물지 않는다. 민원이 줄지 않고 있는 현상을 눈여겨봐야 한다. 민원 발생은 어느 한쪽의 귀책으로 돌리기 어렵다. 감독기관, 금융회사, 소비자의 공동 책임에 해당한다. 주체별로 산재되어 있는 귀책사유를 면밀히 살펴 근본 치유책을 마련해야 한다. 형식적인 대증치료에 그치면 민원 발생이 줄기는커녕 되레 늘어날 수 있다. 지금까지처럼 말이다.

금융회사의 환골탈태가 급하다. 불완전판매 관행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 일단 팔고보자는 마구잡이식 영업은 커다란 사회적 해악이다. 지난 날 키코 사태나 최근 불거진 파생상품 판매처럼 고위험 상품을 소비자에게 무작정 떠넘겨 피해를 끼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보험도 정직해져야 한다. 권유할 때는 모든 걸 다 보상할 것처럼 떠들지만, 막상 사고가 나면 어떻게든 보험금 지급을 기피하는 이중성이 문제다. 사기나 진배없다.

소비자보호도 선진화되어야 한다. 금융회사의 영업행위에 대한 철저한 감독으로 공정한 금융거래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가 시장에서 적절히 공시되도록 해야 한다. 소비자 불편사항에 대한 상담과 민원처리, 분쟁조정으로 소비자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소비자 금융역량 향상을 위한 금융교육 프로그램 가동 역시 필수적 과제다.

소비자의 대오각성도 요구된다. 툭하면 민원부터 제기하는 습성이 문제다. 금융 민원만 하더라도 단순 불만이나 업무처리 개선 요구 사항이 2/3를 점한다. 우호적 방법으로 얼마든지 해결 가능한 사안들이 주류다. 민원은 남발되어 좋을 게 없다. 개인적 부담과 사회적 비용만 낭비한다. 사후적 해결보다 사전적 예방이 낫다. 소비자 피해가 생기기 전에 대비하는 게 상책이다. 예방만한 치료가 없다. ‘민원 왕국’ 대한민국, 그 오명 이제 벗을 때도 되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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