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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언어의 오염, 치유해야 한다
심각한 언어의 오염, 치유해야 한다
  • 장태평
  • 승인 2019.04.0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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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평 칼럼] 정치인들의 막말이 도를 넘고 있다. 국회 회의장은 무례함이 어느새 당연시 되었고, 고성과 망신주기가 판을 치고 있다. 심지어는 사안의 실체는 대단치 않은 데도 격한 막말로 분노를 포장한다. 정당 대변인들의 성명을 보면, 어디에도 품격을 찾아 볼 수 없고, 상대들에 대한 비난과 헐뜯는 수준이 야비하기까지 하다. 이런 막말이 심할수록 방송이나 신문에 더욱 보도가 잘 되고, 그래서 더욱 자극적인 말을 찾느라 혈안이 되는 것 같다.

북한의 정치 성명들이 발표되면 비웃음을 자아낼 만큼 폭력적인 막말이 어색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거의 따라하는 정도가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이런 막말과 폭언의 사용이 지방의회나 1인TV 등에서 더욱 심하고,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당연시 되고 있다. 특히나 청소년들의 일반 대화에서까지 욕설과 막말이 범람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네다섯 문장마다 한 번 꼴로 막말을 쓴다고 한다. 사회단체들의 성명서나 노동조합들의 구호들에는 살인마, 죽음, 타도, 투쟁 등 극언이 필수적이고,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까지 새빨간 글자로 써 피켓을 들기도 한다.

이런 막말과 폭언들은 사회적 쟁점을 민감한 정치적 이슈로 둔갑시키고, 집단최면을 일으켜 편을 갈라 투쟁과 갈등을 야기 시킨다. 인기에 목을 매는 정치인들은 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지역, 계층, 이념 갈등 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별도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갈등을 조장하고 확산시키는 역할은 근거 없는 막말과 투쟁적인 언어가 담당하고 있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산업화에 성공하여 경제적 풍요를 향유하고, 정치적으로도 민주화에 성공하여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반면에 어두운 그림자를 공유하고 있다. 경제적 풍요는 상대적 박탈감을 키워 분배 요구를 과격하게 주장하고, 정치적 자유는 개인의 요구를 극대화하며 표현과 언론의 자유로 미화하고 있다. 이를 잘 순화시키고 승화시키지 못한다면, 오히려 충돌과 갈등의 정글로 전락할 뿐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적대감이 폭발하고, 대립과 반목이 심화되어 공동체가 근본적으로 무너지는 상황이다.

레이건대통령은 세제 개혁을 추진할 때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팁 오닐 하원 의장에게, "팁, 나는 천국행 티켓이 있는데, 당신은 있소? 만약 없다면,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천국티켓을 버리고, 당신을 따라 지옥으로 가겠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레이건은 유머를 통해 정적를 비판하면서도 동행하겠다는 신뢰를 보여주었다. 물론 일은 잘 풀렸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서로 싸움을 하고서도 먼저 손을 내밀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서로 마음이 풀어지고 오히려 서로 잘못했다고 화해를 한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또한 말을 할 때는 상대방을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해결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모함에 빠져 극형의 위기에 있을 때, 우의정 정탁의 상소문(신구차伸救箚)이 선조임금의 어리석은 고집을 꺾었다. ‘이순신의 죄가 무거운데도 임금께서 얼른 극형을 내리시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는 것은 인(仁)을 베푸시려는 한 가닥 생각으로 그 진상을 기어이 밝힘으로써 혹시나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으시려는 생각인 줄 알며, 감격합니다.’ 라고 시작한다. 임금의 마음이 선할 것이라고 한없이 추겨 세우고, 임금의 권위를 최대한 배려하는 문장이다. 결국 이순신 장군의 목숨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게 되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말이 있다. 몸에 난 상처는 약으로 치유할 수 있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한평생 간다는 말도 있다. 말이 칼보다 더 무섭다는 말이 그 말이다. 막말로 심장을 후비고 나서 어떻게 얼굴을 대하고 타협을 기대하겠는가. 사람에 인품이 있듯이 사회나 국가에도 품격이 있다. 그 인품이나 품격은 말로 나타난다. 그것이 사람의 정신이고, 그 나라의 문화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다. 우리 사회에 심각하게 번져 있는 오염된 언어를 순화시켜야 한다. 불필요한 갈등을 극복하고, 국력을 도약시킬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장태평 ( taepyong@gmail.com )

(재)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
(전) 한국마사회 회장
(전) 제58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전) 기획재정부 정책홍보관리실장,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전) 농림부 농업정책국장, 농업구조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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