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세대간 갈등’이나 ‘부자간 싸움’ 되면 안 된다
정년 연장, ‘세대간 갈등’이나 ‘부자간 싸움’ 되면 안 된다
  • 권의종
  • 승인 2019.06.0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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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걸리더라도 진지한 논의 거쳐 대타협 이뤄내는 게 중요... 정부는 입 다물고 귀 쫑그려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정부가 정년 연장의 말머리를 꺼냈다.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라는 경제부총리의 발언이다. 범정부 인구구조개선 대응 태스크포스에서 집중 논의 중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참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려는 기세다. 대법원이 지난 2월 육체노동자로 일할 수 있는 최고 연령을 기존의 만 60세에서 65세로 올려 판결했다. 일단 분위기는 무르익은 셈이다.

정년이란 공무원이나 회사의 직원이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퇴직하도록 정해진 연령을 뜻한다. 법령과 사규에 정년을 명시한 것은 고용주가 정년까지 종업원의 일자리를 보장하라는 게 본래취지였다. 지금에 와서는 의미가 달라졌다. 정해진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 일을 그만두고 나가라는 강요가 바닥에 깔려있다. 일자리가 그만큼 귀해졌다는 반증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인구로 이동을 시작했다. 2025년이면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세계 최단기의 기록이다. 생산가능 노동력의 감소 추세가 벌써부터 뚜렷하다. 국내 노동시장에서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가 크게 줄고 있다. 경제주축인 이들 인구가 2029년까지 연평균 32만5천 명가량 감소할 거라는 통계청의 전망이다.

이대로 가면 소득과 소비가 꺾일 걸로 보인다. 경기침체와 성장률 저하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정년이 65세로 늘어나면 노년 부양비 증가 속도가 9년이나 늦춰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정년 연장이 더 이상 늦추기 힘든 긴급 현안이 되고 말았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라도 문제 해결에 나서려는 정부의 뜻이 가상하다. 높이 살만하다.

고령화 시대 맞아 생산가능 인구 격감...이대로 가면 소득·소비 꺾이고 성장률 저하로 이어져

정년 연장의 당위성은 충분하나 방법론이 문제다. 경제주체별 입장이 각기 다르고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의견 수렴과 사회적 합의가 쉬울 리 없다. 가뜩이나 심각한 청년실업에는 직격탄이다. 경제부총리는 “앞으로 10년간 베이비부머 세대(1955~63)가 연 80만 명 떠나고, 젊은 세대 즉 지금의 10대가 40만 명 들어오는 걸 고려하면 이런 우려는 완화될 것”이라는 답변이다.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정년 연장은 단순히 일자리 수나 취업자 인구 등의 총량적 셈법으로 장담할 사안이 아니다. 난제 중의 난제라 할 수 있다. 경영계, 노동계, 국민연금 등 여러 부문과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엉켜 있다. 달랑 정년 연장의 여부나 시기만 놓고 좁게 바라봤다간 엉뚱한 결론에 이르기 쉽다.

6하 원칙이 해법이 될 수 있다. 정년 연장은 ① 어떤 일자리에, ② 누가 그리고 어떻게, ③ 언제까지 일하는 게 좋을지 3가지로 압축시켜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 첫째는 일자리의 양과 질은 물론 향후 고용구조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야 하는 게 우선 과제라 할 수 있다. 미래의 인력 수요와 공급을 면밀히 예측, 정년 연장을 포함한 일자리 청사진을 정교하게 마련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일자리 변혁이 이미 진행 중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무인자동화  기술 등이 일자리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에서부터 택배기사, 방수공, 구두미화원 등에 이르기까지 전 산업의 모든 직종이 대체되거나 소멸될 위기에 처해있다. 과학기술이 인간의 고유 능력을 대체하기 어렵고, 되레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거라는 한담(閑談)이나 나눌 계제가 아니다.

정년 연장은 어떤 일자리에, 누가 어떻게, 언제까지 좋을 지, 세가지로 압축시켜서 접근 가능

둘째, 한정된 일자리를 누구에게 우선하여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긴요하다. 인구통계적 요인 말고도 고려할 사항들이 한 둘이 아니다. 청년고용이 중시되어야 하는 게 마땅하나,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 세대 갈등이나 부모 자식간 일자리 싸움으로 번지면 더 큰일이다. 저출산, 고령화, 연금개혁 등의 이슈들과 연계시켜 폭넓은 논의가 요구된다. 임금체계 개편, 고용시장 구조개선 역시 함께 검토되는 게 타당하다.

다른 사안들은 그대로 둔 채 달랑 정년 연장만 결정하게 될 경우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사회적 불신만 키울뿐더러 정부나 기업들도 감당이 어렵게 된다. 지난 해 8월 비근한 실례(實例)가 있었다. 정부가 연금 의무가입 연령과 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각각 5년과 3년씩 늦춰 65세까지 납부하고 68세부터 받는 방안을 내놨다가 혼쭐이 났다. 거센 역풍 앞에서 주무 장관이 나서 초안이라며 겨우 사태를 수습했다.

셋째는 정년 시기를 언제로 정할 것이냐의 문제다. 정답이 있을 리 없다. 차라리 시장 자율에 맡기는 게 합리적 대안일 수 있다. 각양각색의 기업들 사정을 감안치 않고 정년 연령을 획일화하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 규제일 수 있다. 최소의 가이드라인만 정하고 기업 형편에 맡기는 게 방책이 될 수 있다. 자체에 미국이나 영국처럼 아예 정년을 폐지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다. 나이를 확정하면 얼마 못가 추가 연장의 재론에 휩싸이기 쉽다. 연례행사가 될 수 있다.

경위야 어쨌든 논의가 촉발된 만큼 지나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 2016년부터 시행된 현행 60세 정년도 안 지키는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혹여 정부 의도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지는 자리가 되어서도 곤란하다. 그러려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시간이 걸리고 진통을 겪더라도 진지하고 신중한 논의를 거쳐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는 게 중요하다. 정부는 입 다물고 귀만 쫑그리면 된다. 현장의 목소리에 답이 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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