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 국산화’, 일본 수출 규제에 맞설 수 있을까?
‘소재·부품 국산화’, 일본 수출 규제에 맞설 수 있을까?
  • 권의종
  • 승인 2019.08.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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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검’, 잘 쓰면 득, 잘못 쓰면 해... 국산화 다급하나, ‘국산화 만능주의’는 경계의 대상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국산화’가 긴급 화두다. 당장 발등의 불이다. 한일 경제전쟁에서 소재 국산화가 국가적 현안으로 떠올랐다.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결의되던 날 문재인 대통령이 즉각 대응했다.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가해자인 일본이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큰소리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이 한일 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며 국제조약을 어겼다”며 맞섰다.

결국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되었다. 일본에서 소재와 부품을 공급받아 온 국내 기업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나섰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대책 추진을 발표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 과 동시에 국내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의 독자적 발전 에 대한 총력전을 선포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 등 6개 분야의 핵심 품목 100가지가 국산화 대상이다. 국내 공급망을 신설하거나, 대체 수입선을 통해 공급 안정화를 꾀하기 위함이다. 수급 위험이 크거나 시급히 공급 안정이 필요한 20개 품목은 1년 안에 공급을 안정시키고자 대체 수입국을 확보하기로 했다. 통관의 간소화나 관세 경감 등 제반 세제 혜택도 수반된다.

취약 품목이나 핵심 장비 등 80개 품목은 5년 내 공급안정화를 목표로 둔다.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만큼 자체 공급역량 확보를 주목적 으로 한다. 연구개발에는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되어 상대적으로 빠른 연구개발이 가능하도록 한다. 또 기업 간 협력모델 구축 및 연구, 생산, 투자, 육성 지원 등 산업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경쟁력 강화를 물색하는 것도 주된 내용이다.

일본 정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 제외...우려했던 일 현실화, 양국 간 일촉즉발 위기 국면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자 대학, 연구소가 나섰다. 국산화 지원 전담반을 구성하는 등 긴급 대응전략 마련에 부산하다. 고부가가치 소재 개발, 원천기술 확보와 관련된 세미나와 토론회가 연일 도처에서 열린다. 언론이나 전문가의 제안과 진단이 백가쟁명을 이룬다.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의 지원 대책도 봇물처럼 쏟아진다. 가히 ‘대책 풍년’이다.

국산화가 다급하다. 당위성에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타국의 제제로부터 자국 산업의 자유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만한 대안이 없다. 일본 기업들이 독점에 가까운 우월적 지위를 이용, 공급 가격이나 물량을 조절하며 우리 산업을 옥죄는 작금의 현실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참에 우리 부품산업의 성장을 위한 전화위복의 결정적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문제는 요구되는 품질을 얼마나 빨리 얻을 수 있느냐다. 부품ㆍ소재별로 다를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본의 수출 규제가 지금이 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기술 선진국이다. 유럽을 넘어서는 기술 강대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대응하려면 감정적 반응보다 이성적 판단에 기초한 실사구시의 지혜로운 전략이 긴요하다.

긴급 처방에 그쳐서도 안 된다. 한발 더 나아가 국산화의 가치, 목적, 비전을 명확히 하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중장기 대안까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의 시각으로 미래를 내다보면 안 된다. 좀 더 멀리 보는 긴 안목으로 정책을 추진함이 마땅하다. 매사가 그러하듯 정책 역시 시작보다 지속과 완성이 어렵다. 힘도 더 든다. 긴 호흡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긴급 처방으론 한계...국산화 비전 명확히 하고, 멀리 보는 긴 안목으로 정책 추진해야

향후 갈등 국면이 해소되거나 호전될 경우 국산화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 상황이 바뀌면 정책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지금의 국산화 대책이 언제까지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정부가 바뀌고 여건이 달라지면 흐지부지될 공산이 작지 않다. 지난 날 부품·소재·장비 국산화 정책들이 하나같이 용두사미로 끝난 것도 이런 이유가 컸다.

정부 주도의 국산화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국산화를 핑계로 정부가 국내 대기업에게 경쟁 우위의 외국 제품을 놔두고 국산품 구매를 강요하기 어렵다. 소재 생산 국내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수입 불가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국산화 지속을 권장하기 힘들다. 시장경제 원리와 국제무역 비교우위의 이점을 포기하라는 얘기가 통할 리 없다. 모든 것을 국산화할 수 없고, 국산화만으로 문제 해결도 어렵다. 국산화 ‘만능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경쟁국이 우리의 국산화 의지를 흔들어댈 수 있다.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가 그 생생한 사례다. 얼마 전 일본 정부가 국제 여론과 자국 기업의 실리를 따져 수출 허가를 슬그머니 내줬다. 수도꼭지를 잠갔다 풀었다하는 식으로 우리의 국산화 노력을 방해하려는 의도일지 모른다. 우리가 기술개발에 성공하고 나면 경쟁국이 가격을 떨어뜨려 상용화를 무력화시킬 위험도 상존한다.

국가별 대체품이 많은 품목은 국산화보다는 해외기술 도입이나 기업인수 지원에 주력하는 게 낫다. 국산화과 함께 공급 국가 다변화, 판매업체 다각화를 병행 추진하는 게 맞다. 삼성,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도 소재를 다수 업체에서 조달했으나 국가별 분산은 이루지 못했다. 공급 업체가 모두 한 나라, 일본이었던 게 화근을 불러왔다. ‘양날의 검’, 국산화 대책. 잘 쓰면 득이고, 잘못 쓰면 하면 해가 된다. 사용법을 익혀 잘 활용해야 한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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