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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한 ‘소비자 패싱’...정부-업계 싸움에 실종된 소비자주권
만연한 ‘소비자 패싱’...정부-업계 싸움에 실종된 소비자주권
  • 권의종
  • 승인 2019.06.0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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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승차공유-원격의료-제3 인터넷은행 등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 소비자 안 보여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중소기업은 상시 구인난이다. 실업률 고공행진의 요즘도 종업원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다. 외국인 노동자로 근근이 버티고는 있으나 그마저도 인원 제약으로 맘대로 못 쓴다. 내국인 지원자는 가뭄에 콩 나듯 한다. 놀랍게도 최근 들어 대기업 출신 지원자가 생기고 있다. 이력서를 받아 쥔 중소기업 사장의 손이 떨린다. 남들은 못 들어가 안달인 대기업을 버리고 제 발로 중소기업을 찾는 이유가 궁금해서다.

대기업에 비해 고용이 불안정하고 급여와 복리후생이 뒤지는 곳으로 이직하려는 사연이 뜻밖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이다. 2018년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근무시간이 하루 8시간으로 줄어든 게 원인이다. 근무시간이 줄면서 급여가 감소, 생계 위협을 견디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손해인줄 뻔히 알면서 직장을 옮길 수밖에 없는 남모를 속사정이 숨어있었다.

주 52시간이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남의 일 같지 않다. 2년 후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제도가 전면 시행되면 이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그런 줄 알면서 내린 결정이라 더 안쓰럽다. 중소기업에서야 우수 경력자를 뽑을 수 있어 나쁠 리 없다. 웬 떡인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의 생계를 위해 안정된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딱한 처지는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전국 버스노조 근로자는 행복했다. 시민의 발을 담보로 파업 카드를 무기로 내세울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공공요금 인상과 정부 지원을 얻어냄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생색은 정부가 내고 과실은 업계가 따먹었다. 피해와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 되었다. 자구책이 있을 리 없는 힘없는 근로자로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그저 부러울 뿐이다.

‘주 52시간제’ 쓰나미 피해 대기업 직원 중소기업 이직...근로시간 축소가 소득 감소로 이어진 탓

근로자를 돕겠다고 추진된 제도가 되레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주 52시간제가 쓰나미가 되어 ‘난민 근로자’를 양산하고 있다. 이런 이율배반이 없다. 편익을 누려야 할 근로자가 피해자로 전락되는 현실이 쉽게 믿기지 않는다.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과 역기능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정부 탓이 크다. 디테일 부족과 준비 소홀이 초래한 자업자득이다.

‘소비자 패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늘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정책이 논의되고 결정되는 과정에 있어야할 소비자가 안 보인다. 아예 쏙 빠져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협상 당사자나 의사결정자의 안중에 소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기득권층의 반발, 관료의 보신주의, 표만 의식하는 정치권의 포퓰리즘까지 가세해 소비자를 왕따 시키고 있다.

승차공유, 원격의료, 제3호 인터넷전문은행 등 일련의 논의 과정이 하나같이 그랬다. 정부와 업계 간 부질없는 언쟁이 난무하고 자기주장만 횡행했다. 소셜미디어 설전도 볼만했다. 소비자를 염두에 둔 논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신중 모드다. 자신감도 없어 보인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외부에 맡겨 해결하려는 풍조가 몸에 밴 듯 하다. 인터넷은행 신설만 해도 자문기구에 불과한 외부평가위원회의 반대를 이유로 불허 결정을 내린 금융당국이다.

소비자를 가볍게 보기는 업계도 다를 바 없다. 오십보백보다. 기존 업계는 물론 신규 사업주체들 공히 저만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국민의 눈에 좋아 보이지 않는다. 자기 이익만 지키려다 보면 모두가 피해자가 될 공산이 크다. 경쟁을 통한 자력갱생으로 생존과 발전을 도모하는 게 정도(正道)다. 정부 지원은 일시적 도움은 될지언정 항구적 생존까지는 보장하지 못한다.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소비자 만족...정부는 경쟁 무대 만들어 주고 공정한 관리자 역할에 그쳐야

소비자 선택이 업계의 운명을 가른다. 소비자 만족을 위한 최선의 해법은 혁신에 있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혁신을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낡은 것은 계속 파괴하고 새로운 것은 창조하면서 끊임없이 혁신해 가는 과정으로 풀이했다. 창조행위에는 불가피한 희생이 뒤따름을 뜻한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버려야 얻을 수 있는 이치다.

혁신은 경쟁을 통해 극대화된다. 경쟁의 가치는 어떠한 경우에도 누구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다. 시장경제의 핵심 동인(動因)인 때문이다. 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소비자 만족에 맞춰져야 한다. 정부는 다양한 경제주체들의 경쟁할 무대를 만들어주고 공정한 관리자의 역할에 그쳐야 한다. 독과점, 불공정의 패해가 우려될 때나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가 인허가 등의 각종 규제를 틀어쥐고 시도 때도 없이 시시콜콜 간섭을 하게 되면 혁신은 질식되고 만다. 신기술, 신사업, 신제품이 탄생되기 어렵다.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와 더불어 정부의 경제정책 3대 축인 혁신성장은 공염불에 그친다. 소비자 만족도 실현될 리 만무하다. 소비자 중심의 시대적 흐름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저항을 해도 결국은 그렇게 되고 만다.

정책의 결정에는 소비자가 항시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소비자에 의한, 소비자를 위한, 소비자의 정책이 생산되어야 한다. 그게 당연하고 합당하다. 정부와 업계 간의 싸움으로 소비자만 등 터지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 소비자는 봉이 아니다. 그렇다고 왕도 아니다. 이제부터는 황제다. 소비자 제국주의는 21세기를 넘어 22세기에도 이어진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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